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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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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9:16-22
강설날짜 2017-04-30

“천국은 이런 자의 것임을 아십니까?”의 강설을 들은 지팡이교회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단지 기억만 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듣기만 하고 한 쪽 귀로 흘려보내고 있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님들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에게 온 그들은 아이들이 안수를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제자들은 꾸짖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제자들이 꾸짖게 된 동기를 자세하게 기록을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오랫동안 동고동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들(마가복음은 유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 가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고 하시면서 기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구원자이십니까? 서로가 으뜸과 최고 그리고 큰 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의 것입니까? 예가 아닌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진실로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고백하는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주에 분명히 “천국은 이런 자의 것임을 아십니까?”에 대한 강설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 말씀에 이어서 인생 최대의 문제인 영생을 통하여 예수님은 진리를 명백하고 깊이 드러내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0절까지 다 읽어 보아야 좀 더 알기 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22절까지만 생각함으로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마가복음은 10:17절에서 “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본문은 재물이 많은 사람으로 소개를 합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은 18:18절에서 “어떤 관리”라고 소개를 합니다. 하여튼,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선생님’이여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마가복음은 “달려와서 꿇어 앉아” 질문을 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사람에게는 인생 최대의 문제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질문은 하는 것은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그것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이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장로들의 전통과 유대교 정신에 즉 공로 적이고 행위적인 사상에 물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모르고 자신의 의로운 공로와 행위에 의해서 영생을 얻고자 한 것을 오늘 본문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 그리고 한 사람 마지막으로 관원이라고 하지만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부자 청년’으로 강설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께 영생을 위해서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17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질문의 의도를 바꾸어 놓으십니다. 부자 청년은 공로적인 것이라면 예수님은 바른 질문으로 바꾸어서 선한 일을 하나님에다 붙이셨습니다.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라고 하십니다. ‘오직 한 분’은 하나님이시며 곧 예수님이십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찾아와서 질문을 함으로 영생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청년의 질문을 들은 후 이렇게 다시 묻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고 하십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선을 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구원의 필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부자 청년에게는 아마도 무엇이 선인지, 선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생을 위해서 부자 청년은 구체적인 선행이 무엇인지 모르던지 그리고 선행을 한다면 어느 정도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기준에서 선을 행하면서 언제나 불안해하며 영생을 얻는 것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대화를 들으면서 완벽하고 모범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원하는 답을 주십니다. 17a절을 보시면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당신님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드러내시면서 사람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라고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선을 말할 수 있는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분명하게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심으로 선한 것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심으로 레18:5절에 근거하여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여기서도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데 왜 ‘규례와 범도 즉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십니까? 사실 율법을 온전하게 다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인이어서 결코 율법을 온전하게 다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나 자신의 무능함과 죄인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하고 깨닫게 하심으로 구원의 은혜가 하나님에게 있음을 고백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18a절을 보시면 “어느 계명이오니이까"라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0절을 보시면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것을 지키었다고 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지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18-19절에서 ”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이웃보다 더 선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율법으로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부자청년은 스스로 의인이 되고자 하는 가능성과 구원을 붙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오해를 할 수 있도록 계명을 나열하신 것입니까? 그것도 ‘열 가지 언약의 말씀(십계명)’ 중에서 5-10번까지 나열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22:34-30절에서 바리새인과의 대화에서도 요약하여 나오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레19:18절에 근거하여 나열하신 것으로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필요한 계명을 나열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려 주십니다. 계명을 나열하신 것은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구약의 말씀인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원죄를 가지고 있는 죄인은 ‘열 가지 언약의 말씀’ 중에서 일부분이라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이 말씀 하신 것을 들어도 이미 다 알려져 있는 것들이기에 놀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20절을 다시 보시면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왜 다시 묻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이 나열하신 계명을 전부 다 지키었다는 자만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라고 하고 있는 병행본문은 막10:20절과 눅18:21절에서도 “어려서부터 전부 다 지켰나이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자신만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계명을 문자 그대로 다 지킨 것입니까? 아마도 모든 계명을 다 지켜 완벽한 의를 이루었다는 뜻은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이루었다고 하면 여전히 의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는지 질문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저는 사도 바울에게서 힌트를 얻고자 합니다. 빌3:6절에서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도 자신을 생각하면 율법의 의를 다 이룬 자라는 뜻보다 바리새인으로서 흠 없는 자이고,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장로들의 전통의 가르침과 행실에 있어서 흠 잡을 것이 없다는 고백으로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생각할 때 흠 잡을 것이 없음에도 이런 고백을 합니다. 빌3:13-14절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하셨고, 20절에서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영생은 즉 구원은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계명을 다 지키었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21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치 소크라테스가 한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것입니다. 너는 온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불완전하고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깊이가 있는 말씀이고, 이웃사랑의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부자 청년은 분명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영생을 위해서라면 자신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예수님은 그의 약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계명에 대해서 온전하고자 하는 의도도 생각을 하면서, 너가 아직 하지 아니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웃 사랑으로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는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자신의 집에서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합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는 물질의 짐을 벗어 던지고 ‘하늘에 있는 보화를 쌓을 것이다’는 권고입니다. 부자 청년은 순수하고 정직하고 매력적인 귀공자였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 바로 이웃을 위해서 재물을 팔라는 것입니다. 단지 재산을 팔아서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그 이상의 뜻도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3:3절에서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심으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자신의 소유를 팔라고 하시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부자 청년에게 자신만의 삶의 원칙이 있다면 더욱 하기 힘든 일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눅12:34절의 말씀처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자 청년이 혹시나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실천했다면 그것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부자 청년의 질문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였습니다. 그 대답으로 예수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핵심은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지난주에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는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크냐?라는 질문도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세워서 가르쳐 주신 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부자 청년처럼 자신을 높이기보다는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제자로서 주님의 길을 함께 동참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겸손으로 주님의 길을 동행하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이 부족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어릴적부터 율법을 정직하게 흠 없이 지켜 왔다고 생각하는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더욱 근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이 생각할 때 영생에 이를 만큼 선하지도 의롭지도 못하다는 양심의 가책이 들어 더욱 불안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 나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누가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재물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면 무거운 짐이 됩니다. 나의 관심은 약화되고 집중되지 아니하다보면 세상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무엇이 있게 됩니까? 마음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은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함으로 근심하며 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양심의 소리를 들으셔야 합니다. 어쩌면 부자 청년은 나보다 더 경건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재물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올무가 된 것입니다. 자신에게 올무가 되는 것이 있다면 주님 앞에 내려놓고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의 변명과 합리화는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인생 최대의 문제인 영생을 질문한 것을 보면 천국은 누구나 가고자 하지만 어린 아이와 같은 겸손한 자가 되어야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신30:14절의 말씀을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전후 맥락을 읽어 보십시오. 이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시의 말씀이 그들에게 가깝다는 뜻이며 결코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확인하여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선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고자 했지만 예수님은 나를 따르는 것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죄인입니다. 이웃도 사랑하지 아니하면서 어떻게 영생의 길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는 저도 참으로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모은 것을 집착하지 말고 더 중요한 오직 예수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재물과 권력 부는 결국 나를 죽이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집착하는 부자 청년을 통해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신학적인 글을 많이 읽으면서 영생의 비밀을 지식적으로만 알고자 하는 것도 영생을 얻는 길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에게 나는 죄인이라는 고백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천국은 누구의 것입니까? 오직 하나님만 붙드십시오. 하지만 만일 네가 영생을 얻기 위해 이 불가능하고 자기 의존적인 길을 고집만 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와서 예배만 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회개의 기도를 하시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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