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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에 제가 강설한 것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bOqOqQnALA)

 

강설(설교)의 제목은 ‘가이오에게 삼박자 축복을 말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길을 잘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라는 것을 전하였습니다.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는, 제 마음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댓글을 올린 것을 생각을 하면서 일부분의 교회가 혹시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댓글을 보면 “삼박자축복이 뭔지알고 말씀하세요 걱정되네요 그시간에 전도하세요 질투해서 내가 모르는 것을 비찬하지말고요” ㅠ ㅠ

 

‘삼박자의 축복’은 한국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중세시대에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핵심을 아십니까? 그 핵심을 이야기하라면 성직자의 타락입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모습 아닐까요. 삼박자 축복을 말하지만 성직자는 더 타락하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성직자의 타락은 정치권력과 손을 잡으면서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공로를 쌓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직자는 더욱 사생활이 문란해져 갔습니다. 결국은 루터의 개혁으로 종교개혁은 일어나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희생한 것을, 오늘날의 성직자는 다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바르게 목회를 하면서 각 사람을 온전한 교회로 세우고자 하는 복음의 남은 자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중세 시대는 교회의 타락이 극치에 달하던 시대임으로 하나님은 당신님의 나라를 위해서 개혁을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늘 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직자의 개혁도 필요하지만 저는 전도에 대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동영상을 보고 ‘삼박자축복이 뭔지알고 말씀하세요 걱정되네요 그시간에 전도하세요’라고 하면서 전도를 잘 하라고 힘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도에 대한 글 좀 올려보고자 합니다. 빌1:17-18절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혹시나 이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예수님께서 ‘지상대명령’으로 부탁하신 것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과연 성경적인가를 나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의 지체들에게 질문을 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을 수 있다면 비양심적으로 벌면 되는 것입니까? 마치 ‘최순실’처럼 해도 되는 것입니까?

 

교회의 전도법을 보면 순수성이 있습니까? 전도만 된다면 비양심적으로 해도 됩니까?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에 나올 수 있다면 순수한 마음이 아닌 선물공세를 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까? 지금 한국교회를 들여다보면 저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전도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할 것인가? 아닙니까? 전도하는 방식을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가전제품 그리고 성경지리답사(성지순례는 비성경적인 용어입니다. 바른 용어를 정리하면, 성경지리답사)를 상품으로 주는 것은 과연 성경적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순수한 종교입니다. 순수한 의미에서 아무런 조권 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처럼 희생도 감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전도는 중요한 것입니다. 전도를 하자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전도를 위해서 순수한 마음을 상실하고 다른 마음을 품으면서 하는 전도를 과연 예수님이 좋아 하실까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는데 전도를 위해서 나의 중심은 어떠하십니까? 영혼 구원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은 용납될 수 있습니까?

 

목사님, 목사님이 오늘 본문으로 읽으시던 빌립보서를 보십시오.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 말씀을 생각하면 사도 바울은 전도를 위해서라면 가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렇습니다. 방법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전도를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찬성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만 된다면 무엇을 하는 관계가 없다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바울이 기뻐한 이유는 그리스도가 전파되기 때문에 기뻐한 것입니다.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기뻐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예배당이 많아지기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처럼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전도 방식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오늘날처럼 하는 전도 방식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 사도였습니다. 그리스도만 전달될 수 있도록 자신을 헌신한 사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시기와 질투로 전도를 하는 것을 칭찬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올바른 그리스도를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1:9절에서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복음의 본질을 중요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서에서 말씀하는 사도 바울은 말은 오늘의 시대처럼 하는 전도 방법을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전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나의 삶 그 자체가 성실할 때 그것이 전도의 힘이 됩니다. 나의 삶이 간접적인 예배의 모습임을 생각하면 성실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힘을 내십시오. 주일 예배에서 보여주던 모습을 일상생활에서도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도는 자연스러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 어떤 방법과 수단은 아님을 생각하십시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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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2. 6일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전도하는 것은 성경적인가? 전은덕 2016.12.06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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