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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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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해서 보는 여인들의 즐거운 삶

 오래 전에 목회자 사모님들을 위한 잡지인 <라일락>에 기고한 글을 여기 올려서 많은 분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다 유익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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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의하면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즐겁게 살고, 죽어서도 즐거움 가운데 있으며, 부활 이후의 삶에서도 지극한 즐거움 가운데 있게 된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이렇게 (1) 이 세상에서나 (2) 사후에나, 그리고 (3) 부활 이후에도 ‘즐거움’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삶이 고난과 투쟁과 죽음으로 특징지어 지는 것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 받지 못한 삶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어두움 가운데 있으며, 상호간의 투쟁과 다툼으로 특징 지워지고, 수고와 죽음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철저히 파악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구속 받지 못한 삶은 이 세상에서 자신들이 누리는 삶이 즐거움인 것과 같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성도들도 오해하면, 또한 사모들도 오해하면 이 세상이 말하는 즐거움이 참으로 “즐거움”이라고 착각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 세상 즐거움이 아닌 즐거움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성도들의 즐거움을 이 세상이 말하는 즐거움으로 대체하거나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이 세상에서 말하는 즐거움을 우리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다. 여러 의미의 괘락, 노년의 안락함, 자녀들이 잘 되는 것 등등 이 세상에서 복이나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들을 그리스도인인 우리들도 추구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렇게 종교가 이 세상의 즐거움을 확장하거나 그것을 최대화하여 누리려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이슬람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슬람교가 말하는 천국에서의 즐거움은 70명의 속눈썹이 긴 여인들의 환대 등을 말하는 등 상당히 육욕적인데, 이는 결국 이 세상적 즐거움을 확장한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의 번영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는 기복 신앙의 추구자들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결국 이 세상적인 즐거움을 상당히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즐거움은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독교적 즐거움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기독교적 즐거움은 무엇일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 말하는 인생의 제일된 목적의 한 부분이 그것을 잘 요약하는 데,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기는 것(enjoy Him forever)이라고 언급된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내용을 참으로 잘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첫째는 하나님 당신님을 즐기는 것이다. 구속 받은 우리의 삶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히 지속적으로 같이 사는 삶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기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의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

 

둘째는 그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즐겨야 한다. 이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금욕적일 수 없다. 성경은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폐하라”고 주장하는 가르침을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딤전 4:1)이라고 하고,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딤전 4:2).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딤전 4:4).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금욕적 성향을 가질 수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로 즐기는 것은 사려 분별과 절제가 필요한 일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모든 것을 선용하는 것이고 즐기는 것인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정황 가운데서 그리고 항상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롬 12:2b). 분별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생각이 없는 삶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아니다. 항상 하나님이 이 순간에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지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행하려 하며 그 모든 정황에 필요한 것을 주께 아뢰서 얻어 살아 나가는 삶 –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참으로 즐거운 삶이다.

 

      성경이 말하는 여인들의 즐거운 삶

 

이 모든 말씀이 구체적으로 여인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인 여성의 즐거운 삶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첫째로, 우리들이 흔히 억매이기 쉬운 금욕적인 생각을 극복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장신구를 하면 안 된다든지, 어떤 형태의 옷을 입으면 안 된다든지 하는 것이 이에 속한다. 특히 일주일에 몇 번은 금식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한국 교회 안에서 특히 사모님들에게는 일종의 금욕성이 요구되고, 스스로도 그런 것을 어느 정도 지향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위에서 언급한 다모데 전서 4:1-5 말씀을 찬찬히 읽어 보라. 혼인하지 말라는 주장이나 음식을 먹지 말라는 주장은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성경에 명백하게 나와 있는 것이다.

 

둘째로, 그러나 또한 금욕적이지 않다는 것이 우리들을 세상을 본받아 나아가는 길로 이끌어 서는 안 된다. 성경은 어디서나 “이 세대들 본받지 말라”고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12:2a). 이 세대를 본 받아 나아가는 것보다는 금욕적인 것이 더 나은 것이다. 그러나 금욕적인 것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미 말하였으므로 그것도 우리가 갈 방향은 아니다. 우라는 금욕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도 이 세상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의 가정이 참으로 ‘가정’(home)이 되게 해야 한다. 가정은 교회가 아니고, 학교도 아니다. 우리들이 잘못하면 가정을 교회로 만들려고 할 수 있고,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가정을 학교로 만들려고 하기 쉽다. 이 일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부인이요 어머니이니, 여성들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을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가정’이 되게 할 것인지에 우리의 모든 것을 집중시켜야 한다. 어쩌면 사모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우리의 사명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가정이 진정 ‘기독교 가정’이 될 때에 우리의 사명이 완수되는 것이고, 우리가 참으로 즐거움 삶을 사는 것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목회자들의 사모님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을 의무적으로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 교인 수가 늘어 간다든지, 교회 재정이 넉넉해진다든지, 그래서 사례가 많아진다든지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면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세속적이 되어져 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대개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형태로 이 세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되므로 이와 같은 것을 기쁨으로 여기면 안 된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더 성경적이 방향으로 되어져 가는 것을 기뻐해야 하고,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섬기는 성도들도 더 성경적으로 되어 가는 것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와 성도들이 더 성경적으로 되어져 가는 것과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점점 더 성경적으로 되어 가는 것을 보고 기뻐해야 한다.

 

      기독교 가정을 위한 여성의 과제?

 

물론 이 일은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이 함께 해 나가야 하는 일이다. 우리들이 모두 기독교 가정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성의 역할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모든 물리적 필요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식사, 성(性), 주거(住居), 의복 등의 가장 필요한 물리적 요구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일에 가장(家長)의 역할이 중요하다. 목사님들이 그리고 교회가 이 일에 신경써야 한다. 그러나 여성으로 사모로서 우리들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혹시 충족한 것이 다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서도 우리의 모든 물리적 요구가 충족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네 어머니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된 것이 바로 둘째 요소인 모든 심리적 요구들이 충족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잘 살필 수 있는 은사를 주께서 여성인 우리들에게 주셨으므로 우리들은 모든 이들의 마음을 잘 살펴서 그 심리적 요구가 충족되게 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그러하고 교회에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 두 면과 관련하여 여성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의 필요는 과연 누가 충족시켜 주는가?’하는 매우 심각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고 반드시 제기된다. 특히 사모의 필요는 누가 채워주는가? 사실 여성들은 깨지기 쉬운 더 연약한 그릇이다. 그래서 우리의 물리적 필요와 심리적 필요가 더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관련된 분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지혜롭게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남편이신 목사님에게도 말을 하고, 자녀들에게도 말을 해야 한다.

 

그 말이 잘 전달되어서 효과를 낼 수도 있지만 대개는 효과가 없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들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고(한국 교회의 전통적인 사모님과 어머니의 모습),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거나 눈에 보이게 폭발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 모든 정황에 있어서 우리의 말을 참으로 잘 들어 주시는 분,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 우리의 영원한 대화 상대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혹시 이 세상에서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상황이 박탈된다고 해도, 또한 우리의 호소가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다. 그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평생을 사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이것은 이 세상의 불신자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제대로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즐거움의 원천인 것이다.

 

그러나 다시 강조한다. 오직 하나님과의 대화에 빠져 이 세상의 모든 다른 관계를 무시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다. 진정한 하나님과의 대화는 결국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도록 하고, 다른 피조물들과도 건강한 관계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결과를 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과 제대로 된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도 바르게 관계하도록 하며, 이 세상 모든 것을 제대로 향유(享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참으로 즐거운 삶의 시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무든 정황 가운데서 즐겁게, 참으로 즐겁게 살고, 죽은 후에도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즐거운 삶을 살고,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우리의 몸이 가장 완벽한 여인의 몸을 가지고 주님을 영원히 섬기며 즐겁게 봉사하며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일의 시작이 지금 여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근거한 구원 받은 성도의 즐거운 삶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가장 온전한 의미에서 즐겁게 살라. 우리가 이 말을 할 때의 의미는 이 세상 사람들이 이 말을 할 때의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우리는 참으로 영원을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오늘을 살자는 뜻으로 ‘카르페 디움’(carpe dium, “이 순간을 향유하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이 이 말을 쓸 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이 말을 쓰는 우리가 참으로 오늘도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영원한 즐거움, 영원한 복락을 가진 사람이기에 이 순간도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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