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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타협 없이 신앙 생활하는 성도님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사랑하는 당신님의 백성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예수님만 혼자 당하는 십자가가 아니라 나도 같이 죽는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2: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고백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한 성도는, 사도 바울도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것을 사용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경주하는 자, 선한 싸움을 하는 자, 경기장, 하나님 나라의 전신갑주 등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성도님, 늘 승리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부자만으로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삶에서 실패하더라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있었는가? 바로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그것도 불신자의 집 안에서 신앙의 생활을 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오히려 장군의 아내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는 것처럼 복음 증거자로서 실패한 것 같습니다. 더욱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감옥소에서 기약이 없는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장소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의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요셉을 보면서 실패한 사람으로 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면서 형통하리라고 합니다.

 

만약 내가 요셉의 경우처럼 어려움을 당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처럼 성공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겠습니까? 성도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무시로 드리는 기도’라는 강한 무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강도의 무기는 칼이라면, 군인의 무기는 총이라면, 세상 사람들의 무기는 사람을 속이는 무기라면, 그리스도인에게 무기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는 기도의 무기가 있습니다.

 

잠깐의 시간을 내어서라도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의 무기인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중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도 예행연습을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기도에 투자합시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루에 3시간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저도 3시간 못합니다. 그러나 무시로 하는 기도는 자주 할 수 있습니다. 눈을 감지 아니해도 주님이라고 고백을 하면서 마치 애인과 길을 걸으면서 교제를 하듯이 교제의 기도를 해 보십시오.

 

사실 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중언부언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삶의 고통에서 나의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 진심을 무시로 아니면 시간을 내어서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공생애의 마지막을 위해서 무시로가 아닌 시간을 내어서 눅22:44절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예수님의 기도를 보시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26:39절에서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성도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는 내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원대로 결국에는 사망권세의 모든 것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우편에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세상에서 삶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의 마무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보이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마6:6절의 말씀처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를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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