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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시87:1-7
강설날짜 2023-12-31

하나님 나라에 호적을 둔 교회(시87:1-7)

 

오늘은 2023년을 마무리하는 12월 31일입니다. 주일예배를 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는 특별한 행사를 하며 새해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팡이 교회는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365일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있는 그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보여주기식 예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통해 영광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주님께서는 두 렙돈을 드린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상했기 때문입니다. 삶으로 인해 세상에서 지쳐 있습니까? 지쳐 있는 그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면 됩니다. 종교 지도자들처럼 외식하면서 예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아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기뻐했습니다. 바로 교회가 잃어버렸던 탕자와 같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진실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나라에서 있는 그대로 생활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학연, 지연, 혈연 등을 통해 영광을 받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존재가 교회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는 편견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러니 교회는 늘 마음의 중심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을 위한 사교의 장소가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을 위한 쇼의 장소가 아닙니다. 예배의 VIP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값없이 구원하시고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함으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호적을 둔 것을 알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대로 생활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교회다운 모습입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세상보다 하나님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타락했지만, 우리의 호적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오늘은 시87:1-7절 말씀을 사용해 “하나님 나라에 호적을 둔 교회”를 강설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아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창세기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기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오늘 본문 표제를 보시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라 자손의 시 곧 노래”입니다. 이 의미는 고라 자손들에 의해서 노래로 불린 시입니다. 고라는 야곱과 레아의 셋째 아들 레위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에게 성전에서 봉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라 자손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노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라 자손을 통해 신자들에게 영감을 주시며 슬프거나 기쁠 때나 당신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짧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본향을 향해 전진하는 우리에게는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첫 시작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절을 보시면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입니다. 여기서 성산은 시온산을 의미합니다. 시온산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루살렘 성”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시온산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산에 아무런 의미 없이 성전을 짓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차분하게 읽어야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쉽게 읽으면 모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터전”이라는 단어를 생각해야 합니다. 터전이라는 의미는 원래 “세우다”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터전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오늘 본문에만 나옵니다. 건물을 세우기 전에 기초가 중요합니다. 터전이 좋아야 건물도 튼튼합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고자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오히려 좋은 땅에 건물을 세우고자 합니다. 터전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동의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용하는 터전의 의미는 우주의 기원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우리말로 터전과 세우다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성경은 하나의 단어로 사용됩니다. 시24: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세우심이여는 이런 의미입니다. “터를 세우다”입니다. 이것을 간략하게 세우심이여라고 번역했습니다. 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입니다. 터와 세우심이 등장합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말은 서로 다르게 사용되지만, 유대인은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까? 그 해답을 3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입니다. 터에 세우신 의미는 여호와의 산을 의미합니다. 지역의 의미를 넘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도록 하십니다. 우주의 기원이 누구에게 있는가? 바로 창조주이신 삼위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터에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성산”은 특정한 지역을 넘어 “우주의 기초”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라 자손을 통해 우주의 기초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산을 통해 교회를 지키시며 쓰러지지 않도록 하십니다. 이 세상의 성산은 모형이지만 실제는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시11:4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다윗은 성전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주를 감찰하시고 통찰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 우주의 기초이며 중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사랑하십니다. 그중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존귀한 사랑을 받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거처보다 예루살렘의 시온을 사랑하십니다. 시온이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형은 온전한 하나님 나라를 알도록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참된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그곳에서 사람은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교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온이 어떤 곳인지 알도록 하십니다. 3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시온산은 에베레스트산보다 높지 않은 산입니다. 한라산보다 작은 산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산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지역을 선택하실 수 있지만 시온산을 택하셨습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 것은 시온산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산입니다. 성전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죄로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만 구원받은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왜 제사장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몰랐습니다. 선지자들이 말씀을 전해도 알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때가 차매 예수님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함으로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심으로 직접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습니다. 4절과 5절입니다. 고라 자손에 의해 노래로 불린 시는 유대인의 구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방인도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싫어하는 이방인입니다. 늘 가까운 나라지만 지금까지도 전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오해하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웃을 위해 전쟁을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4절을 보시면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입니다. 여기서 라합, 바벨론, 블레셋, 두로, 구스가 나옵니다. 라합이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나라로 등장합니다. 4절에서 등장하는 라합은 오늘날 이집트를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애굽입니다. 사30:7절을 보시면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입니다. 애굽을 라합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외 나라도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나라입니다. 이처럼 주변국과 좋은 사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방인의 나라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방인의 나라들도 시온에 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느 사람이나 주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이방인이라도 출생지가 시온입니다. 호적이 시온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만 믿기만 하면 됩니다. 죄로부터 회복하면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진정한 고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호적은 하나님 나라 바로 시온입니다.

 

호적을 회복한 나라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5절을 보시면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입니다. 시온은 하나님 나라의 성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울려 퍼지는 곳입니다. 그러니 어느 사람이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선지자들과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호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호적을 둔 성도입니다. 호적을 회복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준 것을 늘 기억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은 몇 명이 구원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교회는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6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셀라)”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통해 복음이 심어지도록 하십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이라도 호적을 찾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교회는 생명과 출생의 시작이 시온 즉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된 생명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14:6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은 참된 길과 진리와 생명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좁고 협착합니다. 찾는 사람은 적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끝까지 구원하십니다. 구원함을 받은 백성은 하나님 나라에서 존귀와 영광을 올려드리며 예배하는 섬김의 생활을 합니다. 그때를 바라보며 소망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서로 다툼이 있지만, 구원받은 백성은 7절을 보시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에서 섬김을 받습니다. 거룩한 성 즉 하나님 나라에서 백성이 춤추며 축제합니다. 우리도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서 춤추며 피리도 불며 자신들의 구원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노래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행복입니다. 그러니 호적을 회복하지 못한 자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 나라에서 축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터전에 모이도록 합니다. 사2:2절을 보시면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입니다. 그때를 소망하는 교회가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교회는 참된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이렇게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출생하면 호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호적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호적을 회복한 백성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호적은 죽으면 끝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호적을 회복한 백성은 그곳에서 영원토록 생활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교회는 호적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이라도 당신님께서는(하나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시온을 찬양합니다. 시온은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복의 근원을 회복한 백성은 하나님 나라에서 은총을 누리는 축복을 받으며 생활합니다. 그때를 기다리는 교회는 행복한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근원이라는 것이 행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활할 수 있도록 든든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생활하도록 하십니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잘 알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기록한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어거스틴은 3절의 말씀을 알고 책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도성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경배한다는 것을 행복입니다. 교회의 뿌리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교회가 생명이 있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요15: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포도나무에 있는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음으로 열매를 맺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고라 자손들이 노래를 통해 알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의 근원이 즉 호적이 어디에 있는가입니다. 그래서 4-6절에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합니다. 그것은 “났다”입니다. “났다”라는 단어를 반복함으로 하나님께서 시온을 낳듯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도록 합니다. 그 결과 나라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호적과 뿌리를 알고 하나님께 경배하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교회의 초석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터전이 되어 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사람이 기뻐하며 2023년의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마무리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호적을 둔 교회임을 명심하는 지팡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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