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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계3:14-22
강설날짜 2020-09-27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zmckwv72Yc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2(계3:14-22)

 

 

오늘은 요한계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마무리하는 하는 강설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한 몸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한 몸이라는 것은 신앙과 경건에 있어서 중요한 것처럼 주님과 함께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유기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21:15절에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유기적인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린양이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양은 젖먹이 새끼 양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 사역자 즉 목회자를 두어 어린 양에게 말씀의 양식을 먹이도록 했습니다. 젖먹이 새끼는 쉴 새 없이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장성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공급받지 못하면 어린 양은 주리고 목마를 수 있습니다. 사역자는 한 몸 공동체인 교회를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이해하고 한 몸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말씀 봉사자는 늘 진리의 양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바르게 가도록 하는 길입니다. 그럴 때 신자들은 더욱 영적인 양식을 먹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8:3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자들은 영적인 주님이 무엇인지 모르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영적인 채움의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교회 안에서 신앙 생활해야 하는데 일부 신자들은 이단들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을 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영의 양식을 먹는다는 것은 주님 안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때 삶의 신앙생활에서도 예배하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자들은 개인적으로 성경 읽기와 묵상 그리고 기도하며 믿음의 선배님들이 유산으로 남기어주신 신앙고백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는 어린 양이 될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하는 지팡이 교회는 오늘 말씀을 통해 더욱 전진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한국 교회가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길로 돌이켜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도시에서 유명하고 풍부했던 것을 이용하여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영적인 무관심에서 참된 신앙인의 한 몸 공동체라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한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병들고 미지근한 교회에 대해 치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그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사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신자들은 자신들이 부유하며 부족안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신자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참으로 부요해지는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믿음만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이 있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현실을 잘 아시기 때문에 영원한 부를 추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부를 소유하는 길은 내게서 즉 주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병들어 있는 교회가 참된 신앙의 길로 치유될 수 있는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의 근본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께서는 첫째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금은 수수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라오디게아에서 유명한 금을 이용하여 너희들의 모습을 보라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너희들의 모습을 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부요하게 만들어준 금보다 더 귀한 믿음 즉 금을 소유하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이여 자신이 부요하다는 것을 착각하지 말고 주님으로부터 금을 사되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 베드로는 벧전1:7절에서 잘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입니다. 참된 신자들의 삶은 연단돼가는 금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고난을 통과하여 연단된 믿음입니다. 이 세상의 금과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금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금과 같은 시련의 과정이 있습니까? 순수한 신앙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연단의 과정을 저버리고 세상의 부에 머무르며 부유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신앙은 결국 영원한 형벌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삶의 예배는 시련과 연단이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금과 같은 시련과 연단을 통과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며 영적으로 부유해지는 교회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을 소유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값없이 주십니다. 이 세상의 금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주님께서는 값없이 주심으로 혼인잔치에 초대하십니다. 불로 연단된 금은 훈련받은 영적 상태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신자라면 불로 연단된 금의 의미를 생각하며 주님께 의지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그다음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둘째는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입니다. 죄로 벌거벗은 우리의 몸을 가리울 흰 옷을 내게서 사라고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도시는 양모 옷으로 유명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주님께서는 검은 양모와 흰옷을 대조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면서 흰 옷은 의의 옷이요 순결한 옷을 의미하는 영적인 마음으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검은 마음에서 그리스도의 흰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금처럼 값없이 주님에게서 오는 선물입니다. 참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흰 옷은 순결한 옷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벌거벗은 나의 수치스러움을 사라지도록 하는 흰 옷입니다. 육체를 가리는 옷에만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죄로 벌거벗은 우리의 몸을 가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흰 옷을 입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세 번째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도시에 유명한 의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약으로 널리 알려진 브루기아가루를 수출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영적인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안약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눈에 발라보라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의 영적으로 벌거벗은 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당연히 오늘날 교회도 같습니다. 영적인 안목과 영적인 통찰력이 없는 교회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소경 됨을 깨닫고 주님 앞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한 몸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하심으로 성도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영적으로 눈멀고 파산하고 벌거벗은 것을 알고 있는 신자들은 18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옷 그리고 안약을 당신님께 사라고 하십니다.

 

 

부유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야 참된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은 능력과 부요하지 않고 부족한 것이 있어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께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의지하는 자들과 함께하십니다. 그러면 참된 길을 가지 않는 신자들은 미워하시며 지옥으로 가기를 바라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9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책망의 권면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책망은 미워하거나 심판을 하기 위해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럴 거면 주님께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책망을 통해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구약에서도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심으로 다시 돌이키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책망은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님게서 하시는 것입니다. 잠3:12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책망을 통해 교정하도록 하십니다. 신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충고도 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열심을 내어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단번에 결정적으로 회개하고 지속적으로 열심을 내며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20절은 아마도 많은 신자가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을 아신다면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초신자를 초정한 후 그들이 마음을 열도록 하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20절만 보면 새신자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전후 맥락을 보며 읽어야 합니다. 당연히 말씀을 통해 누구나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하십니다. 하지만, 20절은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20절을 보시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님께서는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향한 인내와 사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19절과 연결하여 보시면 20절도 회개를 촉구하시고 있습니다. 부유하며 풍족하다고 생각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만 섬기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함께 하십니다. 신자와 함께하시며 친밀한 교제를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감동적인 모습으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계십니다. 회개는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오시고 함께 하십니다. 영적으로 무관심하고 무기력한 신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문을 두드리며 지속적으로 책망과 경고를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당신님의 백성을 인내하시며 사랑하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회개의 열심을 내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당연히 회개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음식을 먹음으로 사느냐 죽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회개는 낙원과 지옥과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음의 문을 열도록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시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은 신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권면입니다. 회개함으로 다시 주님을 영접할 때의 결과입니다.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순종할 때 주님께서는 용서하시며 신뢰하시며 우리들과 식탁 교제를 하십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한 몸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 돌아온 탕자가 떠 오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집을 나간 자녀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음식을 먹고 싶습니까? 회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힘들고 지칠수 있습니다.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순종하십시오. 주님의 재림 후에는 영원한 안식처에서 주님과 식탁 교제하며 영원한 삶을 생활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과 참된 신앙의 길을 가는 성도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21절을 보시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성도에게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세를 허락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보좌에 앉으심으로 왕적인 권세를 가지시고 통치하시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허락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열매를 맺은 성도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적인 통치를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으며 주의 길을 가는 지팡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22절은 에베소 교회에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홈페지에 있으니 참고해 주십시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무관심하게 듣고 있다면 안 됩니다. 무관심하게 듣는다는 것은 주님을 문밖에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늘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풍요로운 삶을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요함을 이루는 것은 늘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도는 늘 주님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떠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셔도 자신들은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데도 세상의 즐거움이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좋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교회라도 주님께서는 인내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권면의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자들의 본분입니다. 신자의 본분을 망각하며 사탄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자들은 결국 영원한 사망입니다. 영원한 사망은 지옥에서 형벌을 계속해서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한 형벌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금도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식탁 교제하며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무엇을 사라고 하셨습니까? 불로 연단한 금과 휜 옷과 안약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병들어 있고 벌거벗은 자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주님 안에서 함께 고난을 이기어가며 연단 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순결한 신앙을 상실할 수 없는 한 몸 공동체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좁은 길이라고 주님께서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오늘 말씀을 이해하며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미지근한 마음에서 주님을 향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님의 교회를 잘 아시고 있습니다.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양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양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일곱 교회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은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일곱 교회는 소아시아에 나오는 역사적인 교회였습니다. 일곱 교회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느 교회에 속합니까? 교회마다 형편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참되게 믿고 있는가입니다. 교회는 믿음을 지킬 수 있을지 아니면 넘어지게 될지 또는 겸손할 것인지 갈림길에 있습니다.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최후가 달려 있습니다. 일곱 교회를 통해 주님께서는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교회들에게 권면하신 후 늘 한결같이 마지막에 하신 말씀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였습니다. 이 말씀을 듣기 원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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