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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골3:12-14
강설날짜 2017-08-13

제28항 교회에 가입해야 할 의무

 

이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그 모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도 그 모임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각각 그 교회에 가입하고 그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교회의 일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교회의 교훈과 권징에 복종시켜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자신의 목을 구부려야 하며 하나님께서 동일한 몸의 지체로서 그들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형제자매들을 세우기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을 좀 더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교회에 속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분리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곳이면 어디서든지 이 모임에 가입하는 것은 모든 신자의 의무입니다. 설령 지배자들과 왕의 칙령이 그 의무에 반대될지라도, 죽음이나 육체적 형벌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모든 신자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오거나 그 교회에 가입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규례를 거슬러 행하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저번에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알았습니다. 귀도 드 브레는 제27항에서 첫 시작 부분을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 혹은 우주적 교회를 믿고 고백합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온전한 구원을 기대하며, 그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고 인침을 받은 참된 기독교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과 모임입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왜 이런 고백을 해야 했던 것입니까? 과거나 현재 교회와 당시 카톨릭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모임의 공동체가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카톨릭은 교회에 대해서 “직분과 조직을 교회”라고 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확인 후 말씀하여 주신 마16:16절의 의미는 하나의 신앙고백을 하는 모임 즉 성도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잘 못 이해한 카톨릭은 “직분과 조직을 교회”라고 하면서 교회를 두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사제들을 ‘가르치는 교회’라 부르고, 일반신자들은 ‘듣는 교회’라고 하면서 일반신자가 없이 사제들만 있어도 교회가 된다고 말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닌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모임”이라고 하는 의미는 죽음을 각오한 선언과 같은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로서 거룩하고 거룩하게 될 것을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구별되어져서 하나님께 바쳐진” 성도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엡5:27절에서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이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실”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해 주실 것을 믿고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제27항은 교회에 대해서 보이지 아니하는 교회를 말했지만 오늘은 보이는 교회로서 “교회에 가입해야 할 의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아니하는 교회는 서로 구별된 것 같지만 같은 것입니다. 제27항에서 “기독교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과 모임”으로 가르쳐 주듯이 제28항의 첫 시작을 “이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가르침에는 동일한 거룩한 교회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제도상의 보이는 교회로 성도의 교제를 사도신경을 사용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친히 모으시고 제도적인 보이는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보이는 교회 즉 예수님의 백성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제28항의 첫 부분을 보시면 “이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그 모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도 그 모임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각각 그 교회에 가입하고 그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교회의 일치를 유지해야 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하는데 위에서는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으로 모든 사람은 그 모임에 가입해야 할 의무가 있어야 교회의 일치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사람이 주인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는 교회의 주인 즉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잘 읽어보시면 지금 우리가 다니는 교회는 바로 예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내가 세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우시고 당신님의 백성을 거룩한 모임으로 불러 모으신 것입니다. 목사이든 장로이든 내가 교회에서 주인라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감사한 마음으로 서로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주님께 감사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공동체는 삶이 다르고, 각 지역마다 특성이 있고, 나라별로 독특성이 있습니다. 장로교 안에 합신, 합동, 통합, 대신, 개혁 등으로 존재하지만 교회의 머리 되신 즉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따라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교회는 한 교회로 하나입니다.

 

그러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는 것입니까? 제28항은 어쩌면 배타적인 생각을 하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도 그 모임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원래 3세기 카르타고의 신학자 키프리아누스가 사용을 했습니다. 그가 사용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 데키우스로부터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박해가 있었습니다. 박해를 받은 많은 신자들은 황제를 숭배하면서 예수님을 배도하였습니다. 특히 황제에게 제물을 드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공식 증명서를 돈을 주소 사서 박해를 피하는 시대였습니다. 황제는 자신과 옛 신들에 대한 숭배를 강요하면서 거부하는 자는 재산몰수, 고문, 처형, 추방으로 탄압을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키프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치하지 말 것과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쓸 것을 충고를 하면서, 배교자들이라도 회개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키프리아누스가 말한 것을 귀도 드 브레가 그대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또한 칼빈도 “교회의 품을 떠나서는 죄를 사함 받거나 구원을 바랄 수 없다”라고 했고, 베자도 교회를 “성도들의 교제와 모임으로 보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즉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교회를 거룩한 모임으로 보는 벨기에 신앙고백은 출19:6절의 “거룩한 백성” 그리고 벧전2:9절의 “또한 거룩한 나라”의 구절을 반영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동일한 명칭을 신약의 교회에게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주목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은 거룩한 나라는 하나님께 속합니다. 거룩한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은 성도입니다. 이런 신자들이 교회로 성례(세례와 성찬)을 통해서 보이는 교회로 복음의 증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12:27절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함으로 교회 안에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지체가 되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10:27절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하시는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음성을 따르는 신자들은 교회의 회원이 되어야 할 의무에 해서 제28항은 “모든 사람은 각각 그 교회에 가입하고 그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교회의 일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교회의 교훈과 권징에 복종시켜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자신의 목을 구부려야 하며 하나님께서 동일한 몸의 지체로서 그들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형제자매들을 세우기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 가입하고 연합할 확실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한 후 행4:32절을 보시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를 위한 편지의 글에서 특히 롬12:5절은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교회에 가입하고 그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섬기면서 봉사함으로 교회의 교훈과 권징에 복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이는 교회로서 올바른 성례와 권징이 시행되어야 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성도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신비적인 거룩한 공동체로서 신자들이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여 조화롭게 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은 일반 은총 가운데 받은 바 자기의 은사라든지 각각의 어떤 재주를 가지고 활동할 때 당연히 자기의 목적을 위해 쓰는 것으로 알고 나아갑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의 공동체는 골3:12-14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참된 교회의 지체같이 마음이 늘 따뜻하고 열려 있는 마음으로 겸손과 긍휼과 자비로 절대로 자기로 뽐내는 자랑을 나타내지 않고 온유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여 서로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배도를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를 용서함으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가르침을 생각해야 합니다.

 

귀도 드 브레는 교회의 회원이 되어야 할 의무에 대해서 “이것을 좀 더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교회에 속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분리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곳이면 어디서든지 이 모임에 가입하는 것은 모든 신자의 의무입니다. 설령 지배자들과 왕의 칙령이 그 의무에 반대될지라도, 죽음이나 육체적 형벌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모든 신자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오거나 그 교회에 가입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규례를 거슬러 행하는 것입니다.”라고 확장하여 고백을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힘든 상황에 있지만 사도 바울이 말한 히10:25절을 기억합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거부하는 가르침과 육체적 형벌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보이는 교회로서 해야 할 의무를 바르게 시행해야 합니다. 교회에 가입하지 않는 자들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어떤 분들에게는 교회를 떠나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교회임을 알면서 사회적인 신분의 상실과 박해 등의 이유로 거짓 교회인 카톨릭에 계속 있는 것은 행4:19절을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나의 즐거움은 어디로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아니면 세상으로부터입니까?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면 매주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우리의 거룩한 공교회의 성도의 교제는 감사한 것이고, 서로 섬기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교회를 성령님과 말씀으로 보호하시고 보존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를 위해서 그리고 거룩한 공교회를 위해서 당신님이 세우신 교회를 보호하시고 보존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교회와 오늘 배운 보이는 교회로서 교회의 제도의 직분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참된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힘들지만 교회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주의 길을 잘 가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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