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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9:27-30
강설날짜 2017-05-14

예수님의 제자들이 받을 상(마19:27-30)

 

부자청년은 인생 최대의 문제인 영생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 알고자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부자청년이든 지팡이교회도 알고 싶을 것입니다.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그 즉시 “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고 하시면서 “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부자청년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어느 계명이오니이까”라고 어쩌면 인생 최대의 문제를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이 잘 알수 있도록 “열 가지 언약의 말씀”(십계명)중에 일부분을 나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계명을 주신 진정한 의미인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의도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해를 하면서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했습니다. 부자청년은 하나님께서 계명 즉 율법을 주신 것은 자신의 전적 무능함과 불완전함으로 오직 구원은 당신님에게(하나님)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신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부자청년은 행위적으로 율법을 준수함으로 영생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있어서 영생의 걸림돌을 아시고 대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너는 계명을 다 지키었다고 하지만 온전한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여 영생을 이르고자 하지만 너의 선행과 의를 생각하여 보라 그러면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이웃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자신이 불완전하고 무능한 죄인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마음을 알면 ‘나를 따르라’고 하심으로 당신님을 통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각자 생각하여 보십시오. 나라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부자청년과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은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올무가 많이 있지만 지팡이교회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참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왜 입니까? 같은 신앙고백을 하면서 하나 된 교회를 이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없지만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부자청년은 자신의 올무로 인해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지만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성도는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오직 하나님만이 영생을 줄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죽음과 멸망에 처한 죄인으로 멸망으로 가는 생활을 하지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성도에게는 예수님을 통하여 은혜를 주심으로 영생을 줄 수 있다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혹시 우리에게 부자청년처럼 걸림돌이 있다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말씀을 잘 생각하여 보십시오. 제자들은 부자청년이 구원을 얻지 못하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제자들은 영생에 대한 질문을 한 청년을 생각하면 당연히 영생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예수님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제자들은 예수님께 반문을 한 것입니다. 생각하여 보십시오. 부자청년처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즉 사람은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왜 예배를 합니까? 솔직해 지면 답은 간단합니다. 영생 즉 구원 아닙니까? 구원 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참된 구원자로 고백하면서 성경의 말씀대로 생활하는 자입니다.

 

오늘은 두 주간 연속으로 부자청년이 질문을 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에 대한 마지막 강설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왜 부자청년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에 대해서 더 잘 알도록 해 주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들은 제자들은 27절에서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씀을 드린 것은 자신은 예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보상을 받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실제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 가족, 집,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을 했습니다. 그러면 인정도 받고 싶고 보상도 받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베드로는 참으로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해 보십시오. 이기적입니까? 나와 무엇이 다릅니까? 베드로는 최소한 우리는 부자청년과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만큼은 구원을 주셔야 한다는 긍정적인 내용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부자청년이든 제자이든 영생은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심으로 깊은 생각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고 하시면서 그 다음에도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예수님은 23절과 24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시면서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중대한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강조인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아! 너희는 부자청년에 대한 것을 잘 생각하면서 마음에 새기라고 하신 의도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자청년을 생각만 하면 재물이 많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도 그래서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단순히 재물이 많은 것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부자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잘 보시면 믿음의 조상 그리고 초대교회를 세웠던 분들 중에는 부자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재물이 많은 재력가 이었지만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시면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은 자라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삭개오처럼 재산을 나누어 주어서 이웃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오해해도 아니 됩니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사람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부자청년에게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가르쳐 주신 것과 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름으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잘못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가족과 지위와 재물을 버리고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우상을 섬기면서 수행을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적인 노력의 행위입니다. 과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까?

 

지팡이교회는 마16:16절의 말씀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을 한 것을 알고 오늘의 우리도 같은 고백을 하는 공동체의 교회입니다. 그렇게 고백을 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부자청년은 이 말씀을 듣지는 못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부자청년에게 요구하는 것도 너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면서 이웃을 섬기면서 오직 나를(예수님)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해 오시던 말씀을 더욱 권위 있는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8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예수님은 당신님의 말씀과 진지함 그리고 엄숙함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는 너희도’라고 하심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면서 온갖 고난과 희생을 감당하면서 자신을 부인하는 자들은 구원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최종적으로 세워지는 데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한 성도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영광의 구원을 받은 후 예수님과 함께 다스림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위한 귀중한 약속인 것입니다. 이것이 상급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급을 지금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미리 상급에 대한 맛보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은 29절에서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좀 어려운 내용이기도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구든지 자신의 어머니와 자녀들이 백 명 그 이상의 사람을 얻는다는 것으로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육체적 가족에 대한 소유권을 집착하지 않고 버리면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가족들을 ‘여러 배’로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집과 토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땅에서 집과 토지를 여러 배로 받는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영적인 부유함을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현실에서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를 하는 우리들에게 영적인 부유함을 누리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영생을 상속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은 사람으로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왜 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롭게 되어’라는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를 한다고 했습니다. ‘새롭게 되어’라는 말씀에 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원문적으로 보면 “다시 태어나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과 같은 단어를 사도 바울은 딛3:5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여기서는 ‘중생의 씻음’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결국은 중생의 씻음은 다시 태어나다로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생을 함으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맛보기 생활을 하는 영광을 받은 성도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임을 신앙고백을 하면서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제자들을 위해서 부모와 자식 그리고 전토와 집을 사용하여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예로 들어서 집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을 따르는 것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자청년은 자신의 재물과 자신의 선한 행위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받을 상’을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썩을 몸도 썩지 아니할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부활의 몸처럼 입게 되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것만이 아니라 심판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함께 참여하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30절에서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쉬운 말씀 같지만 어려운 말씀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믿음의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늘 경고의 메시지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먼저 된 사람은 계속하여 먼저 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 된 사람은 늦은 터라 계속 나중 되는 것이 상식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부자청년의 이야기에서 덧붙이고 있습니다. 상식의 틀을 벗어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상식을 벗어난 말씀을 하신 것을 생각하면 감추어져 있는 뜻을 생각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부자청년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 말씀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그 돈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었던 부자청년은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자청년에 대한 마무리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님을 따르라는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이미 자신의 것을 버렸지만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는 것이 보장되었다고 예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자들은 자신의 것들을 버린 자들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속으로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심으로 특별한 권리를 지녔다고 생각하지 말고 계속하여 자신을 부인하며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천국 잔치가 열리는 그 날에 온누리에서 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유대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롬1:16절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하신 것을 읊조리어 보십시오.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유대인이 생각할 때 자신들은 먼저 된 자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유대인의 일부분의 사람은 자신들이 구원에서 제외된 것을 알 것입니다. 구원은 먼저 유대인에게 값없이 제공되었지만, 계속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하심으로 뒤늦은 참가자가 먼저 복음을 받고 먼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을 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반대로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세리와 창녀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21:31절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부자청년은 예수님께 달려와서 그것도 무릎을 꿇고 앉아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질문도 하고, 자신의 선을 드러내고자 했지만 결국 자신의 올무로 인하여 떠난 것을 보십시오. 기죽지 마시고 오직 예수님을 따르는 진실한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자신의 선을 통해서 영생을 이룬다는 것은 결코 처음이 될 수도 없고 나중 된 자로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중 된 사도였지만 고전15:10절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생각하면 구원은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성도로서 하나님 나라의 신앙생활을 맛보기 하면서 더욱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마십시오. 오직 부르심에 감사하면서 섬기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잘 가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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