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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1:26-31
강설날짜 2023-04-30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_eBA_sxP3g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교회란? 2 (고전1:26-31)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날 일부 신자들은 성경을 아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오해함으로 오히려 교회를 쇠퇴하도록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단들은 성경을 오해하게 함으로 기존 교회 신자들을 현혹하여 지옥의 길로 인도합니다. 이런 시대에 지팡이 교회는 힘들어도 성경을 바르게 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가르치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교회 안의 신자들에게도 늘 가르쳐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 속에서 교회는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저번 주일 우리는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교회란” 제목으로 강설을 들었습니다. 세상 속에서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것도 힘든데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 고린도 교회처럼 분쟁이 있습니다. 분쟁은 결국 “십자가의 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분쟁하며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는 십자가의 도가 없는 것이며 결국 미련한 자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면류관의 길은 나그네와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인내하며 영적 섬김의 예배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십자가의 도를 알았기 때문에 삶의 생활에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지상명령을 감당합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도를 통해 하나님과 사귐의 교제를 함으로 지혜와 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모하는 자들은 지혜와 총명이 없으므로 마귀가 좋아하는 길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유대인처럼 표적을 구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지혜를 통해 신을 찾고자 합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사람이기에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하며 지혜로 하나님을 알고자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는 소용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모든 수난을 당하셨지만, 오히려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십자가는 이처럼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십자가의 도를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인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는 부르심에 응답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과 지혜로 부르시기 때문에 교회는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지혜와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해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자랑할 것이 없는 신분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기쁨과 감격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그리고 십자가의 도를 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이런 자들은 오히려 신을 믿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팡이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미련한 것으로 생각하는 십자가를 믿으며 신앙생활 합니다. 교회는 십자가를 떠나서는 생활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지팡이 교회는 지난주 말씀 제목을 이어서 강설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타락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십자가의 도를 통해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구원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 말씀합니다. 26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새로운 논증으로 “형제들아”라고 하면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지혜 있는 자가 아님을 보라고 하십니다. 구원의 부르심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입니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다 무시하고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십자가를 무시 하지만, 십자가의 도를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26절에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외적인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오직 은혜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주의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26절에 대한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여기서 미련한 것들은 죄인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교회를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오직 은혜로 죄인을 교회로 부르십니다. 마지막 날에는 세상에서 강하다고 하는 자들에게 심판하시며 부끄럽게 하십니다. 신앙생활 하는 교회는 힘들고 지치고 낙심될 때가 있지만, 마지막 날에는 상상할 수 없는 위로의 영광을 받습니다. 교회는 약할 때 강함 주시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자신이 지혜 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련한 것들을 택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교회로 부르신 것을 기억하며 신자들은 서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28절에서 신분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으로 부르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능력과 권력에 따라 신분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분을 넘어선 선택을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 누가 있었습니까? 노예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회 안에 백정과 노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서로 믿음 안에서 한 몸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2절에서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예수님 때문에 거룩하여진 성도입니다. 세상에서는 신분이 다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하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순종의 겸손을 사람이 따라 할 수 없지만, 믿음 안에서 주님을 따르며 겸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도를 믿지하지 않으며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서로 아멘 하며 영적 섬김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사람은 누구나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자신을 자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생각하지 못하며 자신들이 지혜와 총명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자랑함으로 교회는 분쟁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은 29절에서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육체도 즉 모든 인류의 사람이 하나님께 자랑하지 못하도록 십자가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교회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 영광된 삶이 될 수 있도록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공로에 따라 구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교회는 자랑하지 말며 서로 분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서로 믿지 않음으로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힘들게 합니다. 이런 시대에 오늘 말씀은 중요합니다.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교회란 무엇인가를 늘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는 간증을 좋아합니다. 사람 앞에 간증하도록 함으로 교회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것을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간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위한 간증을 잘못된 것입니다. 간증하는 사람은 누구를 위한 간증인지 생각하며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십자가만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으로 인해 중생했습니다. 참된 성도라면 믿음으로 아멘 할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중생한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연합입니다. 신비로운 연합을 아는 교회는 은혜입니다. 우리도 과거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사람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왜 죄인인지 알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우리는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왜 죄인임을 알게 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구원”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혜와 의로움과 구원을 별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로움과 구원은 지혜를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죗값을 다 지불 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교회는 죄와 형별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몸이기 때문에 마귀는 우리를 지옥의 길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구속의 의미를 전해야 합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는 대형 교회임을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교회가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서로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합니다. 자신의 육체와 권력과 능력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신분에 따라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같은 사랑입니다. 혼인 잔치 때 구원받은 자는 같은 면류관을 받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도 교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이제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마무리를 31절에 하십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기록된 바”라고 하면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며 마무리합니다. 렘9:24절의 말씀으로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지자의 말씀으로 호소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사람이 자랑할 것은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닌 그의 선한 기쁘심에 의존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만 자랑하게 하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말씀을 따르며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된 삶을 생활하기 위해 성경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람이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분쟁하지 아니하며 협력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떠나서는 생활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세상을 좋아하는 자들은 자신이 자랑이 될만한 일을 하거나 어떤 조건을 갖췄을 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일단 나를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죄인이라고 선언해 버리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그 어떤 선한 일도 할 수 없음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자랑은 내가 이웃에게 자랑할 만한 선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은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셨기 때문에 예수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 자리에 내가 앉아 있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주님만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기 때문에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로 부름을 받은 지팡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교회입니다. 그러니 자랑은 사람을 위한 자랑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를 위한 자랑이 돼야 하겠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자랑해야 할 것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분쟁합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처럼 은사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사용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사도 바울처럼 “배설물”로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배설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자신의 유익을 위한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세상에서 복음이 심어질 수 있도록 삶으로 생활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니 신앙인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인 우리는 알곡이 되고 싶습니까? 가라지가 되고 싶습니까? 알곡은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지만 가라지는 자신을 믿습니다. 알곡은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성도이지만 가라지는 마귀를 따르는 자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알곡이기에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기억하기를 소망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신앙의 자리를 말씀으로 점검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서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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