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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애통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애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를 생각하면 어떠십니까?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에서 삶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천국(하나님 나라)이 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죽은 후가 아닌 이미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이미 복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도 잘 알고 있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을 생각하면 이미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이미 복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아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열정으로 열심히 생활해서 마치 카톨릭이 주장하는 공덕으로 쌓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나의 삶을 미화시켜서 공덕을 쌓고자 합니다. 성경은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이 자신의(은덕)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자신의 십자가를 지면서 애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교회인 성도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할 때 ‘애통해 한다’는 것은 마음 가운데 있는 슬픔을 마음에만 감춰두는 그런 슬픔을 말하지 않습니다. 마음 가운데 있는 슬픔이 바깥으로 표시되는 그런 슬픔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히브리말로는 ‘히트아벨’인데 이것은 주로 내부에 있는 슬픔이 외부에까지 터져 나올 때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번역할 때 그냥 단순히 ‘마음으로 슬퍼하고 슬픔을 품은 자’라고 하지 않고, ‘애통하는 자’라는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자로 내가 구원을 받았고, 당신님의 공로 때문에 나도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를 하지만 자신의 주변의 이웃을 보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을 보기 때문에 애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았다 해도 자신의 죄악성을 바라보면서 나는 죄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오직 예수님께 애통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애통은 창자를 끊는 듯한 아픔과 뼈를 갂는 듯한 고통을 동반한 슬픔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애통을 하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눈물의 기도를 해 보셨습니까? 눈물이 흐른 뒤에는 기쁨이 있다는 것은 참 놀랍습니다.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위로를 받는다’는 말은 지금 나에게 위로가 있다는 말입니다. ‘너희 가운데 만일 애통함이 있느냐? 너희 마음 가운데 탄식하고 있느냐? 그러면 너희에게 위로를 주실 것이요, 너희가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누릴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은 최종적인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인 완성을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현재 제자들이 이 땅에 누리는 위로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그때 제자들은 완전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와 고통과 죽음을 제거하시고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겨 주실 것입니다(계21:4). 그 때에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진정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죄를 알기 때문입니다. 죄의식이 없는 사람에게 죄에 대한 애통함은 더더욱 생겨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애통함에는 예수님의 용서와 사죄의 은혜를 통한 위로를 얻습니다. 이 세상의 죄와 자기의 죄에 대헤서 그것이 마음 가운데 슬픔으로 탄식하면서 지내는 것이 애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더 애통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늘도 애통 하면서 신앙생활을 합시다. 힘을 내십시오. 주님이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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