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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눅2:1-14
강설날짜 2023-12-24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눅2:1-14)

 

오늘은 아시겠지만, 교회마다 예배당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며 예배하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린도전서를 잠시 멈추고 오늘은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장로교 신학자인 월필드는 “지금 우리 사이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어떤 열정적인 강도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축하하는 방식이 그의 승인을 받을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오신 날은 교회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사람은 계속해서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이처럼 우리에게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눅2:14절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짜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날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낙원으로 가신 후 세월이 지나면서 메리 크리스마스 하며 특별한 날로 예배합니다. 예배와 제사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수가성 여인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여인은 요4:25절에서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함으로 우리는 예배당에 모여 삼위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사라는 말을 사용하면 되겠습니까? 더구나 예수님의 탄생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제사를 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성경의 가르침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12월 25일을 기념하며 즐길 수 있지만, 교회는 세상 사람처럼 즐기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성경의 가르침대로 생활하며 예배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3:10절에서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365일 늘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며 종말의 시대를 생활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란 무엇인가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시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탄절을 생각하며 절기로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실 것 같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기에 생각하며 말씀을 통해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을 특별한 날처럼 섬기도록 성경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1899년 미국 남장로교 총회에서 이런 결정을 했습니다. 최길 목사님의 글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성탄절과 부활절을 종교적인 날, [즉 절기]로 인정하는 것"에 대해 "명확하고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 달라"는 헌의안이 제출되었다. 이에 대해 총회는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성경에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거룩한 날로 지켜야 한다는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갈 4:9-11, 골 2:16-21). 그리고 그러한 절기 준수는 개혁주의 신앙의 원리에 어긋나고, 자의적 예배를 조장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단순성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이것에 대해 최길 목사님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규칙적인 주간 안식일을 제외한 모든 교회력, [즉 각종 절기]를 배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오랜만에 성탄절에 대해 강설합니다. 무엇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강설하게 되었습니다. 12월이며 교회마다 성탄절을 생각하며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신 것을 생각하며 기뻐합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도 예수님의 오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더 타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2월 25일이면 바닷가 근처에 방을 구하고자 해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도시는 어떠합니까? 모텔 가격은 두 배로 구하기도 힘들다고 할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전혀 다른 길로 가는 세상입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말씀을 믿으며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시야이기 때문에 통치자이시며 만국을 다스리시는 자요 왕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예수님의 제자들도 같았습니다.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자신들이 만국의 분봉 왕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다른 방향으로 전환됐습니다. 예수님처럼 섬김의 생활을 하며 주의 길을 가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세상 사람들이 기뻐했습니까? 세상의 왕들도 기뻐했습니까? 경배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두 살 아래 사내아이는 죽이라고 헤롯 왕은 명령했습니다. 이런 비참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헤롯 왕은 자신의 권력을 누리고자 어린아이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께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런 고난은 어릴 때만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늘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애는 놀라운 신비가 있었습니다. 그릇된 메시야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온전하게 이루심으로 왜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셨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육신으로 오셨던 것을 성탄절로 바르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릇된 예수님에 관한 생각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함으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메시야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도 베드로는 놀라운 말씀을 강설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야이시며 그것만이 아니라 주라고 했습니다. 주라는 의미는 단순히 높이기 위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신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신은 가짜 신입니다. 허구입니다.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신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주입니다. 주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도 베드로는 행2:36절에서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모는 나라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강설은 초대교회와 오늘날 우리도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다른 종교에서 볼 수 없는 신앙고백입니다. 유일하신 신이기 때문에 교회만이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강설했습니다. 그리함으로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주가 되신다는 사실 그리고 메시야이심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만 구원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구원한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리함으로 사람들은 죄를 고백하며 속죄함을 받으므로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사람이 공로를 쌓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외적인 행동이 중요했습니다. 이런 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마12:34절에서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종교 지도자들처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행동의 열매는 구원과 관계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교회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육신으로 오심으로 사람처럼 영혼의 활동과 육체의 활동을 모두 하셨습니다. 신이면서도 사람처럼 완전한 활동을 했습니다. 신과 사람이 따로 활동하지 않고 통일된 한 인격자로서 사역하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몸이셨기 때문에 배고프고 목마르고 주무셔야 했습니다. 많은 사역을 하셨던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를 건널 때 주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몸이셨기 때문에 잠시라도 주무시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갈릴리 호수의 바람과 물결은 예수님께서 휴식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제자들은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해 오셨던 사역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두려움이 없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잠이 드신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야 했습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마8:26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연도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떠합니까?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이방인의 손을 이용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개신교에 있어서 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한결같이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받기 위해 어떻게 믿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경의 말씀과 교리를 통해 나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릴리 호수를 예수님과 동행하며 가는 제자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지식은 이처럼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놀라운 신비한 일을 체험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어떻게 했습니까? 쉽게 표현하면 삼십육계 줄행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바른 이해를 하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역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로또처럼 인생 역전이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 삶을 생활할 것 같지만 현실은 비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육신으로 오셨지만 사람들이 모두 경배했습니까? 사람은 자신의 신분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비참한 현실에서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값없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왜 중요한 것입니까? 왜 예수님께서 죽으면서까지 하나님 나라를 교회를 위해 주셔야만 했습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사랑해야 했습니까?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를 감당하시면서까지 교회를 위해 몸을 희생해야 했습니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나에게 주셨습니다. 새 생명을 받음으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값없이 받았습니다.

 

값없이 주어진 나라는 우리에게 삶의 희망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성육신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성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은 종말론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성탄절이면 예수님께서 아기 예수님으로 탄생한 것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은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성육신과 종말을 같이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이 구약에서 말씀하신 종말론적 구원을 어떻게 가져다주었는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후 마리아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눅1:51-53절을 보시면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입니다. 이 말씀은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간결하지만 구약의 말씀을 즉 종말의 때에 하나님께서 종말론적 구원을 이루었음을 선언하는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능력으로 권세가들과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교회로 부심을 입은 자들은 비천한 자입니다. 비천한 자를 돌보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산상수훈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비천해져야 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은혜로 갈 수 있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심으로 실현된 종말로 인해 주어진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만이 아니라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목자들이 방문했을 때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2:10-11절을 보시면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종말과 연결됩니까? 예수님께서 오심은 많은 사람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인데 종말과 연결된다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탄생은 종말론적 메시야의 임함에 대한 굿 뉴스입니다. 누가복음의 2장은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이야기이면서 종말을 의미합니다. 특히 눅2:38절은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의 속량”은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속량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종말의 시작으로 인해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종말의 시작을 가져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종말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생활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원해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육신 없이 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 교회는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다.

 

해마다 12월 25일이면 성탄절이라고 하며 세상 사람들처럼 절기를 지키듯이 놀고먹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성탄절에 대한 바른 가르침으로 인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자태를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요1:12-13절의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태어나도록 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니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성탄절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성탄절을 바르게 알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기 때문에 교회는 구원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환영했습니까? 만약 오늘날 시대에 오셨다면 환영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을 환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하고 예수님의 길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처럼 교회도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영접하는 교회는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교회로 성장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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