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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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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6:17-20
강설날짜 2017-01-29

오늘의 시대에는 강설(설교)의 홍수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그리고 손 안에 있는 핸드폰으로도 들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직접발로 이동해야 들을 수 있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었지만, 오늘의 시대는 사모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것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자신에게 좋은 것만 듣다보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과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저번 주 강설을 통하여 “사도들의 대표로 신앙 고백한 베드로”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당신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위한 여행을 위해서 사도들의 신앙을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은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리시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첫 번째 질문으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시면서 당신님이 적극적으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대답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자가 아니라 제자들이 생각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만 질문 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라고 하심으로 제자들 전체에게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담대하게 대답 한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고백인 동시에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의 대표로 분명하게 신앙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도 제자들과 동일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님의 죽음을 향한 여행을 하시기 전 왜 그들의 신앙을 확인하고자 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영원한 산 제사를 드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오늘은 저번 주 시간에 이어서 제자들의 신앙의 고백을 확인한 예수님의 대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말씀을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분문인 17-19절을 마가와 누가는 모두 생략을 하고 있지만, 마태는 기록을 함으로 예수님께서 교회를 창립 하신 것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바른 신앙고백을 받으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 하십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인간의 가르침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심으로 계시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17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심으로 메시야로 고백한 것에 대한 감격한 마음으로 그 어떤 상급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신앙고백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도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명해 주신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의지하는 믿음이 참으로 복된 것은 베드로에게 다른 제자들과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선행의 행위 그리고 의로운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님을 알고 있는 바른 신앙고백을 한 것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경험과 배움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경험과 배움으로 안 것인가? 그의 생업은 어부였지만, 주님의 제자가 되어 많은 표적을 보면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의문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험과 배움을 통해서 기도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과 배움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바른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따르던 가룟 유다를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와 함께 주님과 동행을 했습니다. 동행을 했다는 것은 베드로처럼 많은 경험과 배움 그리고 기도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마지막 길은 어떠했습니까? 그리고 도마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요20:29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지팡이교회 성도님, 하나님 나라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경험과 배움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아시겠습니까? 그 해답을 16절에서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누가 아시게 하시고 있습니까?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고백을 하면서 예배하는 지팡이교회가 베드로처럼 복된 것입니다.

 

바른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가 어떻게 복된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 18절에서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동안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바요나 시몬’으로 불렀고, 주님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래서 17절에서서 ‘바요나 시몬’으로 말씀하신 것이고,여기서는 “베드로”라고 부르시면서 상징을 부여하십니다. 어떻게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베드로와 같은 뜻을 가진 “반석”을 사용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고 하신 후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시기 위해서 원어로는 ‘그리고’를 사용 하십니다. 왜 ‘그리고’를 사용하신 것을 혹시 이해 하셨습니까? 베드로와 반석을 동일시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아람어를 사용하여 베드로와 반석을 이야기 하시기 위해 ‘게바’를 사용했다고 추측합니다. 이것을 마태는 아람어를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헬라어로 베드로(페트로스), 반석(페트라)을 적용하여 번역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18절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너는 반석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할 수도 있고, “너는 베드로라, 너는 돌이 아니냐? 이 반석 위에 장차 내가 내 교회를 세울 테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로 읽으면 주님의 교회를 당신님께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이루실 신약의 교회와 베드로의 신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 될 것을 베드로의 이름으로 언어유희를 하시는 것입니다. 엡2: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바울 사도가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교회가 어떻게 세워진 것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역사적인 신앙의 고백을 통해서 주님께서 세우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점검해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 개인의 사도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강조인 것입니다. 엡2:29절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베드로 한 개인의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주님께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워 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곳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를 마태는 처음으로 ‘에클레시아’를 사용했습니다. 왜 처음으로 사용했을까? 이 단어는 히브리어인 ‘카알’을 번역한 것입니다. 뜻은 회중,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심으로 새로운 언약 공동체를 만드신 유대인만의 교회가 아니라 이방인들을 모두 포함한 온누리의 당신님의 백성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신앙 고백한 것처럼 지팡이교회도 견고한 신앙으로 고백하도록 하심으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 공동체는 ‘음부의 권세’ 등 죽음의 권세, 죄의 저주와 세력에 넘볼 수 없도록 이미 신앙 고백한 성도는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받은 교회입니다.

 

이제 우리는 19절을 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천국 열쇠’의 권위를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해하여 베드로 한 사도에게 천국을 자신의 뜻대로 닫고 열수 있는 권세를 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시면서 제자들 모두에게 질문하고 답을 들으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동일한 고백인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와 같은 고백을 오늘날의 지팡이교회 성도에게도 주어져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성도에게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심으로 특별한 존재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하늘의 열쇠로 참된 고백은 면류관을 받지만, 참된 고백이 아닌 것은 하늘의 문을 닫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나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열쇠로 권위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에 주어진 ‘천국 열쇠’의 권세는 나에게도 적용이 되면서도,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사람은 하늘 문이 열리지만 그 반대는 닫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절에서 ‘매다와 풀다’는 미완료시제를 사용하심으로 예수님께서 재림의 주로 다시 오기까지 계속하여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과 오늘 우리도 같은 말씀을 들음으로 같은 신앙의 고백을 함으로 천국 열쇠가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당신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을 알리신 후 20절”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 되심을 사람들에게 이르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자신의 정체가 제자들 외에는 무리들에게 아직 알릴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강설을 통해서 듣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상징적으로 가르쳐 주심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천국의 열쇠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사래, 야곱의 이름을 왜 바꾸어 주었는가를 통하여 적용하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로, 사래는 ‘열국의 어미’로,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라고 하심으로 ‘하나님께 겨루어 이기다’로 확인하심으로 이전과 다른 새 이름을 얻는 분들입니다. 그들의 생애가 이제는 본질적으로 변화된 것처럼 베드로의 신앙 고백도 이전의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본질적으로 변한 성도는 반석과 같이 견고한 교회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처소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임을 고백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지팡이교회에 큰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주인은 누구시며, 교회를 세우는 분이 누구신지 바르게 알아서 참으로 바르게 충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여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교훈과 적용

 

1.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적의 경험과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하게 알고 주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것을 몰랐습니다. 그 증거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할 때 세례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를 내지 아니하시고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이런 마음으로 지팡이교회는 섬기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이웃을 섬기시기 원하십니까?

 

 

 

2. 베드로의 참된 신앙고백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바른 고백은 예수님의 분명한 지식과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익한 경험과 지식을 원하지만, 나는 어떻게 고백하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기를 원하십니까?

 

 

 

3. 지팡이교회는 참된 고백을 통하여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말씀 위에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을 좋아 하는 교회는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세속적인 사상과 유행 그리고 이상한 경험을 통한 교회를 세우고자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어떻게 교회를 이루어 가고 싶습니까?

 

 

 

4. 교회는 역사적으로 환난과 고난을 당하지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우리는 성결해야 하는 것이고, 고난을 당해도 견뎌내야 합니다. 참된 성도는 바른 가르침과 권징을 따르면서 참된 신앙고백을 지켜 나갈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5. 오늘의 말씀을 간략하게 적고, 묵상하여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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