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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7:1-13(6-13절 중심으로)
강설날짜 2017-02-19

예수님이 당신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다2(부제: 변화산 사건)- 마17:6-13절 중심으로

 

지팡이교회는 지난주에 ‘예수님이 당신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다’라는 말씀으로 강설을 들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제자들의 신앙을 점검한 예수님은 당신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과 죽음 그리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 말씀은 들은 베드로는 항변을 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당신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높은 산에 대해서 오늘날에는 가이사라 빌립보 근처에 있는 ‘헐몬산’으로 추측을 합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장소를 모르기 때문에 ‘변화산’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당신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면서 장차 당신님께서 높아지심을 미리보여 주시는 것이고, 구원받은 너희(제자)의 종말론적 광채를 기대 하도록 하는 의도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적인 영광을 드러내심으로 제자들이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변형되신 예수님의 모습은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고 마태도 기록을 하지만, 그 모습을 경험한 베드로는 벧후1:6절에서 증거 했습니다. 그런 후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이라고 기록하면서, 모세와 엘리야에게 관심을 갖도록 합니다. 그들은 구약에서 보면 대체적으로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고,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예언을 대표하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당신님의 뜻을 전달한 선지자였습니다.

 

제자들 중에 베드로는 완전히 도취되어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초막셋’을 짓자고 함으로 ‘여기 있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인생의 생활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한 상태로 누리고자 하는 무의식중에 나온 말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상황에서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왜 가야 하는지를 기억하면서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그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의 말씀을 이어서 ‘예수님이 당신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다’라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을 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언제나 두려움을 수반 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예수님은 7절에서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변형되신 영광스럽고 두려운 능력을 떨림으로 목격한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가 끝이 났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주변을 보았을 것입니다. 8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자신들의 눈으로 보아도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경험은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인간이 표현할 수 없는 놀라움이었습니다. 제자들은 5절에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심으로 온누리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그 길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제자도입니다.

 

변화산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면서 내려오는 그 때에 예수님은 9절에서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변화산에서 일어난 사건은 제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죽음의 순간까지 동행한 제자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본 것을 말하면 아직 메시야에 대한 충분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한 다른 제자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 말해야 하는 것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든 것을 목격한 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오해의 소지가 없이 오직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온전하게 전할 수 있음을 당신님은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0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한 메시야 이전에 엘리야를 보내어 이스라엘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하신 말씀의 약속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말4:5-6절을 보십시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제자들의 질문은 유대인들의 생각 특히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대로 아직 엘리야가 오지 않았으므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오신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했습니다. 엘리야가 먼저 왔다는 것은 불교에서 생각하는 윤회사상처럼 사람이 다시 어린 아기로 출생하거나 하늘로부터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엘리야가 다시 선지자로 올 것을 생각하고 있던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신적인 영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신적인 영광을 본 후 그들의 마음에는 혼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는데 제자들이 생각할 때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예수님께 한 후 당신님은 신적인 영광을 드러내심으로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향해서 가실 것이라면 오리라고 약속한 메시야는 이미 온 것입니까? 이런 의도가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고 하면서 실제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십니다. 먼저 온 엘리야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고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4:6절에 대한 12절에서 풀어서 가르쳐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엘리야는 마치 엘리야처럼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서 많은 박해를 받은 것처럼, 세례 요한도 헤롯에 의해서 고난과 박해 그리고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누가는 눅1:15-17절에서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출생하기 전 그의 아버지인 사가랴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알려 준 것입니다.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러 온 세례 요한의 길이 결국 목 베임을 당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길도 같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라기에서 말씀하는 예언은 한 선지자가 엘리야의 심령으로 나나타 엘리야 당시와 같이 배교적인 시대의 상황을 거슬러 외로이 그러나 능력 있고 충성되게 사역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들의 질문에 대해서 이해를 한 것입니다. 13절은 분명하게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고 하십니다. 엘리야의 예언이 세례 요한으로 인하여 성취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마11:14절에서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요한이 바로 엘리야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말씀을 들은 후 오늘 본문에서 그 때 말씀하신 것을 이해한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도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이 왔다는 것을 확인하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한층 더 성취되었음을 알았고 앞으로 더 힘든 고난의 길이 준비 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생활도 마치 이런 고통이 있다면 인내해야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두 주간에 걸쳐서 ‘예수님이 당신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신적인 권위로 변형되심으로 제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하시고자 하는 것입니까? 우선 변형되신 사건의 전후 상황에 대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특히 16장의 마지막 말씀인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16:27-28)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 예고를 듣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런 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영광을 드러내심으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여행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지만 결국에는 부활을 통해 완전한 영광의 나라로 들어갈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고난 뒤에 있는 진정한 승리의 역사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변형되신 사건을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목격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제자들은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된 신앙고백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제자들처럼 전통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신 것을 알고 고난의 길에 동참을 합니다. 고난의 길에 동참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자신의 욕망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부활의 영광에 동참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을 본 후 깨닫고 확신합니다. 자신들은 욕망에 가득했지만 복음의 증인자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행5:41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의 길에 동참하는 것을 오히려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고난 앞에서 담대하면서, 비굴한 모습으로 타협하지 아니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한 존재요, 어리석은 자로 보일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보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는 사도들의 순교로 더욱 초대교회의 성도에게도 같은 길을 걸으면서 주를 위해 고난 받고 죽는 것을 무한한 영광이요, 상급이라 여겼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이 아니라 ‘존귀와 영광’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성도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기를 기도하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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