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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4:22-36
강설날짜 2016-11-13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오병이어 기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저번 주에 강설로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휴식을 얻고자 벳새다로 이동을 했습니다. 예수님보다 많은 사람들은 먼 길이지만 벳새다에 먼저 도착한 사람도 있었고, 나중에 도착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도착을 해서 ‘목자 없는 양’같이 생각을 하면서 병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사람들을 마을로 보낼 것을 이야기를 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시험 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찾아온 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시켜서 많은 무리를 앉히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그런 후 제자들에게 주셔서 무리에게 먹게 하심으로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 생명의 떡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심으로 먼저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혼자서 기도하시기 위해서 산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23절을 보십시오. “22.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마태는 ‘즉시’라는 표현을 하면서 제자들을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오늘 본문에는 구체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병행본문인 요한복음 6장을 통해서 본다면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을 한 사람들은 억지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던 것을 알 것입니다. 그 근거로 추측을 하면 ‘재촉하사’라는 표현은 제자들도 무리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메시야이신 당신님의 은혜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기적’을 본 무리들은 정치적인 메시야를 원했기 때문에(요6:15) 예수님은 즉시 그리고 재촉하심으로 제자들을 호수 건너편으로 보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십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제자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진행될 방향인 이방인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도 했을 것이고, 당신님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의 기도를 하실 때 24절에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제자들은 배를 따고 떠난 지 몇 시간이 지났을 것입니다. 그것도 해가 저문 후에 떠났기 때문에 풍랑을 만남으로 더욱 힘든 상황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도 어부 출신이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있었을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를 잘 알고 있는 베드로가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제자들은 과거의 일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혹시 기억을 하시고 있습니까? 지팡이교회는 마8:23-27절의 말씀에서 ‘자연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권세’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마8:26절에서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은 기억해야 했습니다. 말씀을 읽어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제자들이 기억을 했다면 풍랑이 일어도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바다를 잔잔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이런 저런 일들을 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예수님은 25절에서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자신들은 노를 저으면서 아등바등 살고자 마치 고생을 하고 있던 중에,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바다)를 걸어서 오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신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기뻐해야 하지만 26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하면서 ‘유령이다’라고 하면서 막 소리를 치고 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미 제자들은 자연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권세 그리고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도 아직도 예수님의 정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도 제자들을 사랑하십니다. 마치 오늘날의 나도 제자들과 같은 모습이라 할지라도 27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무섭고 두려워 하면서 ‘유령’으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실제적으로 물 위를 걸어오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더욱 호수를 걸어서 왔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도 당신님의 정체성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의 “안심하라”와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표현은 신적인 권위를 사용할 때 쓰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은 당신님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으로서의 권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나니”라는 표현을 하심으로 출3:14절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와 같은 의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당신님을 계시하여 주실 때 사용을 하신 것을 예수님도 같은 의미로 당신님의 정체성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주의 음성을 들은 베드로는 28절에서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간청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인식을 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29절에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제가 생각을 할 때 이것은 위대한 신앙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고 있는 동안은 순결한 신앙으로 보아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베드로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바로 그 다음부터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30절을 보시면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순결하고 위대한 신앙인에서 ‘바람을 보고’ 무서워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를 잘 아는 베드로는 바람을 보기 시작을 하면서 물에 빠져 갈 때에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말은 인간의 연약한 존재임을 잘 드러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정체성의 사역을 그 동안 많이 보았지만, 육신의 눈으로 확인한 풍랑을 더 두려워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의지할 때 예수님은 31절에서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면서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심하다’는 것은 “나누어진 마음으로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의 한 편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아직 그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믿음을 생각하면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수준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의 생활을 할 때 서로가 인내를 해야 합니다. 다른 분의 신앙을 생각할 때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에게 신앙 교육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다른 분들에게 교육을 하면서 신앙 성장을 위해서 아주 좋은 교훈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통하여, 당신님의 정체성의 능력을 드러내셨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할 때, 베드로는 사도들을 대표하여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고백을 하기전 이미 33절을 보시면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왜 배에 있는 제자들과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 하는 것을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32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그냥 쉽게 넘길 수 있는 말씀이지만, 저는 중요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면서 바람이 그쳤다고 하지만, 같은 병행본문인 요6:21절에서는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고 더 자세히 기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는 홀연히 제자들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갔다는 것을 볼 때 그 배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자들도 모르게 자신들이 가고자 한 곳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하루 동안에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자신들이 경험을 한 ‘오병이어 기적’과 ‘물 위로 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압도적인 황홀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노를 저어서 간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통하여 제자들을 편하게 도착시킨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도착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도 베드로가 경험을 한 것처럼 위험한 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믿음이 연약하여 물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나의 연약한 믿음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연약한 믿음도 없으면 주님 ‘살려 주세요’라고 말도 못합니다. 그러면 죽습니다. 살기 위해서 주님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물에 빠진 후 더 주님만 의지했습니다.

 

제자들은 놀라운 기적을 경험 하면서 도착한 곳이 있습니다. 34절을 보시면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곳입니다. 게네사렛은 당시에 비옥한 지역으로 풍부한 호두, 무화과, 올리브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야와 생활하기에 편한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도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 소식을 긴박하게 전파되면서 모인 것입니다. 35절을 보시면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자신들의 처지를 고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볼 때는 “목자 없는 양”같은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게네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져 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 마9:20-22절이 생각날 것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을 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가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여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구원이지 자신의 병이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는 구원의 문제는 기록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어도 모두가 나음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당신님을 의지하면 긍휼을 구하는 믿음이 있는 그들에게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셨을 때, 아무런 능력을 행하지 않으신 사건과 대조가 되기도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신의 처지를 알리면서 구원의 길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당신님의 능력을 드러내심으로 소망을 품도록 하신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소망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구원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교훈과 적용

 

1. 오늘의 말씀을 간략하게 요약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성도도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많이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는 감당하지 못할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 베드로는 유령으로 착각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신앙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 수준은 어떠하십니까? 그리고 나의 신앙 수준보다 낮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분들을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4. 베드로가 물 위로 걸었다고 해서 나도 믿음이 많은 것처럼 생각을 하면서 물 위로 걸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유사한 어떤 행동도 위험합니다. 하고자 하시면 그것은 욕심이고 자만심입니다. 베드로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오시라고 했기 때문에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을 해도 어려움을 당합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교육하는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5. 나는 정상적인 믿음의 생활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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