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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2016.12.21 07:51

장로들의 전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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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5:1-20
강설날짜 2016-12-04

장로들의 전통2(마15:1-20, 10-20절 중심으로)

 

지팡이교회는 지난 주일에 마15:1-10절 중심으로 ‘장로들의 전통’의 강설을 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생각을 해 보면서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삼위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와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르반’으로 뜻은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께 드려진 것’(고르반)으로 선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은 ‘고르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3절에서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을 중요시 하는 것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범하는 것임을 지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전해오는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습니다. 자신들의 노력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겠다고 제도를 계속 만들어 세움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제3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하나의 예를 들어 보이셨습니다. 4-6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너희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알면서도 ‘고르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물질을 여전히 본인이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고르반’이라고 하면 자신에게 있는 물질로 부모 공양할 필요가 없다는 이상한 규례를 가지는 것이 고르반입니다.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생각했던 용돈이 그만 고르반 되었네요’라고 말한 후에는 아버님께 그 돈을 드리지 못하도록 가르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는 것은 잘못된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여 더욱 분명하게 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고 하시면서 사람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다시 분명히 하셨습니다.

 

오늘은 저번 주일에 이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10절에서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듣고 깨달으라고 촉구하십니다. 지팡이교회도 오늘 말씀을 듣고 깨달음으로 ‘귀 있는 교회’요 ‘바른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왜곡된 장로들의 전통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진실함에 있지 않고, 입술의 말로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1절을 같이 읽어 보았으면 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전통으로 형식주의 자들에게 진짜 문제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2절에서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라고 질문한 것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 가셨습니다. 질문을 다시 되돌리면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리’까지 포함하는 것이 흥미롭기도 합니다. 10절을 보시면 ‘무리’ 같이 불러 들여서 예수님의 말이 올바른가 아니면 그들의 말이 올바른가를 평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지팡이교회도 무리들과 같은 입장에서 오늘의 말씀을 경청하시면 더 풍성한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신학생 시절에 학생들은 서로가 만나면 ‘할렐루야’, ‘아멘’ 등을 자주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경건하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신학생이기 때문에 ‘할렐루야’라고 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하곤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어느 교수님은 할렐루야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어도 인사로 쓰이곤 했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형식으로는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신학생다운 모습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단지 입에 발린 습관성으로 하는 것이라면 더 위험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장로들의 전통을 더러운 것이라고 하는 것을 귀 담아 들어야 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하셨던 말을 생각하면서 바리새인의 반응을 예수님께 보고를 합니다. 12절을 보시면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라고 하면서 그들은 말씀을 듣고 화를 냈다는 사실을 보고 한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에 대한 것과 제자들의 손 씻는 관행에 대한 비유(10-11절)를 포함하는 전체의 이야기를 전달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을 아시나이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래의 의미로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다’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예수님의 비유를 들은 바리새인은 자신들의 권위가 손상된 것에 대한 불쾌감으로 화를 냈다는 의미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을 중요시 하는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이 퍼지면 심각한 파자에 대한 염려와 고민으로 화를 낸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부터 보고를 받으면서 13-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보다 더 신랄하게 비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것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을 마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으로 결국 구덩이에 빠져서 같이 죽을 수 있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세상의 전통, 가치관 그리고 이단들의 가르침으로부터 오직 성경의 말씀을 따름으로 영원한 생명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을 따르는 사람은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라고 한 말씀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나 바른 길로 가지 않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되돌아 오셔야 합니다. 교회는 늘 바른 가르침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늘 읽는 귀한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에게서 들은 내용을 전달했지만, 자신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15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라고 풀이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만 이해 못한 것이 아니라 병행본문인 막7:18절을 참고하면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라고 16절에서 말씀하면서 책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느냐고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그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17-18절을 귀 담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는 육체의 건강을 목표로 씻는 것과, 여기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의식과 관련된 씻는 행위를 조심스럽게 구별해야만 합니다. 만일 손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 해도 그 음식은 손 씻곤 먹었을 때보다 영적인 의미에서는 더 깨끗하거나 덜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몸도 이와 같습니다. 씻는 의식과 관련되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그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씀은 당연한 것입니다. 음식은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손을 씻지 않고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물론이요 마음에서 나오는 표현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9절에서 구체적인 예를 이야기 하십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언급되는 것들은 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들이 아닙니까?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과 도적질, 거짓 증거, 비방 이런 것들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특히 ‘비방’은 ‘참람하다’는 말로 하나님께 대한 불경스러운 태도를 뜻합니다. 주님께서 언급하시는 이런 요소들은 다 우리 마음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과 입에서 나오는 것을 대조하심으로 물질적인 차원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영적인 차원으로 나의 생각과 행동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팡이교회는 마12:34-35절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라고 바리새인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생각하면 오늘 말씀도 같은 것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진정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은 단지 외적으로 정결하고자 하는 것으로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해지려는 영적 자세가 결여된 채 그저 기계적으로 손을 씻으면 자동적으로 정결해 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했던 말씀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셔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나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20절은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제자들은 잘 이해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성도님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을 예로 들어 주신 것들이 있습니다.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은 나의 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을 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의 노력, 우리의 노력으로 버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부패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령님을 의존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으로 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하심으로 입에서 나오는 것들을 버릴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오늘 지팡이교회는 사람의 몸을 더럽게 하는 것을 장로들의 전통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자 하면서 장로들의 전통처럼 만들어 놓으면서 섬기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지 않도록 하고, 맹인이 인도하는 것과 같음으로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잘 맺어 가면서,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며 섬겨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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