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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10:23-33
강설날짜 2023-12-17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10:23-33)

 

그리스도인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누구로부터 받은 복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교회는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구원받은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입니다. 그리함으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선행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낸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값없이 주어진 복입니다. 그리함으로 교회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생활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합니다. 하나님 백성다운 교회로서 섬김의 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건강한 삶을 생활하며 소원성취하기를 좋아합니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도 성육신의 삶은 어떠하셨습니까? 진실한 섬김의 생활이었습니다. 산상수훈처럼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를 위해 핍박 받았습니다. 누구를 위한 섬김의 생활이었습니까? 교회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함으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선물을 받은 교회는 복을 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자기를 부인하며 산상수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신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요3:29절을 보시면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찬송가 가사 중에 “신랑 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밝은 등불 들고 나갈 준비됐느냐 그날 밤 그날 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됐느냐”도 있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신부이기 때문에 우상숭배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을 아는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우상숭배의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고린도 지역은 우상숭배의 도시이기 때문에 우상숭배는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상숭배를 한 후 제물을 함께 먹으며 교제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우상과 몸을 함께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일이 없도록 교회는 성경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우상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신부는 신랑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부가 신랑을 사모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이상한 행동을 하면 되겠습니까? 신랑과 신부는 서로 한 몸이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과 교회는 한 몸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보다 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신부인 교회는 신랑을 사모하며 마지막 때를 기다리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사람이 예수님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도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돼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지역의 자유는 자신을 위한 자유였습니다. 그들의 자유는 “모든 것이 가하다”는 생각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유라는 단어를 이용해 교회의 전반적인 유익과 덕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23절을 보시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개인의 자유보다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초점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우상숭배를 좋아하는 고린도 지역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신을 섬겨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도 같은 생각을 해야 합니까? 고린도 교회처럼 우상숭배를 해도 됩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우상 제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형제를 위해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상 제물은 교회의 덕을 위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먹을 수 있으나 교회의 유익과 덕을 위해 먹지 않는 것도 좋습니다. 우상 제물이 불결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연약한 형제를 위해 우상 제물을 먹지 않는 것도 좋습니다. 사도 바울은 20절에서 “너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3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따라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이 교회를 위한 마음입니다.

 

사실 음식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주신 자유입니다. 자유를 주신 이유는 음식을 주신 분이 누구신가를 생각하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타락한 자들은 자신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대로 교회는 음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유익과 덕을 위해 음식을 먹으라고 합니다. 24절을 보시면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을 뼛속까지 교회를 사랑하는 사도입니다. 자신을 위한 삶도 중요하지만,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공동체입니다. 교회처럼 참된 자유를 사용해 이웃을 섬기는 생활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유익과 덕을 위해 생활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힘든 섬김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우상 제물의 자체가 불결함이 아니라 믿음이 연약한 자들의 유익과 덕을 위해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개인의 유익보다 교회의 구원 그리고 유익과 덕을 위해 생각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입니다. 우상 제물은 불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시장에서 파는 것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먹으라고 합니다. 우상은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신적인 존재도 아닙니다. 시장에서 파는 음식이 우상에게 받쳐진 음식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입니다. 왜냐하면, 25절을 보십시오.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식사하기 전 하나님께서 음식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기도한 내용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충만하므로 불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은 더럽혀졌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 신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음식은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음식은 이상이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영광을 올려드리며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만약 불신자가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먹자고 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오늘날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지역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집에 가지고 와 먹었습니다. 이럴 때 친한 친구에게 질문해 본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6절에서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이라도 희생 제물로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음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양심에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으며 교제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음식을 먹기 전 우상에게 바쳐진 것인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초대한 이웃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27절을 보시면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음식을 놓고 먹느냐 안 먹느냐가 아니라 영광의 기준이 누구를 위한 유익입니다. 우상을 섬기며 함께 먹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지만 집에서 먹는 음식은 양심에 따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식사하던 중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상 제물이라고 말하면 그분을 위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8절을 보시면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음식에는 문제가 없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의 양심에 거리낌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믿음이 연약한 자가 음식에 대한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음식에 대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족할 수 있습니다. 양심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남의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29절에서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왜 양심은 남의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우상 제물로 인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우상도 섬기면서 음식을 먹어도 이상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예수님도 믿으면서도 우상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믿음이 있는 자는 그 사람이 오해하지 못하도록 먹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를 위해 먹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나의 양심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를 위한 양심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가 죄를 짓지 못하도록 교회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침으로 바른길을 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감사함으로 먹을 때 비방을 받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30절에서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29절의 말씀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이방인의 집에 초청받았을 때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먹는 것은 합당하기에 비방받을 일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이 연약한 자가 함께 참석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좋습니다. 그때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31절을 보시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누가 합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양심과 판단에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식을 먹을 때도 먹을 수 있는 권리와 먹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형제의 믿음에 따라 좋은 판단을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말씀은 교회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베전4:11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형제의 유익도 중요합니다.

 

교회는 죄의 기회를 제공하는 성도가 되면 안 됩니다. 왜 그런지 32절을 보시면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입니다. 교회에게 죄의 원인이 되는 것을 피하도록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우상의 제물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도 바울은 원인이 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죄의 기회를 제공하면 안 됩니다. 나만이 아니라 교회는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 배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실족하도록 하는 자는 어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까? 실족케 하는 자는 화가 있다고 하면서 연자 맷돌을 자기 목에 메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형제의 구원도 중요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행동을 본보기로 고린도 교회에게 권면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사도 바울의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31절을 보시면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적극적인 지침으로 마무리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람을 위해 기쁘게 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러기 위해 모든 일에 사람의 유익을 위해 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마무리를 31절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한 마음입니다. 나는 형제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해 왔던 행동을 본보기로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한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보여주신 사랑을 이어받아 교회는 서로 한 몸이 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며 사람의 구원과 유익을 위해 생활하는 것이 삶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십니다. 사도 바울의 행동은 교회에게 덕을 세우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절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가능해도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먹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형제를 위한 마음보다 자신을 위한 행동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질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알도록 하셨습니다.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 좋은가를 생각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주님의 몸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서로 복종하며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 일부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예배당을 가지고 알박기하는 교회도 있고 세상의 기업처럼 사업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는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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