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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3:17-23
강설날짜 2023-06-18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HLCGzFZp8Ww

세상의 지혜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전3:17-23)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성경을 해석할 때 사람 중심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로 타락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을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 즉 인본주의로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좋은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그 책 이름은 “성경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설교는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없는 설교자는 최후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성경을 주신 목적대로 강설해야 합니다. 인본주의 중심으로 강설하는 대표적인 예가 오병이어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오병이어를 잘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오병이어에서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당연히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어린아이가 자신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린 것에 초점을 두며 설교합니다. 과연 이것이 좋은 설교입니까? 왜 그런지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어린아이가 없었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없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중요하기 때문에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어린아이는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까? 요한복음 외에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요한복음에만 “한 아이”라고 기록합니다. 이방인을 위해 쓰인 요한복음이기에 출처를 기록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오병이어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왜 기적을 행하셨는가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어린아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표적”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를 통해 당신님이 “생명의 떡”임을 가르치고자 행하신 기적입니다. 여기서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초점을 두는 것은 좋은 강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심으로 구원자가 누구신가를 알도록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생명의 떡인 말씀을 먹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에게 중점을 두며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설교입니다. 강설은 소설과 같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초점을 두며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오병이어에 관심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사람은 떡에 관심이 많습니다. 교회는 세상이 원하는 떡을 주지 않습니다. 교회는 생명의 떡인 예수님의 말씀을 먹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음으로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니 오병이어에서 주인공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의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참된 영의 양식을 먹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주 강설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였습니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하는 분들은 지난주 강설을 잘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마태복음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건축가처럼 교회의 터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만드신 터에 교회가 설립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복음을 전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었지만,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 기억될 수 있도록 사역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람 중심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역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이 심어질 수 있도록 그 지역 사람의 수준에 맞게 사역한 일꾼이었습니다. 이렇게 헌신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안 후 사도 바울은 사람이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헌신한 일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연단의 과정에 있습니다.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교회는 정금과 같이 될 수 있도록 해바라기처럼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자신의 공적을 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교회는 즉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장사의 소굴로 만들면 안 됩니다.

 

지난주 이어서 “세상의 지혜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강설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내 안에 있으므로 세상의 지혜와 사람을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과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시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안에는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교회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6:19절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청결해야 합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어떻게 된다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알곡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않겠지만, 가라지와 세상 사람은 성전을 더럽힙니다. 성전의 의미를 아는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성전이 더럽히지 않도록 권면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서로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전이니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성전을 더럽힌 자들에게 불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니 서로 성전을 모독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다는 것과 고린도 교회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것을 알게 한 후 “세상의 지혜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서로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교회는 세상의 지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성경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런지 18절을 일어 보겠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세상의 지혜는 미련한 것이니 자신을 속이지 말며 하나님의 성전을 멸시하지 말라 합니다. 너희는 죄를 짓지 말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권면의 말씀은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권면의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라”는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지혜와 다른 지혜입니다. 세상과 다른 지혜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주의 길을 가는 행복한 교회입니다. 부활을 소망하는 교회는 세상의 지혜를 포기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그 삶이 무엇인지 “언약의 열 가지 말씀” 즉 십계명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의미를 아는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의 지혜는 어리석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세상의 지혜를 따라가면서 서로 파당을 만들며 시기와 질투 등에 의해 분열했습니다. 만약 고린도 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자랑하면 안 됩니다. 자랑은 지금 좋을지언정 최후의 심판에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기 꾀에 빠져 지옥으로 갑니다. 그렇지 않도록 교회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9절에서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라고 하셨습니다.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은 구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혜를 좋아하는 자들에게 베풀 것은 마지막 날에 심판입니다. 성경을 통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길을 선택한 자들에게 심판은 당연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방주와 같이 큰 교회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면 작은 교회는 안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않는 성도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가는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주의 길을 갑니다.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교회 안에 나사로와 같은 신앙을 하는 성도를 여러분은 어리석은 자라고 하실 것입니까? 믿음이 있어도 돈과 권력 그리고 세상의 지혜로 볼 때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나사로와 같은 성도는 진정한 자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는 세상의 것을 따라갑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진리 그리고 지식이 나를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생활하는 성도님, 이 세상에서 바보가 되어야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마귀가 원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은 마지막 날에 자신이 헛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도록 하십니다. 20절을 보시면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입니다. 심판대에 어리석은 자는 헛된 것으로 인해 오 주여라고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세상의 삶을 생활하는 자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자신을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간증하며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마음이며 헛된 것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헛된 삶은 열매 없는 인생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좋아하며 자신의 생활을 자랑하는 자들은 열매 없습니다. 열매로 안다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세상의 것으로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 보시기에 헛된 삶을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헛된 삶을 위해 고린도 교회는 무엇을 했습니까? 자신을 자랑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인데도 불구하고 몸을 더럽히며 세상의 지혜를 좋아했습니다. 자랑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1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만물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죄로 타락한 자들은 그것을 모르며 자신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은사는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명령합니다. 지금까지 권고한 것에 대한 마무리를 위해 명령합니다. 그 명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랑하지 말라”입니다. 너희는 자신을 자랑하니 이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돌이키며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결국 멸망의 길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성령이 거하시는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님의 몸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어떠합니까? 고린도 교회처럼 세상의 지혜를 자랑해야 하겠습니까? 만물이 하나님의 것처럼 교회도 하나님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라지와 같은 자들은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헛된 삶입니다. 가라지는 결국 영원토록 형벌을 받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며 묵묵히 주의 길을 가는 교회는 영원한 심판이 아니라 기쁨의 극치를 누리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활합니다.

 

사도 바울은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등으로 나뉘어 분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은 교회를 위한 일꾼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세우신 지도자였습니다.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씨를 심는 사역자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씨가 성장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물을 주는 사역도 중요합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가 아닙니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교회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1:17절에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종이며 일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속받은 교회는 누구나 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세상의 지혜로 자신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남을 수 있도록 사역하는 일꾼이 돼야 합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름과 아볼로 그리고 베드로 즉 게바의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권위있는 일꾼이라도 교회를 위해 세우심을 받은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 너희의 것이요”라고 함으로 구원을 위한 사역자요 하나님 나라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누구나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값없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특별한 자랑과 행위로 받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아닙니다. 오직 값없이 주어진 시민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문제로 시기와 질투를 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23절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며 예수님께 굴복하며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가 “이미와 아직”의 관계 속에서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와 아직”의 의미를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잘 모르시면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교회론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좋습니다.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지어져 가는 우리는 세상의 지혜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존재로서 사역을 감당하는 종이며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이 하는 것이며 성령이 내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어떠했습니까? 오늘날 교회 중에도 고린도 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다면 사도 바울이 전하는 권면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자랑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남을지언정 주님은 알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님을 따르며 삶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종으로 헌신한 성도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그리함으로 최후의 법정에서 성도에게 죄가 없다고 하시며 혼인 잔치에 초청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지혜와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으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세상의 지혜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역하는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일꾼은 세상의 지혜와 사람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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