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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3:10-23
강설날짜 2016-10-02

저번 주 말씀을 생각 해 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비밀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많은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내용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때에,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므로 새들이 먹어 버린 것입니다.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왔지만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말라 버린 것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짐으로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짐으로 좋은 결실을 얻은 것입니다. 비유를 마치신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로 마무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유로 말씀을 하셨지만, 제자들은 이해를 못한 것 같습니다. 10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11-13절에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천국에 대해서 비유로 가르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들었지만 그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을 허락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1절에서 ‘천국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 말합니다. 그리고 ‘너희’라는 것은 제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고, ‘그들’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전하였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예수님의 행하는 일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아 아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는 자들은 14-15절에서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고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로 생각하면, 무리들이 당신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예언의 성취로 말하는 것입니다. 무리들은 완악하고 강퍅하여 짐으로,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고,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와 눈이라는 것을 사용하심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는 무리들이 자발적으로 완악해졌다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발적으로 보고, 들고 믿음으로 돌이키고, 용서와 회복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예레미야의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에도 전혀 요동치 않고 끝까지 불신앙과 죄악을 고집하다가 망하여 버린 이스라엘을 보면 회개하지 않고 세상을 더 좋아한 것입니다. 저도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여도 듣지 아니하는 시대를 보면 오늘날의 시대가 더 완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더욱 극치로 가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지팡이교회는 늘 회개하는 신앙으로 오직 주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14-15절과 대조적으로 제자들을 위해서 보는 눈과 들을 귀를 가지는 것은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16-1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완악하고 강퍅하여 진 무리들과 달리 16절에서는 ‘너희’라고 강조하심으로 제자들은 눈과 귀가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도 특권을 가지 영광을 누리는 면류관의 신앙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17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특권을 가지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면서도 구원을 믿었지만, 지금 너희들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냥 보고 들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더욱 면밀히 보면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당신님의 말씀과 행적을 더욱 관찰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읽는 가장 기초적인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1-9절에 대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18-23절에서 해석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우선 18절은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씨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로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사람의 마음에 뿌려진 후에 싹이 자라면서 결실을 얻는 과정을 통해 당신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있는 것을 설명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과정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적극 방해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또한 설명을 합니다.

 

19절을 보시면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통해서 전하여져도 깨닫지 못하고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마귀가 그 말씀을 빼앗아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구원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전파되어도 당신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고 마귀의 방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지만 순탄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형통했습니까?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지팡이교회도 복음을 듣고 깨들을 수 있는 영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20-21절에서 돌밭을 말씀하십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여기서 주목을 받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대한 반응을 두 단계의 유형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반응은 솔직하고 감정적인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주변 환경이 순조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는 즉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이런 분들은 쉽게 다른 길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20절에서 ‘기쁨으로 받되’라는 의미를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를 기쁨으로 받았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논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한 논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답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참된 믿음을 드러낸 것이지 의문을 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분들은 다시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밭에 대한 말씀 후에 22절에서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하심으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의 말씀을 하십니다. 돌밭의 경우처럼 가시떨기는 좀 더 약간의 성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고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좋아할 수 있도록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분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여기서는 돌밭과 다른 경우를 생각해야 합니다. 돌밭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아무런 말씀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견인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견인으로 구원의 마지막 증거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성도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부터 오직 주님께 간구를 하면서 붙들어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23절에서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고 하면서 좋은 땅을 말씀하십니다. 좋은 땅은 말씀만 들은 것이 아니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깨달음만 아니라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얻은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길가, 돌밭, 가시떨기와 연결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마귀가 침투해도 오직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기 때문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환난과 백해가 와도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인내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유혹이 와도 하나님 편에서 신앙생활을 하고자 오직 성경의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나의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고전15:10절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개달아야 하고, 복음의 증인자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장애물이 많다는 것을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잘 알았을 것입니다.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은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인내를 하면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태는 아마도 이 말씀을 기록하면서 마1-12장의 말씀을 떠 올렸을 것으로 저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증거 되고 회개하라고 했지만, 비교적 적은 사람들만 복음을 믿고 결실을 얻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하고 끝을 맺고자 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부터 좋은 땅은 그리 많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도 처음부터 좋은 땅으로 옥토는 아주 적습니다. 좋은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돌을 제거해도 어느 때는 바위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제가하기 힘이 들기 때문에 다른 이웃에게 요청을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생활에서도 나 혼자만 해결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교회는 서로가 협력하여 바위를 제거해야 합니다. 세상의 환난과 박해를 이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파이교회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도 사실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오직 주님만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지팡이교회에 모인 우리는 처음부터 좋은 땅이었을까? 처음부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을 유혹이 없습니까? 세상의 환난과 박해 그리고 마귀의 유혹이 없었습니까? 주님을 알기 전에도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영접한 후에도 당장 좋은 땅으로 변했습니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점점 더 좋은 땅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기 때문에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땅이기 때문에 비밀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좋은 땅이 되어 진 것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나의 단단하고 굳은 마음으로 돌밭과 같고 가시 떨기와 같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은혜로 모든 것을 제거하심으로 좋은 땅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완악하고 강퍅하여진 백성들에게 호10:12절에서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의 밭을 갈아엎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도 나의 밭을 기경하지 아니하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박해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재물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에 씨가 뿌려졌습니까? 싹이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싹이 자랄 수 있는 것이고,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왜 염려와 고민을 하십니까? 우리가 은혜를 받았을 때 어떠합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복음송 중에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를 부를 때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오늘 말씀을 깊이 생각을 하면서 골방에 가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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