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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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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9:13-15
강설날짜 2017-04-23

지팡이교회는 지난 주에 눅22:14-30절을 사용하여 “나는 너희 중에 섬기는 자로 있느니라”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여 주신 ‘성찬’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린이도 있고 학생과 청년 그리고 어른도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하나 된 교회를 알려 주는 것이 성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찬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하나된 교회를 위해서 섬김의 자세로 큰 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작은 자를 섬기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강설하기 전 두주 전에 강설한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때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도록 요약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 이동하여 점점 더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기 위해서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도착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님께서 해 오시던 사역을 감당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렇게 질문한 의도는 시대적인 상황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모세의 율법을 이용하여 이혼을 마음대로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아시고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라고 한 것입니다.

 

시대적인 상황에서 그들은 “아내가 음식을 망치기만 하더라도 남편은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고 했고, “아내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하기만 해도 이혼할 수 있다”고 함으로 율법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것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도착한 곳은 요단강 건너 바로 옆 페레아 지역으로 헤롯이 다스리던 장소였습니다. 헤롯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십니까? 네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헤롯이 아내와 이혼을 하고 이복동생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던 세례 요한은 헤롯의 잘못을 지적하여 결국 목 베임을 당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고 하시면서 율법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일심동체로 즉 한 몸으로 가정을 이루게 하심으로 서로가 희생하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 더 이상 시험하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시민권자로서 늘 서로가 섬겨야 합니다. 한 몸인 공동체도 서로가 섬기는 작은 가정의 나라요 그리고 교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하심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의 섬김으로 나와 우리와 교제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부부에 대한 혼인의 중요성을 가르치신 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이제 어린 아이를 소재로 하는 가르침을 주심으로 ‘천국은 이런 자의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사람들인지를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든 지팡이교회 성도이든 서로 다르게 생활을 하지만 하나의 세계에서 함께 존재하면서 교제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타락으로 분열과 갈등과 다툼으로 최고와 큰 자 그리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불행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타락한 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유익으로 ‘완악’하고 ‘강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정의 부부에 대한 생각을 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의 교만에 대한 경고를 하신 후 오늘 말씀에서 어린 아이를 통해서 ‘천국은 이런 자의 것’임을 통해서 16-30절에 나오는 부자 청년과 대조하심으로 어린 아이의 특성을 통한 겸손도 생각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마17장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된 모습과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고,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런 후 18장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 속에는 서로 자신이 가장 크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높이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를 향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그런 후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돌이킬 수 있도록 권징을 통해서 용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심으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 당신님께서 함께 하시고 있다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권징을 통하여 용서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소중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귀하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만 탈란트 빚진 자’와 ‘백 데라리온 빚진 자’의 이야기를 하심으로 천국의 가치를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천국에서 누가 크냐라고 할 때 작은 자를 섬겨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너 혼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는 한 몸 공동체로서 작은 자도 있고 큰 자도 있습니다. 큰 자만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면서 존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큰 자와 작은 자가 공존하는 시대에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크고자 한다면 낮은 자를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 작은 자를 섬기고 보살피며 돌보는 것을 누가해야 하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지팡이교회를 섬기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까? 오히려 반대가 아닙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섬기어 주셨습니까?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오히려 제자들을 섬기어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은혜임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중에 엡2:8-9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가 큰 자입니까? 참 부끄럽지만 모두 작은 자 아닙니까? 예수님은 한 없이 표현할 수 없는 신이었지만 인성의 몸을 취하여 오심으로 작은 자를 섬기어 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얻은 나는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 종교지도자들 중에서 바리새인들은 “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하면서 큰 자의 위치만 누리고자 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과의 대화를 들은 사람들은 아마도 예수님에게 찾아온 것 같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존경하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면 바리새인들이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귀하게 생각하고 철저히 지킨다고 생각을 했지만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유대인들은 율법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제자들은 예수님께 천국에게 누가 가장 크냐고 할 때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를 불러 세우시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마태는 의도적으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꾸짖다’는 말을 기록함으로 매우 호된 책망을 묘사 한 것으로 제자들이 어린 아이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왜 어린 아이를 데니고 온 것입니까? 여기서 잠깐 혹시 “파이디온”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어린이학교 공과 교제로 많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파이디온은 헬라어로 ‘어린 아이들’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은 어린 아이를 아주 어린 아이로부터 12세까지의 소년을 뜻합니다. 같은 병행 본문인 눅18:12절에서는 헬라어 ‘브레페’라는 복수형을 사용하여 아주 어린 유아를 기록하여 주심으로 짐작하면 유아를 데니고 온 것입니다. 유아를 데니고 온 것은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의 권위로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신들의 어린 유아들이 예수님과 신체적인 접촉을 함으로 관심을 받도록 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과거에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은 기억하지 않고 부모들의 마음을 알고서(?) 꾸짖은 것 같습니다. 마태는 왜 제자들이 꾸짖었는지 그 이유를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추축을 할 뿐입니다.

 

좀 더 생각을 하면 어떻게 어린 유아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가? 제자들이라고 하는 자신들도 오랫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지 않고 어린 아이와 부모까지 꾸짖은 것입니다. 어린 유아를 데리고 와도 아이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왜 데리고 왔냐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자 하면 작은 자를 섬겨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지만 기억을 못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작은 자를 돌보고 가르쳐야 하는 자였지만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예수님은 14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고 하심으로 세상적인 가치관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과거에 말씀 하셨던 것을 기억함으로 더욱 의미 있는 말씀으로 와 닿아야 합니다. 너희들은 나와 오랫동안 함께 사역을 감당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유아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어린 아이를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하고 하시는 것입니까? 어린이는 반드시 부모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금요일에 학교 부모님으로부터 카톡을 받았습니다. 그 이야기는 은평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어린이가 6교시 후 하교를 하던 중에 봉변을 당한 일입니다. 마스크를 착용한 아저씨가 강아지를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아이를 데려 가고자 할 때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울자 머리채를 잡고 무섭게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인간의 원죄는 더욱 종말이 다가 오면 올수록 더 타락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신앙인으로 생활하는 것은 마음이 더 아픈 것 같습니다. 어린이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주는 음식과 옷 그리고 용돈 등을 받아서 사용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자신이 혼자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시기 때문에 마음의 평안을 누리면서 필요한 것을 공급받으면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이것이 복중의 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려는 의도는 마18:2-4절의 말씀처럼 ‘어린 아이의 겸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면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낮은 자를 섬김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 사람들과 분명하게 다른 삶의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도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어린 아이인 유아가 복음을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보면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당신님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심으로 그들도 나아올 수 있다는 뜻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것은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나의 행위로 인하여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천국은 이런 자의 것’임은 더욱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천국은 이런 자의 것임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어린 유아들의 독특한 성격인 겸손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지하고 무능한 자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임을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15절에서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여기서 ‘안수’라는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몸에 손을 대며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상징성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노아는 셈과 야벳을 축복했고, 이삭은 야곱을 축복했고, 야곱은 그의 아들과 손자들을 축복했었습니다. 이런 의미와 연결하여 예수님의 안수는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복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아버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는 말씀을 이해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부모들은 어린 유아들을 데니고 왔지만 제자들은 꾸짖었습니다. 어린 아이에 대한 제자들의 태도가 얼마나 세상 가치관에 찌들어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시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늘 겸손한 마음으로 부모를 신뢰하듯이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린 아이에게 안수(만져 주심)하여 주듯이 오늘도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품어 주심을 믿으면서 승리하는 지팡이교회가 되기를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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