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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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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3:13-17
강설날짜 2021-01-03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QEpe2eQkuoo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마3:13-17)

 

 

새로운 신년을 맞이한 지팡이 교회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눈에 보이는 예배당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합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떠날 수 없고, 학생이 학교를 통하지 않고서는 참된 배움을 얻을 수 없듯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 반드시 교회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의해 주어진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성도는 교회를 통해 신앙의 훈련과 도전과 완성을 이루어가야 하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거룩한 교회인 지팡이 교회는 코로나로 힘든 시대에 더욱 굳건하게 믿음이 상실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벨기에(벨직) 신앙고백서 29장을 기억하시고 계십니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에 대한 바른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29장 중에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로써 알려지게 됩니다. 즉 그들은 믿음이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구주로 믿고 죄를 멀리하여 의를 추구하고 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좌로나 우로 치우침이 없고 그들의 육신을 그 행위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비록 그들 안에 큰 연약함이 남아 있지만, 그들은 평생 동안 성령을 힘입어 그 연약함에 맞서 싸웁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은 그들은, 끊임없이 그분의 보혈과 고난과 죽음과 순종에 호소하여 나갑니다.”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를 통해 교회의 표지를 생각하며 예배하기를 소망합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경배와 찬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셨을 때 질서 있게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타락으로 세상은 무질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질서를 다시 질서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뢰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관계가 좋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질서는 사라지고 물질서만 가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거룩한 성령의 전이라고 하는 고린도 교회도 그랬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보아도 어떠합니까?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전14:40절을 보시면 “모는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질서 있고 품위 있게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청지기를 주셨습니다. 서로 신뢰하며 서로 존중하며 교회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품위 있게 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팡이 교회는 예배를 통해 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저번 주에는 “성탄절 주인공은 예수님 그러나 현실은 ........이런 시대에 기독교의 정신”이었습니다. 성탄절 즉 예수님의 생일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날을 지키기로 했다면 참된 주인공이신 예수님만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강설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두 주 전에 했던 강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을 1장부터 28장까지 기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복습을 하며 오늘 말씀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두 주 전의 말씀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한 후 유대인의 반응”이었습니다. 내용을 기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차분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하며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마25:34)입니다. 그것을 위해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준비하는 일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창세로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복된 나라였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음성을 듣고 유대인들은 자복하며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은 자들은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 옛사람은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물에서 일어남으로써 새사람으로 살게 하시는 영적 은혜를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준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면서 중요한 것을 메시지로 전하였습니다. 세례 요한 즉 자신이 주는 세례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은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베푸실 세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임박한 진노를 피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입니다.

 

 

때가 차매 드디어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즉 나사렛에서 요단강에 오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메시지는 드디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와 메시야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알려주는 오늘 본문이기도 합니다. 13절을 보시면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마2장에서는 어린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성장한 어른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가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유대인들에게 열정을 다해 세례를 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것을 잘 알려주는 것이 ‘이 때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전하고 있는 가운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전하고 있는 메시야가 당신님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심판과 구원을 이루시는 메시야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메시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려 하시는 것은 세례가 당신님의 공적인 성례로 인정되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예수님께서 요단강 어디서 세례를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정답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요단강은 알 수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학자들이 추측하는 장소는 요단강 서쪽 “카스르 엘 야후드”라고 생각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오는 것을 알고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4절을 보시면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입니다. 제가 세례 요한이라도 같았을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광야로 가셨습니다. 세례를 받고자 하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은 말렸습니다. 메시야적 세례를 베푸는 더 능력 있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세례 요한은 알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한 번만 말린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적으로 말렸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예수님께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종교적 그리고 윤리적인 우월성과 순결한 자태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선 세례 요한은 자신의 모습이 지극히 비참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는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마3:11절을 보시면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한 것을 알 것입니다. 신을 벗기거나 신을 드는 것은 우리네 풍습 즉 유대인 중 노예나 종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은 주인이요 자신은 종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여인이 낳은 중에 큰 이가 없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세례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안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셔야 할 길도 알았습니다. 요1:29절을 보시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죄인이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을 밝힌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세례 받겠다는 것을 만류하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뜻밖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15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회개할 것도 없습니다. 죄 사함을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신이 사람에게 세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타락한 사람을 사하여 줄 권세가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죄 사람을 위한 회개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오실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는 사역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고 세례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는 이 일을 가리켜 모든 의를 완전히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나 세례를 받음으로써 모든 의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물 세례에 순종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구원의 역사적인 의미를 충족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세례 요한이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공생애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순종은 세례 요한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의미가 세례에 있습니다. 물 세례로 시작된 공생애의 순종은 결국 십자가의 죽음으로 마무리하는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세례 요한은 결국 허락했습니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 세례를 받은 후 일어난 일에 대해 16절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을 때 세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이 열림,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17절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늘이 열린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으로 내려오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여시는 주체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열고 닫을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구속 사역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와 주권과 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구속의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서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는 것을 예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온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표현이 어떤 뜻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성화를 보면 그럴 듯 하지만 조심성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도 진짜가 아닙니다. 비둘기는 일반적인 상징이 무엇입니까? 평화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며 성령이 주시는 평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임한 성령이 눈에 보이는 형체를 띠고 있었으며, 비둘기 모양이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부터는 성령으로 기름 부으심으로써 예수님을 메시야로 세우시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셋째는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것은 시편2:7절과 사42: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은 왕으로서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고, 이사야는 종으로서의 메시야를 예언한 것입니다. 두 구절을 인용한 것은 역사적 사실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음성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한을 가지신 메시야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마태는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만국을 철창으로 다스리시며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를 질그릇같이 깨뜨리시며 땅끝까지 정복하실 하나님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생명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선택해야 합니다. 구원인지 아니면 멸망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지 않으며 믿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은 멸망입니다. 사람이 살고 죽음이 예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오늘 말씀이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아 메시야로 세우신 바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일어난 세 가지 일은 하나님의 삼중적 계시로서 예수님이 가지신 신적인 권위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이 어떠한 메시야이시며 어떻게 구속의 사역을 수행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세례 요한만 들었는지 아니면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도 들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사도 베드로는 행2:28절에서 잘 증거하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령 세례는 죄 사함과 더불어 임하는 성령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후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새 생명을 얻어 누리는 삶입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며 복음의 증인 자로서 삶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당신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라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가 필요해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메시야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모든 의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순종하심으로 구속의 은혜를 이루어가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자리까지 낮아지시어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고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를 깨닫게 될 때 구원의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복된 백성이요 교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에 의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그 나라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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