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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예배강설

2023.09.03 22:22

부부의 혼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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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7:1-7
강설날짜 2023-09-03

부부의 혼인이란(고전7:1-7)

 

오늘날 개신교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영적 분별력을 상실한 교회도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른 신학에 기초하여 목회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물든 자는 성공을 위해 유행하는 것을 사용하여 목회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이기 때문에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을 생각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도 성도처럼 예수님께서 산에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 사람과 다르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성경의 의미를 알고 있는 교회는 세상 사람에게 참된 말씀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잘못된 것을 전달하면 세상 사람은 교회도 자신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팔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은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비나이다”와 같은 의미를 지난 복이 아닙니다. 팔복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한결같이 하나님 나라 즉 천국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복과 같은 의미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팔복을 통해 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의 능력과 힘 그리고 권력 등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을 알도록 합니다. 팔 복을 하나하나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사람이 팔 복을 통해 구원할 수 없는데 왜 예수님께서 팔 복을 주셨습니까? 팔 복의 의미는 사람이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켜서 주신 팔 복입니다. 죄인인 사람이 십자가를 져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대신 지켜서 주신 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팔 복을 주신 이유는 너희는 이미 구원함을 받은 교회로써 복 있는 성도입니다. 교회는 복 있는 성도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기관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영적 섬김을 해야 합니다.

 

팔 복의 의미를 알고 있는 지팡이 교회는 지난주 말씀을 다시 기억해 보면 좋겠습니다. 지난주 강설 제목은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돌리라”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았기 때문에 성도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일부 교인은 오해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오해하느냐 하면 돈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돈이면 하나님도 기뻐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지성이면 감천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으로 삶을 생활하면 됩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회는 자기를 위한 몸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삶을 생활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몸에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만 그러합니까? 교회 안에 가라지도 세상 사람처럼 죄를 범합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신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진 말씀입니다. 지난주는 서론이었고 오늘부터 10장까지 본론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려야 하는 것을 혼인 문제로 연결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음행은 왜 결혼해야 하는지 의미를 모르고 있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녀의 결혼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은 결혼의 의미를 자기의 유익과 행복에 있습니다. 결혼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세상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결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십니까? 고전6:20절을 보시면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입니다. 결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결혼입니다.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결혼은 사람이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당신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행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차분하게 잘 들어주십시오. 사도 바울은 1절에서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라고 말씀하십니다. 1절을 읽어보시면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과 편지를 서로 주고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입니다. 이것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입니다. 읽어보시면 사도 바울이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고린도 지역은 쾌락주의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쾌락을 위해 부부 사이를 넘어 무분별한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고린도 지역이 쾌락에 물들어 있으므로 사도 바울은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족을 이루도록 하시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주셨습니다. 결혼은 사람의 본성에 기반을 둔 신성한 제도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결혼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런지 차분하게 오늘 말씀을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1절과 다르게 2절을 보시면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입니다. 고린도 지역이 쾌락으로 물들어 있으므로 사도 바울은 결혼의 합리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남자는 아내를 두라고 합니다. 반대로 여자도 남편을 두라고 합니다. 고린도 지역처럼 오늘날에도 결혼을 부정하며 쾌락을 즐겼습니다. 반대로 금욕주의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쾌락과 금욕주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음행을 피할 방법으로 결혼을 제시합니다. 그러면 결혼하면 모든 음행이 완전무결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죄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욕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결혼제도 안에서 충족하지 않으면 불법으로 음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이기 때문에 한 몸을 이룬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부부간의 의무가 무엇인가를 말씀하십니다. 3절을 보시면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입니다. 이 부분을 오해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를 다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아내도 남편에게 의무를 다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의무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전후 문맥을 읽어보시면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부부간의 성적인 관계입니다. 사도 바울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지역이 쾌락으로 그리고 금욕주의로 물들어 있으므로 결혼을 통해 절제된 생활을 하도록 명령합니다. 부부는 서로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남편과 아내는 주종관계였지만, 사도 바울은 동등한 신분으로 이야기합니다. 동등한 신분으로서 서로 의무를 다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부부의 의무이행은 적극적으로 허용되면서도 동시에 제한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서로의 몸을 다스려야 합니다. 4절을 보시면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입니다. 부부의 관계가 서로 성립되면 적극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상호작용입니다. 부부는 서로 한 몸으로서 성적인 의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직설적으로 서로 책임을 다하라고 합니다. 부부는 상호 책임의 관계입니다. 그러니 부부는 자기 몸을 정상적인 관계에서 해야 합니다. 부부의 관계는 상대방의 몸에 대한 권리를 획득합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속해 있습니다. 4절에서 사도 바울은 남편보다 아내를 먼저 언급합니다. 그다음에 남편을 언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서로를 강조함으로써 부부 무게의 균등함을 알도록 합니다. 개신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입니다. 하지만, 다른 종교에서는 남자에 의해 부부의 관계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오늘날 시대는 독신주의가 만연한 시대 속에 매우 놀랍고도 현실적인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부 사이에서 서로를 떼어놓지 말라고 합니다. 5절을 보시면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부부가 서로의 성의 의무를 하려면 몸을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금욕주의의 영향을 받아 성관계를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결혼은 했으나 금욕주의의 영향을 받아 혼자 사는 것처럼 절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함으로 부부는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권리와 의무를 지키라는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부부가 서로 의논하여 몸을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 잠시 몸을 떼어 놓을 수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했지만, 서로 일정 기간 기도할 때 예외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긴 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부 합의로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6장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무너지지 못하도록 부부는 서로 합의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탄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부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해 같은 지체로서 자기의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6절을 보시면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부를 위해 조언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라는 직분을 이용해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일을 처리하는 사도 바울의 권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한 마음으로 고린도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부부 즉 결혼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7절을 보시면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권고합니다. 바울의, 견해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결혼도 같습니다.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에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바울에게 주신 삶이 있고, 우리에게 주신 삶이 있습니다. 다른 삶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은 같습니다. 신분은 다르지만, 하나님께 영광된 삶의 예배는 같습니다. 독신의 은사가 없는 사람은 결혼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반대로 독신의 은사가 있으면 이 또한 합당합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로부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독신과 결혼을 통해 무질서한 삶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위한 순결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바울과 같은 삶이 있지만, 대체로 사람에게는 결혼이라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는 육체적이든 영적이건 중요한 것은 사명을 감당하도록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삶을 바치는 생활입니다. 어떠한 은사가 되었든지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기에 힘들어도 인내의 길 즉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성적인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부의 관계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고린도 교회도 이와 같았습니다. 교회의 순결을 지켜야 했지만, 금욕주의와 쾌락주의에 물들었습니다. 부부의 육체적 필요를 무시하고 기도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는 서로 다릅니다. 이런 가운데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해 오늘 말씀을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교회는 사도 바울을 통해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결혼이라는 영적인 은사를 주셔서 주의 길을 가도록 하셨습니다. 반대로 독신이라는 은사를 주셔서 주의 길을 가도록 하기도 하셨습니다. 하여튼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 것이며 사람을 섬기도록 함으로 교회는 남은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 나라의 기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부부의 원리를 서로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임을 아님을 알도록 합니다. 서로 한 몸이라고 하면서 일정한 기간 기도 외에 분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독신이라는 은사도 있지만, 결혼과 결혼의 안락과 만족이 음행을 막는 하나님의 처방이라고 바울이 말씀하십니다. 음행을 피하고자 “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합법적인 즐거움을 벗어나면 고린도 지역처럼 쾌락주의로 물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도 결혼이라는 의미보다 자기의 쾌락을 위한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으로 사람에게 주어진 최대의 자유가 결혼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를 위해 글을 써야 했습니다.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로 인해 교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부부의 혼인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교회로 나가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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