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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6:1-7
강설날짜 2018-09-23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0vLssb3nJA

초대교회 안에 일어난 원망과 사도들의 대처 방법(행6:1-7)

 

지팡이교회는 지난주에 “가말리엘의 권고”라는 강설을 들었습니다. 사도들은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을 죽이고자 하는 때에 가말리엘의 권고로 인하여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이요, 율법교사로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즉각적인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말리엘의 음성은 극적이며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가말리엘은 실패한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는 운동은 실패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드다와 갈릴리의 유다에 대해서는 지난주 강설을 참고해 주십시오. 가말리엘은 실패한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사도들을 당장 죽일 수 있지만 그들을 하나님께 맡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대적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놀라운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죽일 수 있었지만, 가말리엘의 말에 동의를 합니다. 아마도 백성들의 반란을 염려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한 것이고, 사도들은 실패한 드다와 갈릴리의 유다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면 이처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을 생각하면 신앙의 본질이 변질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총신, 고신, 합신에서 고 박윤선 목사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운 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과거 어떤 큰 교회의 목사님은 자신이 과거 박윤선 목사님으로부터 배운 사람이라고 하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하지만 목회의 현실을 보면 마음이 찡하기도 합니다. 왜 그런지 박윤선 목사님의 에베소서 주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그것은 교회의 사역과 구약시대 성전 사역의 차이점이다. 성전에서 이루어진 사역은 하나님께로 나아가 바치는 행사였으나, 신약 시대 교회의 사역은 신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서 은혜와 구원을 나누어주는 운동이다. 교회의 사역 결과도 마침내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대 교계에서 교회의 사역을 구약 시대의 성전 사역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예배 행위를 가리켜 제단을 쌓는다고 한다든가, 교직자를 구약 시대의 제사장격으로 착각하는 것 등이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이나 제단은 그 예표 하였던 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짤막한 것이 아쉬움이 있지만 깊은 내용을 아주 간결하게 잘 표현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순수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위한 종교를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속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카리스마적으로 잘 전하지만 자신을 위한 설교는 종교지도자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지팡이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성령의 인도로 나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당신님의 놀라운 섭리로 인도하여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지 아니하십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제자들을 구원 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전하였던 가말리엘 권고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유대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났고 제자들의 사상과 행동은 사람으로 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의 복음 증거는 오늘날까지 전하여지고 있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놀라운 것입니다.

 

가말리엘의 권고를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채찍질 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사도들은 능욕 받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공회를 떠나면서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했습니다. 과거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쳤지만 이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참된 주님의 제자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도 나약하고 연약하지만 제자들처럼 예수님께서 지켜주시면 강한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거룩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강하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도행전의 강설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것을 행1장에서 말씀하였고, 행2장에서 5장까지에서는 사도들이 감옥에 투옥이 되면서도 가르침으로 복음에 전념을 하였습니다. 성령은 사도들과 함께 하시면서 복음이 증거 될 수 있도록 사역에 축복을 하여 주시었습니다. 사도들이 제2차 감옥에서 풀려나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함으로 믿는 신자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럴 때 더 조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제자들의 가르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구절 중의 하나이며, 사도행전에서 가장 복잡하고 논란이 많은 구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처럼 성도가 많다는 의미를 넘어선 것입니다. ‘제자’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우신 열 두 제자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처음으로 신자들을 제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신자들도 사도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성장 하여, 복음의 사역자로 남을 가르치게 될 제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신자들도 제자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급성장하는 초대교회에 외적인 갈등이 아니라 내부적인 갈등이 일어난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고아와 과부를 돌볼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초대교회도 과부와 같이 연약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도왔습니다. 초대교회는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똑같이 하였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가르침과 전도는 영적인 일이고, 구제는 영적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본문에서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은 디아스포라로 유대 땅이 아닌 여러 나라에서 생활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땅에서 생활을 한 사람은 히브리 사람이라고 구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같은 민족이지만 이처럼 구분 하였습니다. 히브리인 사람들은 같은 민족이라고 하면서도 자신들만이 더 선민의 민족이라고 하면서 배타적인 생각을 한 것입니다. 같은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같은 제자가 되었지만 구제하는 일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초대교회 안에 좋은 일과 함께 좋지 아니한 일도 일어난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과부들에게 매일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했던 것입니다. 또한 언어적인 차이도 있었기 때문에 불평은 더했을 것입니다.

 

히브리인과 헬라인의 다툼은 교회 공동체 질서에 위협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사도들은 2절에서.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사도들은 자신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해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제자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 문제가 실제적인 것이어도 그들 자신이 그 일을(구제) 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 된다는 점에 유의 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사도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를 참여 시킨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의 공동의회 즉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권위로 할 수 있지만 교회 안에서 성도를 존중하고 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들은 자신들에게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무엇인가를 제자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에 구제 사업을 비롯한 행정적 일들이 날로 늘어감에 따라 사도들은 정작 복음 증거 사역에 주력을 해야 하지만 점점 더 소홀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들은 그들이 맡은 사명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교회 안의 행정적인 일을 분리할 것을 제안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접대를 일삼는 것’이라고 되어있지만 원어의 의미를 좀 더 살리면 ‘식탁들에서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섬기다는 의미는 식탁 봉사와 성찬 상을 차리는 일을 비롯한 구제 사업과 교회의 재정 출납 및 교회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식량과 생활 용품 등을 나누어 주는 일을 총괄하여 지칭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말씀 봉사에 힘쓰기 위해 3-4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제안을 합니다. 사도들은 가르침이 더 높기 때문에 구제 사역 즉 섬김의 봉사를 낮게 여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능과 역할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치의 차이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입니다. 사도들은 교회 안에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 무슨 말을 했고, 어떻게 행동했느냐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들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제자들에게 일을 맡기면서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칭찬 받는 사람’으로 교회 안에서 신자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꾼으로 외적인 것과 내적인 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맡을 사람은 성령 충만한 결과로 나타나는 신앙 인격 또한 타의 모범 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직분자의 모습입니다. 사도들은 일곱 명을 선출하게 함으로 자신들의 보조자나 종 또는 심부름꾼으로 선택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들도 자신들과 같은 동역자로 교회 안에서 섬기도록 한 것입니다. 직분은 이처럼 높고 낮음이 없는 봉사의 섬김입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교회의 일부분은 “교회 사역을 구약 시대의 성전 사역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교회의 본질과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함으로 기도하는 것과 말씀 사역에 전념을 하도록 권면을 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부탁하신 기능과 역할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서로 원망하면서 일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사도들을 부르신 본래의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권면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말씀 전하는 사명을 특별히 부여하심과(막16:15)함께 늘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고 기도의 모형을 제시하시며 기도를 가르치시기도 했습니다(마 6:9). 사도들이 기도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 초대교회 안에서 비쳤다면 당연히 신자들도 기도에 열심을 다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안의 신자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권면에 따라 초대 교회는 일꾼을 선출하게 됩니다. 5절을 보시면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은 권면으로 초대 교회 신자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이 권면한 대로 적합한 자들을 선출합니다. 5절에서 유독 스데반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스데반의 사건을 집중적으로 언급할 것을 알리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사람의 이름은 인종과 직업 등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표준이 아니라 신앙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선출된 일꾼들에게 6절을 보시면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초대교회의 일꾼들은 사도들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이고 같은 섬김의 봉사자로 관계를 맺도록 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일꾼들을 위해 기도 함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교회 안에 발생한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함으로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안수’라는 단어입니다. 교회 안의 문제를 사도들이 권면하고,신자들이 한 것 같지만 결정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일곱 일꾼들에게 안수하여 구제의 일을 책임지도록 한 것입니다. 책임지도록 하면서 안수한다는 의미는 민27:18-23절에 나오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그 직무를 위임한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거기에 보면 이러한 한수 행위를 통해서 모세의 권위 중 얼마가 여호수아에게 부여되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본문의 안수 행위는 사도들이 그 권위를 교회에서 뽑은 일곱 일꾼들에게 위임한다는 것을 상정하는 의미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일곱 일꾼들은 사도들처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 교회의 인정과 권위부여를 받음으로 교회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섬김의 봉사입니다. 오늘날에도 중요하게 생각 해야 할 것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하는 자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이처럼 일꾼을 바르게 세웠을 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납니까? 7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여기서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지는 것으로 성경의 교훈의 가르침이 더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가르치는 일에 더 많이 전념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많아 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가르침과 일곱 일꾼들의 봉사의 섬김을 통해 교회가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잘 드러낸 결과입니다. 그 결과로 교회는 수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제자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제자장의 특권을 버리고 다 같이 교회요, 신자요, 성도가 된 것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사장은 마치 왕 같은 직분이요 권력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안 후 자기의 특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 보내어 주심으로 초대교회는 건실한 일꾼을 세우면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회개와 개종을 불러일으키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 행6장은 교회가 좋아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가장 잘 알고 있기도 하지만 가장 쉽게 망각하는 것이 오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어떤 분들은 자신들이 교회에서 가장 많은 일들을 한다고 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큰 교회 목사이면 사회적으로도 대우를 많이 받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신들의 재주, 지혜, 지식, 능력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의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을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제자들 즉 교회 안의 신자들과 공유 했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신자들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장들은 자신을 자랑했지만 결국 자신을 포기할 때 하나님의 긍휼로 제자가 되어 교회 안에서 신자들과 같은 신분이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믿음이 강하고 성경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들어온 모든 신자들은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믿음과 성령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당신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심으로 자연스럽게 받음으로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떠한 행위로 받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입니다.

 

지팡이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으로 성장함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몸인 교회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행각하면서 나는 ‘지혜가 충만한 성도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의 지혜는 실제 생활 속에서 최선의 목적에 이르기 위해 어떤 것을 택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할 것인가를 아는 분별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이 말한 것을 기뻐하면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택하는 모습을 보면 직분은 권위와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의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날 때 “초대교회 안에 일어난 원망과 사도들의 대처 방법”을 생각하면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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