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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5:9-13
강설날짜 2023-07-30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D9IqQqpv8lc

부패한 고린도 교회를 향한 마음2(고전5:9-13)

 

오늘날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세상 사람도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는 것은 신앙의 위기입니다. 신앙의 위기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를 바르게 알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서 복음을 바르게 전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교회가 교회 됨을 잊고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중세 시대처럼 교회가 타락됨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관한 관심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잘 먹고 잘 생활하며 성공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성도는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생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독특한 정체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통령 또는 왕이 자신을 보호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다른 마음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며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이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유기체이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대로 생활하며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를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다운 모습입니다. 교회는 성도가 바르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사도 바울처럼 영적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도를 통해 세상 사람도 우리와 같은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왜곡된 복음의 말씀이 난무하는 시대에 교회는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교회 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교회 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난주 강설을 다시 기억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 여행을 통해 고린도 교회를 세운 영적 아버지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한 일꾼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고린도 교회는 어떠했습니까? 세월이 지나면서 고린도 교회는 세상 사람보다 더 타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방인도 하지 않는 죄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아내 즉 계모 또는 첩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부패한 고린도 교회를 향한 마음으로 권고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화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였습니다. 아버지의 아내를 범한 자를 교회는 징계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교만해짐으로 인해 죄를 죄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치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몸은 다른 장소에 있지만 영적 아버지로서 고린도 교회와 함께 있다고 합니다.

 

교회는 “주 예수의 이름”과 “주 예수의 능력”으로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과 능력을 믿으며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니 성경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리는 교회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치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이키도록 하는 것이며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심판의 날 즉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법정과 교회의 치리는 다릅니다. 교회 안에 나쁜 누룩이 있다면 당연히 제거해야 합니다. 죄로 타락한 누룩을 제거할 때 교회는 순결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어린 양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주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순결함을 위해 부패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 강설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교회는 교회가 교회의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교회다운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편지를 써서 권고하며 책망하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서 바르게 갈 수 있도록 사역했습니다. 바울은 고전5장에 대해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 앞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가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편지의 내용은 알기 어렵습니다. 편지가 분실됨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아쉽게도 내용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유추해 보면 “음행”에 대한 글이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보낸 편지를 고린도 교회는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편지로 원래의 뜻을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시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입니다. 사도 바울이 먼저 보낸 편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라는 문구 때문입니다. 교회가 징계한 신자와 사귀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은 음행한 자와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교제하지 말라고 합니다. 징계받은 신자가 자신의 죄를 돌이키면 당연히 교회는 받아들이고 함께 교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세상 사람과 같은 삶을 생활하며 음행하는 자와 교제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불신자와 교제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를 범한 자와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며 생활했습니다. 10절을 보시면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입니다. 세상 사람과 모두 단절된 삶을 생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상명령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즉 고린도 교회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상밖에 존재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과 함께 섞여 살아가도록 하시며 남은 자를 구원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를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교회 안에 가라지와 알곡이 있습니다. 교회의 알곡은 세상 속에서 알곡으로 생활하며 남은 자를 구원합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생활하며 복음이 심어질 수 있도록 선한 영향을 줍니다.

 

교회 안에 알곡만 있다면 세상 사람도 부러워할 것이라 믿습니다. 초대 교회가 성장할 때 그리고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올 때 신자들은 말씀을 듣고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옷을 입고 생활했습니다. 그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나도 교회에 가면 신자들처럼 될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교회 안에 가라지가 많아지면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자신들이나 신자들이나 도긴개긴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순수성을 지킨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법 없이 생활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은 타락했기 때문에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 중에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교회는 단절된 삶을 생활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성도가 있습니다. 지금은 죄인이지만 복음을 듣고 새사람이 될 수 있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구원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삶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쉬운 것 같지만, 참으로 난해한 본문입니다. 교회는 내부적으로는 “엄격한 징계”가 있어야 합니다. 외부적으로는 “완전한 교제의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바울이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도록 하는 것입니까? 교회 안에서 음행한 자는 징계하고, 세상 사람 중에 예를 들면 음행한 자와 교제하며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9절과 10절이 서로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9절에서는 음행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10절은 사귀지 말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11절을 보시면 사귀지 말라고 하시며 더 극단적인 것 같습니다. 함께 식사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교제하라는 것입니까? 반대로 교제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이 오늘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한 것을 교회가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이라고 하십니다. 문자 그대로 생각하면 교제하지도 말고 함께 식사도 하면 안 됩니다. 사람과 교제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음행, 탐욕, 우상 숭배, 모욕하는 자, 술 취하는 자, 속이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악한 자의 손에 있는 자이기 때문에 교제도 하지 말고 식사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교회 공동체 안에 이런 자들이 있으면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런 자들에 의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있는 알곡인 성도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존재로 생활해야 합니다.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세상과의 타협과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교회의 순결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권면합니다.

 

참으로 오늘 말씀은 어렵습니다. 10절과 11절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세상 가운데 있도록 하셨습니다. 죄로 타락한 우리가 회개할 때 곧바로 주님께서 계신 낙원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낙원으로 당장 구원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은 우리를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십니다. 우리도 누군가 복음을 전해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섞여 살도록 하시며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전하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세상 사람 중에 남은 자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13장에서 밀과 가라지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속에 좋은 씨앗을 심었지만, 가라지가 생겨났습니다. 왜 가라지가 생겨난 것입니까? 저절로 자란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는 마귀에 속한 자들입니다. 당장 가라지를 뽑아버리고자 하지만 알곡이 상할 수 있으므로 마지막 심판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라지이지만 그들 중에 알곡도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복음을 믿을 수 있도록 교회는 선한 영향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빛과 소금과 같은 힘이 있어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을 교회는 알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남은 자를 구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 중에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도 교회는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자들이 회개하지 않고 교회 안에 들어와 계속 신앙 생활하도록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교회는 순결을 지켜야 하므로 주님께서 치리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생활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이 복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죄의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생활하며 가라지와 같은 사람에게 복음이 무엇인지 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은 돈과 명예 그리고 출세와 성공 등을 위해 생활하지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이 무엇인지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말한 것에 대한 이유를 다시 호소하는 것이 12절입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입니다. 우리말 번역본에는 없지만, 서두에 “왜냐하면”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말한 것의 최고 방법이라는 것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의무가 무엇인가를 다시 확인해 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나와 상관없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는 세상의 법정에서 다루기 때문에 교회는 교회의 사건만 다루면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법정과 교회의 치리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세상의 법정에서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런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교회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교회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법입니까?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권징 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입니다. 선악을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악행을 행하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치리가 있도록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악한 자가 있지 않게 하려고 치리를 주셨습니다. 교회의 순결성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악한 누룩을 제거함으로 교회가 더는 타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치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신자는 돌이킴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을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악한 행동을 한 자를 묵인하면 안 됩니다. 악한 행동을 하는 자들에 의해 다른 신자가 같은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함으로 악한 누룩이 없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순결을 지킬 수 있도록 치리가 있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이 다스리는 대통령 또는 왕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치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패한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상명령을 위해 헌신한 일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이 악한 일들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신자들이 순결을 지킬 수 있도록 섬겼습니다. 교회는 행악하는 일을 하지 말며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은 헛된 부귀영화의 삶을 위해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생활하기 때문에 헛된 삶이 아닙니다.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함으로 세상 사람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습니다. 이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볼 때 행복이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신 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기 때문에 신부인 교회는 순결해야 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오실 때 신부인 교회는 부활하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도록 하십니다.

 

최후의 심판 날까지 교회가 순결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회는 늘 순결하며 행복합니까? 알곡과 가라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는 악을 행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순결할 수 있도록 하려는 방법입니다. 교회는 순결함으로 세상 사람도 교회를 보고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전이라는 것을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스스로 넘어지지 않도록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부패한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아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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