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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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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일에 말씀 강설할 내용의 앞 부분을 올려 드립니다. 원고는 오전예배 강설과 오후모임강설에 동영상과 함께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목사이면서 교사인 제가 다른 가르침을 전하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것입니다. 이번 주일에 할 내용을 통하여 주일을 맞이하면서 감사의 생활을 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 시간에 “예수님과 바알세불 나의 선택은?”이라는 말씀으로 강설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리고, 벙어리고 장님인 한 사람을 치유하셨을 때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가 온 것으로 크게 놀라면서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계속하여 어떻게 하면 음모를 꾸면 죽이고자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귀신의 왕 바알세불로 둔갑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당신님이 하셨던 일들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셨던 일들을 통해서 그러내신 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셨던 일들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는 바리새인들만이 아니라 이제는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대변이라고 주장하는 자신들을 위해서 예수님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3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외식을 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타당성을 위해서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높여 드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종종 사용한 표현입니다. 어떻게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말에는 정중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지난주에 배울 말씀처럼 예수님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로 몰아세운 것을 보면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신 일들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성은 예수님에게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증거를 당장 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해 오신 이적과 기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표적을 보여주지 아니하면 책임을 질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유대인들의 구약적인 전통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과 함께 초자연적인 표적을 통하여 증명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외식하는 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았다면 아마도,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충분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님의 정체성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많은 이적과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거부를 합니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통하여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도 거부한다는 것은 외식을 하는 자들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보여 주었어도 거부하고 어떻게 하면 표적을 통하여 다른 흠을 잡을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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