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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2018.09.08 14:57

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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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5:17-26
강설날짜 2018-09-02

생명의 말씀(행5:17-26)

 

초대교회와 오늘날의 교회를 생각하면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같은 교회인데 다르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순결과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교회만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기까지 늘 한결같은 순결과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표적과 기사”를 통해 알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이 없다면 어떻게 교회가 생길 수 있었던 것입니까? 행4:13절의 말씀처럼 사도들은 “학문 없는 범인”이라고 했습니다. 학문이 많았던 종교지도자들이 생각할 때 사도들의 수준은 형편이 없었던 것이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야요 부활하신 것을 전할 때 세례를 받고 믿은 신자들이 수 없이 증가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역사적인 교회사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사도행전을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사도행전의 교회의 순결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을 우리는 교회의 삼대 표지라고 합니다. “강설, 성례, 권징”이 있어야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연 삼대 표지를 잘 시행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는 주식회사, 기업이 아닌데도 어떠합니까?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위해 사도행전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눈과 지각을 열어 구원의 복음을 믿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복음을 교회에서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을 교회에서도 듣는 다는 것이 저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제자들과 초대교회는 교회의 순결과 능력을 위해 청지기의 정신이 있었지만 물질과 인적인 성장만을 위한 교회는 참된 복음의 메시지를 찾아 볼 수 있습니까?

 

베드로의 사역을 보면 마치 신처럼 보입니다.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현대의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표현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자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교회의 순결과 능력을 위해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이 변하지 않고 지상대명령을 감당하는 사도였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마케팅을 동원하여 성장하고자 했지만 베드로는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제자였습니다.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강당할 때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가 솔로몬의 행각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것을 알고 감옥에 가두고 위협과 협박을 했지만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석방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 하지 말하고 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숨어서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럴수록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면서 증거 할 때 이처럼 놀라운 표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순결과 능력이 무엇인가를 사도들의 표적을 통해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도들의 복음 증거는 오늘날 교회에 알리는 메시지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신실하게 전할 때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행4장에서 처음으로 감옥에 투옥된 사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협박을 당하면서 풀려났어도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할 때 상상할 수 없는 이적들이 일어났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것을 계속하여 감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차 투옥은 두 사도였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모든 사도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시면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에 ‘시기가 가득한’ 것입니다. 왜 가득한 것인지 아십니까? 자신들의 영향력과 권력을 위한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시기’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베드로와 요한은 협박을 하여 석방을 했어도 그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교회의 확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일을 막기 위해 행동을 시작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어나서’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제자들을 어떻게 했습니까? 18절을 보시면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두개인들은 다른 지도자들보다 더 열심이었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초자연적인 일들이나 내세를 믿지 않았던 이유로 부활을 증거 하는 사도들이 눈에 가시였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천사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마태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죽인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더욱 인정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베드로와 요한만 가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도들도 같이 옥에 가둔 것입니다. 사도들을 가둔 것은 교회의 무력함과 수치심을 조장해 계속된 칭송과 확 장 중에 있던 교회를 쓰러뜨리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더 잘 안다고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처럼 순결과 능력을 상실하면 신자들도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사두개인처럼 인간의 욕망을 위해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복음만을 전했던 사도들이 감옥에 있던 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19절을 보시면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사두개인들이 부정하는 ‘주의 사자’ 즉 천사가 사도들의 옥문을 열었고, 사도들을 나오도록 한 것입니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사도개인들에게 큰 굴욕감을 안겨주는 사건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그리고 오늘날의 복음 증인 자들을 위협해도 부활은 계속해서 증거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삶으로 증거 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누가는 ‘주의 사자’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기적의 섭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적자들로부터 보호하심으로 초대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지키시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경비병으로 지키고 있어도 하나님의 능력은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탄이 세상에서 왕과 같은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복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주의 천사’는 20절에서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복음은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힘입니다. 제자들에게 지금까지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백성에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이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직접 보호 하신다는 것을 사도들을 통하여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교회로 하여금 믿음으로써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더욱 복음을 위해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요 교회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의 천사는 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서 말하라’고 한 것입니다. 성전 외에 다른 곳이 없었던 것입니까? 그 당시에 교회가 모여서 예배를 하는 예배당도 있었습니다. 굳이 성전에서 하라는 것입니까? 성전은 잘 알려진 장소이기도 하지만, 성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해 오셨던 장소였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누구시며 사도들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오실 메시야를 예표 하였던 것이고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옛 성전을 대체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절에서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은 복음을 듣는 자에게 필요한 영생의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성전에서 새벽에 제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은 21절에서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한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소식을 들었던 대제사장은 공회와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들을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한 것입니다. 22절을 보시면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사도들이 주의 사자로부터 도움을 받아 감옥에서 나온 것을 모르고,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심문하고 재판하기 위해 부하들을 보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부하’라고 했지만 원문을 생각하면 아마도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은 성전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감당했으며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의 권한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하들은 감옥에 있어야 하는 사도들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와 어떻게 보고를 합니까? 23절을 보시면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보고를 한 것입니다. 보고를 들은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못했고, 천사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감옥에서 나갈 수 있었는지 몰랐던 것입니다. 특히 23절은 사도들이 옥에서 풀려난 것이 정상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한 사실임을 나타내기 위해 구체적으로 정황을 묘사한 것입니다.

 

부하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자들에 대해 24절은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종교지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종교지도자들 중에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은 심히 당황하고 안절부절 했습니다. 공회를 열어 심판을 해야 하는 데 사도들이 사라짐으로 ‘완전히 의기 소침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패배 의식에서,성전 맡은 자는 경비의 임무를 제대로 감당 하지 못한 책임감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해 한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누군가 사도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 준 것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주의 천사의 말대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복음의 사역을 어떤 자리가 되었든지 전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이 두려움과 떨림은 오히려 더 큰 복음을 감당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순결과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장소가 쉽게 노출되었을 것입니다.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고, 신비적인 일을 하는 사도들을 어떻게 합니까? 26절을 보시면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성전을 맡은 자들은 사도들이 있는 장소로 가서 체포하면서도, 백성을 두려워한 나머지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데리고 온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자리를 위해 끝까지 부하들을 동원하여 잡아 왔습니다.

 

이처럼 사도들의 순결과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칠 때 박해와 고난을 당하면서 감옥에 투옥되어도 주의 천사로 인하여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능력이 있다는 확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을 보면서 세상의 힘과 권력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하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칼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마26:52절에서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제자들은 물리적인 힘으로 이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체포하러 온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잡혀 간 것입니다. 백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하여 질 수 있도록 고난과 박해를 감당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복음이 무엇입니까? 성경66권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학문적인 것 그리고 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 그것이 올바른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의 천사는 ‘이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취사선택해서 믿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오해하고 믿는 것입니다. 복음을 일부분만 인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것임으로 나는 복음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처럼 믿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감옥에 투옥되어도 그리고 어느 곳이 되었든지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참된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은 복음을 사용하여 거듭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지팡이교회는 ‘생명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도록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이고, 가르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내용과 근거가 있다는 것은 가르칠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오랫동안 한 것이 바로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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