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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18-07-22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1문

 

오늘은 제31문을 통해 “효력 있는 부르심은 무엇입니까?”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막상 질문을 받으면 답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선배님들은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영의 사역으로써, 이것에 의하여 당신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죄와 비참을 납득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며,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면서, 복음에서 우리에게 제공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하시고, 영접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제30문을 통해 성령이 믿음에 의하여 우리를 효력 있게 부르실 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효력 있게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도록 함으로 주의 길을 잘 가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마22:1-14절을 보았으면 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 혼인 잔치를 베푸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비유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초대를 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결혼식에 초대를 받으면 즐거워하고, 옷도 잘 입고 즐거운 마음으로 갈 것입니다. 더구나 임금이 부르는 혼인잔치면 더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야기에는 초대에 응하지 않고 자신들이 일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임금의 초대장을 들고 간 사람들을 잡아서 욕을 보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을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즉 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심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초정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함으로 초청에 응해야 하지만 반대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길거리에 가서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나는 대로 데려온 것입니다. 잔치에 참여 했지만 몸도 치장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임금은 옷까지 준비해 주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초청을 한 분도 하나님이시오,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무자격자였지만 참여할 수 있도록 예복까지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증인자를 통해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요3:17절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이 심판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있을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인 18절은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셨지만 초청을 받고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배려의 사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초청장을 받을 수 있도록 효력 있게 부르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여 비참함을 알게 함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구원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죄와 비참을 납득하게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이해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했다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냥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하고 싶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일하심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모릅니다. 이런 생활에서 지팡이교회가 해야 할 임무는 더 분명해 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재림의 주로 보내심으로 심판하실 수 있지만 오래 참으심과 긍휼하심이 풍성하심으로 인내하시고 있습니다. 심판의 날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날은 바로 지금입니다.

 

성령은 효력 있는 부르심을 위해서 죄와 비참을 납득하고 마음이 밝아져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효력 있는 부르심에 값없이 응답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선택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될 수 있도록 하시는 것도 우리의 생각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세상적인 지혜와 지식으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것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0장 2항은 “이 효력 있는 소명은 오직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에서 나오는 것이요, 결코 사람 안에 예견된 어떤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성령에 의해 살아나게 되고 새로워질 때까지 수동적인 상태에 있다. 그러나 성령으로 새로워지면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가 있고 이 부르심을 통해 제공되고 전달되는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죄와 비참을 납득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며,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면서, 복음에서 우리에게 제공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하시고, 영접하게 하시는 일입니다.”는 것을 조직신학적으로 “중생”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사역에 의해 중생한 사람은 지배적 성향이 바뀌면서 타락으로 인한 죄와 비참에 대하여 정서적으로 납득하게 되고 지식적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발생하기도 합니다. 죄와 비참함을 납득해서, 자신이 처한 상태를 보게 되고 깜짝 놀란 자들에게 성령은 지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하여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은 이천년 전의 일이지만 오늘날에도 알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은 성령이 일하심의 결과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십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자신의 노력과 행함으로 구원을 얻고자 합니다. 죄를 벗어나고 싶고, 율법을 지킴으로, 자유함을 누리고자 하지만 더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는 삼위 하나님을 신앙고백하는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교회입니다. 이것을 중요시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주체가 누구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어떠한 노력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함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중생시키십니다. 내가 학문적인 노력이 아니라 성령께서 받아들이도록 하심으로 자연스럽게 아는 것입니다. 세상의 학문은 아는 것이 힘이 되지만, 성령께서 중생하도록 하심으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 속에서 기쁘신 선을 이루시면 참 회개를 이루실 때 그들에게 외적으로 복음이 선포되도록 하여 성령으로 강하게 역사하나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이해하며 분별토록 하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하는 영으로서 사람의 깊은 곳에까지 임하셔서 닫힌 마음을 열게 하시고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면 마음의 할례를 이루시며 죽었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악하고 불순종하고 완악한 마음들을 선하게 순종하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키시고, 힘과 능력을 마치 나무가 열매를 맺듯이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가 잘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신앙 고백서이든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이단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성경에 없는 것들을 만들어서 자신을 믿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도무지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함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성령이 효력 있게 부르시는 것이고, 죄인이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5: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 하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가족과 자신을 위해서 생활하지만, 믿는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효력 있게 부르신 성도의 응답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막16:15-16절의 말씀처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들을 통해 즉 교회를 쓰셔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효력 있는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성령은 나를 쓰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으로 거룩한 초대장을 사람들에게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신성한 초대장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맺도록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부르심에는 내 뜻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성경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생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니고데모가 찾아 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으로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보아도 과연 메시야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8절에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고 하심으로 중생의 효과적 원인은 성령이시지 인간의 의지 즉 보여지는 이적과 표적 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니고데모는 사람이 모태에 어떻게 다시 들어가느냐고 물었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령이 사람의 심령에 직접 역사하시어 본질적 변화를 일으켜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주체가 누구입니까? 나입니까?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내 힘과 의지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방팔방으로 분산되는 나의 의지를 성령께서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설득하심으로 고백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을 선물로 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의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것이고 구원을 위한 도구이며 수단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성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택함을 받은 분들은 이미 외적 부르심이 있을 때 성령에 의한 중생을 통하여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거룩한 성향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복음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설득되는 것이고,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어떤 분들은 사람이 선택한 것 즉 의지로 생각하지만 이미 성령께서 설득하신 것입니다. 내가 이해하여 성령의 설득 없이 죄인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할 때 중구난방으로 전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 효력 있게 부르심을 아시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말씀을 깨달아서 성의 있게 성실하게 그리고 책임 있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나의 정서의 변화, 지식의 변화, 의지의 변화를 시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성경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에 부르심을 받은 지팡이교회는 행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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