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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14:29-40

교회의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 있게(고전14:29-40)

 

지팡이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잘 드러냄으로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교회이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교회가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잘 따라가는 교회로 존재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신뢰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는 지상명령을 감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주십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지만, 기도하도록 하는 이유는 일용할 양식이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매일 알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활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알도록 함으로 당신님의 뜻과 사랑을 늘 기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강설하기 전 지난번에 했던 강설을 잠시 기억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성도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고자 하며 어른처럼 생각하며 장성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숙한 교회가 되기 위해 성도는 은사를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자기 신앙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교회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성경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고린도 교회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교회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 즉 성경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고린도 교회처럼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지팡이 교회는 성경의 말씀을 따라 생활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교회의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 있게”라는 제목을 통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강해를 통해 영적 유익을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자유분방하게 사용함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29절에서 교회의 덕을 위해 예언의 질서를 언급하셨습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언할 때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예언할 때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언하는 자들이 바르게 전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언이 성경에 근거하여 바른지 교회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덕을 위해 예언하더라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이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인원을 제한함으로 예언이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언을 이야기하면서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30절을 보시면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입니다. 예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침묵입니다. 예언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침묵하는 것도 교회의 덕을 위해 중요합니다. 예언도 침묵도 교회의 덕을 위해 영광스러운 은혜입니다. 예언도 위대하지만, 침묵도 위대합니다. 명언 중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가장 깊은 감정은 항상 침묵 속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호라티우스는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교회의 유익과 덕을 위해 침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언하고 있던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계시받아 말하고자 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예언을 멈추고 계시받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침묵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덕을 세우기 위해 질서 있고 품위 있는 행동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를 위해 예언이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31절을 보시면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언이 가지고 있는 목적을 말하기 전 먼저 순서대로 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도록 하는 이유는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배우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권면을 받는 것임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예언을 질서 있게 배우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고린도 교회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배우는 것임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성도는 권면하는 힘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언이 가지고 있는 목적입니다. 교회의 질서를 위해 예언하는 자들은 차례대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덕을 세우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교회의 덕을 위해 순서 있게 예언하는 성도는 예언하는 성도에 의하여 제재받으라고 하셨습니다. 32절을 보시면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하는 자들을 제재하시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언하는 자들도 질서 있게 예언해야 합니다. 예언하는 사람의 영이 예언하는 사람의 제재받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는 질서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언을 이야기하던 중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말씀하셨습니다. 여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갑작스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문맥을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14장에서 사용된 중요한 단어들이 증명합니다. “잠잠하다”라는 단어는 28절과 30절에 있습니다. “말하다”는 27-29절에 있습니다. “복종하다”는 32절에 있습니다. 잠잠하다, 말하다, 복종하다는 34절과 연결됩니다. 그러면 “배우다”는 31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35절과 연결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은 여성에 대해서도 교회의 질서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여자들은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34절을 보시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입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합니다. 즉 ‘침묵하라’입니다. 왜 침묵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여자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자만 침묵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도 침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의 우아함과 섬세함 등은 보존되어야 합니다. 여성의 인격을 무시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질서와 예배와 유익을 위해 여자는 침묵하라고 합 니다. 그러면 무조건 교회 안에서 여성은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문맥의 흐름을 보아야 합니다. 34절 하반 절을 보시면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입니다. 여성은 말을 할 때 복종을 파괴하는 결과를 일으킬 때 침묵해야 합니다. 교회의 덕과 질서를 위해 침묵해야 합니다. 교회의 유익을 염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침묵하라고 합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여성의 문제로 인해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활동을 제안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들도 교회 안에서 수건을 쓰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남자는 교회 안에서 무질서 있게 말해도 되는 것입니까? 남자도 여자처럼 질서 있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침묵할 때는 침묵해야 합니다. 방언과 예언하는 사람도 질서 있게 해야 하듯이 남자와 여자도 교회의 유익을 위해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성이 교회 안에서 복종하는 의미는 무슨 의미입니까? 35절을 보시면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대안으로 집에 가서 남편과 서로 의논하라고 합니다. 교회의 덕을 위해 여자는 남편과 의논하면서 교회를 위한 유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남자는 교회 안에서 자유롭게 말하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도 여자와 같이 집에 가서 아내와 의논해야 합니다.

 

교회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린도 교호처럼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들의 삶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3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무지와 교만은 결국 고린도 교회처럼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설립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이처럼 처음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면 고린도 교회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요일4:6절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고린도 교회처럼 무지할 수 있습니다. 38절을 보시면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호세야 선지자는 호4: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아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14장에 대한 말씀을 결론적으로 권면하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39절을 보시면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언과 방언을 인정하면서 예언을 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예언은 권장하지만, 방언은 은사의 한 종류로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유익과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40절에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은사를 사용할 때 교회는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위한 신앙의 원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은사는 교회를 위한 것임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은사는 다양해서 은사를 받는 자도 다양하다고 했습니다. 직분도 다양하듯이 은사가 가지고 있는 목적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유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사용하라고 합니다. 교회의 덕을 위해 은사를 사용하더라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고린도 교회처럼 눈에 보이는 신기한 현상만 즐거워하면 은사의 목적을 이상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덕을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서로 분쟁하고 분열함으로 인해 교회를 세우지 못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사용하지 못하면 은사를 제한하여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몇 명이 방언과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까? 그러니 교회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면서 사랑으로 교회를 가꾸어가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의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은사를 사용하기 위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이 나를 인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서 있지 못하면 교회는 덕을 세우지 못하고 교회를 세우지 않으면서 자신의 욕망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서로 권면하고 위로하며 교회를 견고히 세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한 사도요 일꾼으로 삶을 생활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었으니 분별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마음은 장성한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교회의 덕을 위해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사용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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