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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15:1-11

그리스도의 부활이란?(고전15:1-11)

 

죄로 말미암아 사람은 가짜 신을 만들어 놓고 자신이 원하는 복을 받고자 합니다. 가짜 신을 만들어 놓고 복을 빌어도 가짜 신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짜 신을 만들어 놓은 사람은 스스로 위안받은 것으로 생각하며 삶을 생활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이비처럼 복음을 전하면 안 됩니다. 사이비처럼 복음을 전하지 않고 참된 복음 즉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마음을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죄로부터 구원받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물가에 오지 않는 시간에 물을 길으려고 우물가에 왔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사마리아 여인은 자유로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 받은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으로 참된 예배의 삶을 살았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세상 사람들처럼 가짜 신을 만들어 놓고 예배하지 않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배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힘입니다. 성경을 통해 삼위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전 지난주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회의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 있게”라는 강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교회도 품위 있고 질서가 있도록 하십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쟁과 분열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질서를 찾을 수 있도록 섬겼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중요시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예배 중에 예언할 때 둘이나 셋이나 말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예언이 참된 것인지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은사를 사용하더라도 질서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배할 때 교회는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지러움과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입니다. 죄로 타락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한 삶과 무질서한 삶을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인처럼 참된 삼위 하나님을 알면 질서 있는 삶을 생활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도 질서 있게 생활하지 못하는 삶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기도합니다.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알게 하십니다. 인생의 목적과 의를 아는 교회는 서로 복종하며 교회의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질서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교회의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생활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사람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중에도 고린도 교회처럼 생각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기업과 같은 교회 명패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참된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참된 부활이 무엇인지 알도록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교회가 무엇을 사랑하며 삶을 생활해야 하는지 바르게 알도록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도록 함으로 구원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부활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생활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죽어서 부활하면 되지 지금의 현실이 중요했습니다. 부활보다 자신들의 풍요로운 삶이 중요했습니다.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 등이 중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지만, 고린도 교회는 십자가를 떠난 풍요로운 삶이 더 좋았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처럼 몸이 수고하고 고난받고 희생하는 삶과 거기라 멀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현실을 현미경을 보는 것처럼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부활을 통해 죄를 짓지 않고 교회의 덕과 질서를 통해 삶으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우리 죄를 용서하셨으며 고난 가운데 은혜를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합니다. 복음은 고린도 교회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계속 전하여지면서 우리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복음은 전승되는 것이며 계속 전승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에 의해 복음이 전승되지 않았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복음이 전승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교회가 우리입니다. 고린도 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사랑을 기억하지 못함으로 인해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런 교회를 위해 사도 바울은 1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사용해 고린도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했습니다. 복음을 들은 자들은 고린도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 “너희가 받은 것이요”라고 말하면서 복음은 전승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을 들은 고린도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면서 복음 안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가운데 선 것이라”라고 함으로 성도의 존재는 복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 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 지역에서 생활하는 자들이 복음을 믿을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이 전한 것이 무엇이었습니다. 복음입니다. 복음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부활의 의미를 바르게 알 수 있도록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전했던 부활을 다시 의미심장하게 가르쳐주시는 것이 고전15장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고전15장을 부활장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2절에서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미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너희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그러니 복음을 늘 기억하며 구원의 통로인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복음을 들은 자들은 또 다른 복음이 필요 없습니다. 즉 성경만 필요합니다. 성경 외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자들은 어리석습니다. 복음이란 뜻은 “승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로 “예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을 믿는 것이며 결국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승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들은 성도는 굳건한 반석처럼 복음만 믿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사도 바울은 2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믿고 굳게 지키는 자들은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합니다. 참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는 승리만 있습니다. 승리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고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5:57-58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입니다. 승리는 내 마음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따라 생활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붙들고 신앙생활 하는 교회에게 부활이라는 능력을 주심으로 승리하도록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승리할 수 있도록 다시 반복합니다. 3절을 보시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입니다. 무엇을 반복하셨습니까? 그것은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받은 것을 고린도 교회에게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승받은 것입니다. 전승받은 복음을 사도 바울은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해 들은 자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복음을 전승받은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예수님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음 없이는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육신으로 오셨습니다. 부활을 위해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모든 사역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결국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하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자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부활을 이야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말씀하신 후 4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입니다. 죽음만 이야기해도 알 것 같지만, 사도 바울은 장사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장사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장사란 의미는 사람이 사망했다는 의미입니다. 시신을 땅에 묻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장사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예수님께서 사망했다는 의미를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죽은 사람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있습니까? 사진으로는 볼 수 있지만 장사 되어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사 되어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말씀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즉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망하면 땅에 묻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을 보여 주신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역사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고린도 교회는 참된 마음으로 돌이키라는 메시지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마음대로 부활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후 성경의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건임을 알도록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5절에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것을 알도록 게바 즉 사도 베드로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베로로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부활을 부정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잘 알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복음은 부활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만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백성은 누구나 부활합니다. 제자들에게만 부활하신 것을 보여 주었다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때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에 물든 우리를 위해 6절에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 본 사람이 오백여 형제라고 합니다. 그들 중에는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대략 20년이 지난 후입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7-8절에서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셨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 사도 바울은 자기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모습을 형편없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 바울은 값없이 삶을 헌신한 일꾼이요 사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다메섹 사건은 놀라운 사도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서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역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온 누리로 전승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하셨습니다. 9절을 보시면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입니다. 자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하면서 사도라 칭함을 받는 것도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모습 아닙니까? 사도 바울은 늘 자기를 괴수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진실한 마음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의 모습을 회상하며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만난 후 삶은 변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 많았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율법을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핍박받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복음이 승리한다는 것을 알기에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헛되지 않게 사역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사도 바울이 왜 복음을 전승했겠습니까?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이 지팡이 교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보다 오직 복음이 중요했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믿는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주신 은혜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헌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0절에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복음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평생 오직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했지만,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지팡이 교회에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교회는 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참된 복음은 전승됩니다. 그리함으로 교회는 믿음의 선배님들처럼 믿을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활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복음을 위한 삶을 생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가 분쟁하고 분열되어 가고 있을 때 복음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습니다. 복음은 부활이 무엇인지 알도록 합니다. 부활은 몸과 영혼이 예수님처럼 변화된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생활하도록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알고 있는 부활을 믿으며 복음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복음은 승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된 후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것을 많은 사람에게 현현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부활의 증인으로 헌신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고 장사 됨으로써 육신의 악한 마음이 원하는 바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새로운 생명을 받은 새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는 온전한 모습으로 교회는 부활하여 기쁨의 생활을 합니다. 그때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고백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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