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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6:57-68
강설날짜 2018-02-18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마26:57-68절)

 

지팡이교회는 여러 번의 강설을 들으면서 가룟 유다가 종교지도자들의 경비대원들과 함께 “칼과 몽치”로 가지고 온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 동안의 예수님의 사역은 늘 한결같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체포를 하고 싶어도 백성의 폭동이 두려워하여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함으로 경비대원들과 함께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야심한 밤에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완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륫 유다는 경비대원들과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고 한 것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자신의 스승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친구여’라고 하시면서 너가 왜 왔는지 아니 어서 행하라고 하십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승리를 아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그 때에 경비대원의 하나인 “말고”의 귀를 배어 떨어드린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충성을 다하여 예수님을 보호하겠다는 것을 보여 준 것 같습니다. 겟세마네에서 보여 주신 예수님의 기도를 모르는 제자들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누가 보더라도 그들에게 패배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볼 준비는 되어 잊지 못한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하신 후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하심으로 베드로의 행동을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그들에게 내어 주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에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전하여 주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지금 이루어지는 상황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글에는 메시야를 보내셔서 죄를 완전히 제거하심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깊은 뜻을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들을 가르쳐 오신 깊은 뜻을 생각하지 못하고 제자들은 당혹과 혼란에 빠져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끌려갔습니다. 오늘 본문 57절을 보시면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대제사장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가야바는 거의 18년 동안 대제사장직을 유지했으며, 요셉푸스에 의하면 예루살렘 “윗성”이 있는 저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성전이 잘 보이는 장소에서 예수님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심문하고자 하는 곳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으로서 예수님을 신속하게 심문함으로 백성들의 민란을 막고자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리새인의 율법에는 불법적으로 모여서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특히 축제기간에는 더욱 어기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일이 진행되는 동안 베드로는 58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집 뜰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 충성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지켜 체면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하인들과 같은 사람인 것처럼 하여 예수님께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초능력적인 일이 일어날 것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평소와 다르게 담대하지 아니하면서 소극적으로 하인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일의 결국을 알고자 하여 예수님의 곁에서 완전히 도망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많은 이적과 기적 그리고 말씀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였지만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베드로의 입장이라면 선 ‘나’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지금의 현실은 당황스럽고 의문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꿈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결말’을 보려고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여 온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밤에 해결을 해야 했습니다. 59절을 보시면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산헤드린 공회에 모여서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한 거짓 증거만 찾고자 한 것입니다. 거짓 증거를 찾으려고 오랫동안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에게 주신 “언약의 열 가지 말씀”(십계명)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중에 출20:16절에서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는 제9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특히 60절에서는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거짓 증인이 많아도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최소한 증인으로 두 명이 있어야 하지만 서로 달랐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율법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죄를 찾고자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병행 본문인 요18:14절에서는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법적인 절차의 형식을 짜 맞추고자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그 때에 ‘두 사람이’ 온 것입니다. 그들은 61절에서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마24:2절에서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요2:19절을 잘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너희’라고 하셨지 예수님께서 직접 성전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찾고자 하지만 찾을 수 없었던 그 때에 두 사람이 와서 증언을 했지만 위증한 것입니다. 그 증거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참으로 불쌍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해하는 것은 결국 심판의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함으로 결국 위증을 범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께서 성전의 실체이심을 드러내심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도록 ‘하나님의 성전을 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이신 예수님께서는 허물어진 것을 다시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에 대한 개념을 오해하고 있던 종교지도자들과 백성은 돌로 지어진 것만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성경을 잘 알아야 하는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일 수 있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예배당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요 성도인 우리에게 올바른 말씀이 강설이 되어야 하지만 어떻습니까? 일부분은 상상할 수 없는 말씀을 전해도 알지 못하는 현실은 참으로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위증을 들었던 그들 중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62절에서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고 하면서 답변을 듣고자 하면서 조롱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증거 하는 것에 대해서 너는(예수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본 것입니다. 우리라면 어떤 증거를 동원해서라도 빠져 나오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63절에서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하시면서 ‘침묵’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담담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잠잠하시는 것입니다. 사53:7절에서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는 말씀을 이루시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겨우 증거를 찾으려고 애를 써가며 스스로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그냥 두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대제사장은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유죄를 받아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대로 심문을 계속하면 아침이 되어 백성의 민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함으로 자기 입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가야바는 그렇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로마의 법정에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반란을 일으키고자 한다는 명분으로 고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로부터 사형을 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야바의 질문의 대답은 이미 예수님께서 복음의 사역에서 즉 들을 귀 있는 자들에게 여러 차례 증거 하셨고, 말씀과 표적으로 뒷받침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가야바는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기도 옳고, 질문도 올바른 것이었지만 누가 이 질문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이고자 악용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했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전’을 무너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말한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듣고자 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잘 알 것입니다. 제자들은 진실하게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한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했지만, 여기서 대제사장은 악용하여 로마의 법정에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라고 함으로 진실만을 답변하라는 강력한 요구였습니다. 가야바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64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시면서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다시 질문을 돌리는 유대인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예수님의 바로 앞에 있다 할지라도 전혀 굴하지 않고 그들이 요구하는 진실을 답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심으로 너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겠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여 아버지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마지막 날에는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시110:1절에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는 말씀과 단7:13절로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의 말씀의 예언을 당신님에게 적용시킴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신적인 권위를 명확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심으로 너희들의 모습을 알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숨기셨지만 여기서부터는 명확하게 드러내심으로 장차 심판자임을 알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대제사장은 어떤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까? 65절을 보시면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라고 하면서 옷을 찢는 것입니다. 옷을 찢는 것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의미하는 것이고, 신성 모독과 하나님께 회개를 할 때 등입니다. 대제사장은 이제는 더 이상 심문을 할 필요가 없는 신성 모독을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가야바는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라고 하면서 6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고 산헤드린 공회는 판결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진실을 말함으로 예수님께서 처형을 당하는 것은 법정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병행본문인 요한복음에서 그들은 이미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오랜 사역을 지켜보면서 죽이고자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청지적인 방법으로 옷을 찢으면서 죄를 씌우고자 하는 것은 위증이요 연극과 같은 것입니다. 진실을 말한 예수님의 답변이 진실로 그러한가를 생각해야 하지만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끝을 내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67-68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그들은 이제 로마의 법정에 예수님을 세워야 하지만 예수님을 모독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신체적인 학대를 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독하고 비열하고 추악한 그들에 의해서 당하는 것도 마음이 아프시지만, 육체적인 학대를 당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더욱 힘들었을 것은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는 것은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학대를 하면서 너가 선지가 노릇하면서 너를 친 자가 누군지 맞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시기 위해서 마치 오른 편을 치면 왼 편을 돌려 대라는 것을 이루시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것은 극악무도한 것입니다. 진실을 말씀하여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구약의 말씀 즉 선지자의 예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속여서 전하는 것은 그들과 같은 죄를 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예수님께서 언제나 진실로 말씀을 증거 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지팡이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서 복음의 대적 자들에게 담대함으로 복음의 증인 자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모르고 선지자로 취급하여 죽이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의해 당신님의 백성이 된 교회로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모욕과 학대를 당하더라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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