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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20:13-24
강설날짜 2019-11-24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WUqGB0bWcE

드로아에서 밀레도로 그리고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강설(행20:13-24)

 

오늘은 만인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백성이 예배하는 주일입니다. 만인제사장은 평등한 구원으로 초대를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이든, 장로이든, 안수집사이든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만인제사장입니다. 성경은 직분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신분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오늘 우리는 성도로서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강설로 들은 지 벌써 80주일이 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명과 명령에 순종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사건 이후 완전히 변화되어 복음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영광을 오직 주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신 것처럼, 사도 바울도 같은 사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대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였습니다. 이것을 오늘날 교회도 같은 사역을 해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사망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로마의 길을 통해 온 누리에 복음이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도행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이 누룩처럼 확장되도록 주님께서 일꾼을 통해 사역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이든, 중세교회이든, 오늘날 시대에도 한결같이 주님께서는 같은 사역을 하시고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경에 있는 대로 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전해질 수 있도록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사도행전 강설을 잘 듣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주 강설은 “바울이 드로아에서 말씀을 전함”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드로아에서 일어난 사건을 생각하며 사람이 영광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차분하게 읽어 보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른신학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른 신학을 배움으로 바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드로아를 떠나기 전 밤늦게까지 강론 즉 강설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 장소는 윗다락 즉 다락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긴 강설을 듣고 있던 유두고가 떨어져 사망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였기 때문에 공기의 질은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졸음을 이기고자 했지만, 실수로 떨어진 것입니다.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랬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놀라운 섭리로 교회가 성장 하도록 하셨습니다. 혹시 유두고의 뜻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행운”이었습니다. 그 이름처럼 유두고는 왜 초대교회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가를 알도록 하는 행운의 사건이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도록 하는 행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유두고가 다락방에서 떨어진 것을 알고 있던 사도 바울은 그 위에 엎드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유두고자 죽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죽은 사람을 향해 할 말입니까? 하지만, 사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유두고를 안고 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안 것입니다. 유두고의 생명을 살려준 것을 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온전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을 본 사람들은 다시 다락방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통해 그 날 밤은 아주 짧은 시간처럼 느끼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강설과 유두고의 사건을 통해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긴 대화였을 것입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2ac0dc1.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11pixel, 세로 408pixel 드로아에서 긴 강설을 한 사도 바울은 어디로 이동하였습니까? 그리고 일행은 드로아에서 무엇으로 이동했습니까? 오늘 본문 13절을 보시면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바울은 육로를 통해 앗소로 갔으며, 일행은 배를 따고 앗소로 이동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일행은 앗소에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이동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바울은 육로를 통해 복음을 전하면서 앗소로 이동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앗소는 양질의 밀로 유명하여 외국으로 밀을 수출할 정도로 풍요로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헬라 도시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가르쳤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앗소에서 일행과 만난 바울은 다시 어디로 이동을 합니까? 14절을 보시면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입니다. 이번에는 배를 타고 미둘레네로 이동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귀족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이기도 했으나 주후 181년경에 지진이 일어나 도시 전체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미둘레네를 떠난 바울은 어디로 이동했습니까? 15절을 보시면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기오와(호메로스이 출생지) 사모를(수학자 피타고라스의 출생지, 이솝 우화로 유명한 이솝의 출생지) 거쳐 밀레도에 도착합니다. 밀레도는 에베소 남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에베소로부터 50㎞ 거리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에베소에 다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에베소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에베소에서 신앙생활 하는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그 이야기는 17절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밀레도에 도착한 다음 바울은 다시 어디로 이동하였습니까? 16절을 보시면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동을 하고자 했던 것은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의 구제헌금(헌상)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사역을 했지만, 에베소에 가면 더 지체되기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시간을 지체하면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없으므로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로 오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을 지키려고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할 좋은 기회였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그동안 사역을 했던 결과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고자 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이끄심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뒤에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잠깐 밀레도에서 휴식하면서 에베소 장로들은 불렀습니다. 에베소에서 긴 고별 강설을 한 내용은 바울서신의 내용과 일치하기도 합니다. 17절을 보시면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입니다. 3년 동안 복음을 전한 결과는 놀랍게도 ‘장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에베소에 대한 강설을 들었지만 여기서 처음으로 장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에베소 교회가 성장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장로는 다른 말로 28절에서 “감독자”라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28절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해 밀레도 중 일부가 발견되었습니다. 퇴적물로 가득 찬 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발견한 극장, 광장 그리고 회당으로 추측되는 건물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특별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 교훈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훌륭한 강설(설교, 강론)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에게 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먼저 18절을 보시면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고 했습니다. 살전2:1-5절과 비슷한 내용으로 바울은 장로들에게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과 생활을 알기 때문에 장로들은 경청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은 자신의 사역과 삶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 나라였기 때문에 장로들은 고별 강설을 통해 많은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강설은 형식 그리고 의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내용이었습니다. 3년 동안 바울이 에베소 사역을 어떻게 한 것을 안 장로들은 마음이 뭉클했을 것입니다. 에베소의 사역을 상기시킴으로 바울은 자신이 추구하였던 사역의 결과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그의 마지막 사역은 로마에서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으로 바울은 19절에서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라고 합니다. 바울 자신은 삶이 겸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눈물 즉 고난이었습니다. 그리고 시험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떠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과 눈물 그리고 시험이었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위한 높은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주님과 같은 낮은 마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겸손과 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을 위한 영광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한 영광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는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눈물이라고 합니다. 원어로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던 장로들은 뭉클했을 것입니다. 목회란 눈물과 같다고 하기도 합니다. 눈물은 교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하는 힘이 있기도 합니다. 바울의 눈물에는 유대인들의 간계와 우상을 통해 돈벌이하는 자들에 의해 일어난 소동이었고 시험이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 앞에 바른 것을 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간교한 비방이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을 시험에 들도록 하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바울이 복음을 더 전하도록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죽이고자 했던 필사적인 음모 속에도 하나님께서는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겸손과 눈물 그리고 시험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도록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20절과 21절에서 목회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은 직업적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장소를 불문하고 거리낌이 없이 복음을 전하여 가르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유익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나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성경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삶과 섬김 그리고 가르침은 일치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복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같은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악을 물리치고 주 안에서 성장하기 위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바울은 말씀을 사모할 수 있도록 절실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에 오도록 해서 가르친 것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입니다. 바울은 구원에 있어서 ‘유익’한 것을 거리낌이 없이 신자들을 돕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불신자에게도 신자가 되도록 열정을 다했습니다. 바울은 기교와 언변 술이 아니었습니다. 겸손 그 자체로 하나님의 백성을 섬긴 것입니다. 오늘날 자신을 위한 기교와 성장 프로그램은 교회를 무너지도록 하는 힘이 된 현실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움츠러들거나, 교묘한 방법으로 속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심령이 가난한 일꾼이었습니다.

 

바울 일생은 겸손과 눈물 그리고 시험이었지만, 한결같이 구원이 무엇인가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와 믿음뿐임을 엄숙하게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강설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회개하라고 하지 못하는 시대에 있습니다. 한국 교회사 초기를 보면 회개의 내용이었습니다. 당연히 성경 말씀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자신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회개하고 믿음을 소유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길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이기신 후 “회개하라”고 하신 것처럼 바울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도록 전하였습니다. 회개와 믿음은 마치 동전의 앞과 뒷면과 같습니다. 회개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생활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바울은 이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계획과 각오를 말합니다. 22절을 보시면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이끄시고 있는 성령의 내적 증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바울은 전도 여행을 못 했을 것입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여행을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심령이 가난한 자로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일꾼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앞에 있을 고난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아실리라 믿습니다. 신자들이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바울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방향으로 자신의 몸과 영혼을 맞긴 것입니다. 바울의 사역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알고 장로들에게 말합니다. 23절을 보시면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성령은 바울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알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알고 있으면서 성령을 의존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은 ‘결박과 환난’이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자신의 목숨이 예루살렘에서 끝난다고 생각하면서도 오직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입장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자 애쓸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바울이 만나게 될 결박과 환난이 단순히 일회적으로 끝날 사건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이 ‘기다린다’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임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누가 떠 오르십니까? 우리는 바울의 모습 속에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리며 결심과 각오를 합니다. 24절을 보시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신가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죽음이라도 불사하기를 각오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위대한 일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그리스도인이 바울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굳건히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다른 길을 택하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굳건히 주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바울의 사명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결박과 환난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오직 복음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공로보다 오직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은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강력한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단지 사건들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특별한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 목적은 예수님을 믿도록 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도록 하는 은혜입니다. 오늘 바울이 한 강설은 의미가 있는 내용입니다. 자신의 결심과 고난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장로들에게 전한 유일한 강설이기도 합니다. 앞부분에서 간략하게 언급을 했지만, 오늘 강설과 바울서신과 내용이 일치합니다. 이처럼 바울 자신의 사역은 늘 한 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면 에베소 교회로 다시 방문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장로들에게 강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장로들에게 교훈한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삶을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자신과 같은 삶은 심령이 가난한 자로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해를 당해도 도움을 청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잘못된 가르침과 영지주의자들과 이방인 신을 섬기는 시대 그리고 로마의 황제 숭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이 생활하는 시기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신앙 생활하기 힘들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은 고별 강설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음 주 시간에도 이어서 바울의 고별 강설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장로들이 굳건한 신앙을 지키며 신앙 교육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장로들까지 무너지면 신자들이 쓰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사역을 회고한 것이고 자신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알려준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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