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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1:7-17
강설날짜 2020-10-18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0HXNF6f2qSs

마태복음을 시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2(마1:7-17)

 

복음이란 말 그대로 좋은 소식이요 복된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이며 복된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전 성육신으로 오셨습니다. 마태는 그것을 알기에 첫 시작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마태가 이렇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죄를 범함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선한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돈과 권력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공로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일꾼이 된 바울은 사람들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죄로 멀어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이 땅에서 비참하게 사는 삶에서 하나님 나라로 구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볼 수 있는 눈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극치의 나라입니다. 심판을 당해야 할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팡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주님을 믿는 지팡이 교회는 구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을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면서 비참한 현실에서 동행하십니다. 죄와 싸우도록 하시면서 안전한 길로 인도하시며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으로 선택한 성도를 의롭다 하시며 구원을 번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의 강설을 들으면서 더욱 든든한 자녀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마태복음을 시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를 강설로 들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첫 시작의 문을 열었습니다. 지난주는 1절부터 6절 중심으로 들었습니다. 오늘은 7절부터 17절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위해 저번 주 강설을 되새김질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는 다른 제자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 마태는 세리라는 직업을 포기했습니다. 그와 달리 다른 제자들은 세상의 직업을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마태는 결단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세리로서 로마를 위해 일하는 자였습니다. 동포로부터 좋은 소리도 듣지 아니하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새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마태와 같아야 합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이 읽기 쉽도록 마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누구인가를 소개했습니다. 바로 그분이 메시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거쳐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소급함으로써 메시야에 대한 역사적 근거와 배경을 제시했습니다. 역사적 배경과 근거를 이야기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전했습니다. 마태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내용과 의미를 드러낸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과 다윗은 위대한 조상이었습니다. 우리도 마태가 기록한 마태복음을 통해 메시야가 누구신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신약 복음서에서 마태복음의 위치는 아주 중요합니다. 첫 시작의 문을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친구의 집을 방문할 때 대문을 열면 그 집 안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중요하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출발점과 같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는 다윗의 왕국을 회복하실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다윗은 유대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위치입니다. 유대인들은 로마로부터 통치를 받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심으로 나라가 회복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신들만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을 위한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됩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한 것입니다. 마태는 마1장에 나오는 족보를 통해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통성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야 메시야를 믿고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족보 이야기를 통해 마태는 네 명의 중요한 여인을 기록했습니다. 그 여인들은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야곱의 아내 리브가와 라헬 등이 더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네 명의 여인을 기록했습니다. 네 명의 여인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족보에 기록할 수 없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족보에 기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족보에 기록했습니다. 여인들 중에 마태는 다윗 왕의 부인인 밧세바요 솔로몬의 어머니였지만, 우리아의 아내라고 기록했습니다. 간접적으로 우리아의 아내라고 한 것입니다. 마태가 이렇게 기록한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와 배경은 인종을 초월하여 구원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면 구원의 선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계를 족보를 통해 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2절부터 6절은 아브라함과 다윗까지의 족보입니다. 오늘은 7절부터 11절까지 왕정시대인 다윗 왕에서부터 바벨론 포로기까지를 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후 12절부터 16절까지 바벨론 포로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는 족보에서 각 세대를 조직적이고 기억에 남는 분들을 기록함으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도록 했습니다. 마태는 7절부터 11절에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계속 하락하는 시기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왕정시대라 합니다. 왕이 통치하는 시대였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의 역사가 하락하는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한 시대였습니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떠난 결과였습니다. 마태는 왕의 족보를 이야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왕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도록 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왕들 가운데는 선하고 의로운 왕도 있었지만, 악하고 불의하고 하나님을 떠난 왕도 있었습니다. 마태는 이런 왕들을 족보에서 교차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이렇게 기록한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불의함 가운데에서도 당신님의 언약은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영원토록 불변한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신실함에 근거하여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을 이루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악한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혈통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아브라함부터 다윗 왕까지는 계속 상승하는 나라였습니다. 아브라함 시대부터 미약하게 시작하였으나 나중에 민족으로 성장하고 다윗 왕 때에는 최고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 이후부터 이스라엘 나라는 쇠퇴하는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을 참되고 믿고 순종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시고 채찍질을 해도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마태는 오늘 우리가 배우는 족보를 통해 의미심장한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생소하기에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족보를 잘 알기에 마태가 변화를 주고 있는 이름들을 의미 있게 보았고 읽었을 것입니다. 첫째는 아사를 아삽으로 변경했습니다. 7절을 보시면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그런데 우리말 성경에는 아사로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원어에는 아삽으로 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8절에서 요람 다음에 세 명의 왕들 즉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를 생각했습니다. 3대의 왕을 생략한 것입니다. 셋째는 10절에서 아몬을 선지자인 아모스로 바꾸었습니다. 우리말에는 아몬으로 되어 있으나 원어는 아모스입니다. 넷째는 11절에서 여고냐 즉 여호야긴 앞에 여호야김을 생략했습니다.

 

왜 마태는 이렇게 한 것입니까? 우리말 번역처럼 원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아사 왕을 선지자적 시편 기자인 아삽으로, 아몬 왕을 선지자 아모스로 변경했습니다. 사실 두 명 다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왕의 족보에서 시편 기자와 선지자로 사용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가 주로 한 사역과 관련된 것입니다. 선지자는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왕들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태가 왜 이렇게 변경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마태의 의도를 알았을 것 같습니다. 몰랐다면 서로 논쟁을 하면 알고자 했을 것입니다. 선지자는 자신이 사역하던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등을 전하였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족보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마태는 왕의 족보에서 두 명의 선지자로 변경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시대와 상황에 따른 하나님의 뜻과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하나님의 백성들)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마태의 의도를 알았을 것입니다. 마태는 심판을 경고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제 마태가 전하고자 하는 족보 중 마지막 12절부터 16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벨론 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라고 합니다. 2절부터 11절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사랑이라면 마지막 족보는 하나님의 희망과 소망입니다. 마태는 포로기라는 시대 즉 밑바닥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족보를 나열한 것은 회복의 시기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온전히 회복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12:1-3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성취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참담하고 비참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가 생활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현실이 암흑기와 같은 시대라도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야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특별한 계시는 성경만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성경을 통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 외 다른 말을 하는 것은 거짓 교사요 이단입니다. 왜냐하면, 성경과 다르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최악이라고 하는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메시야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가 꼭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이 암흑기라도 꼭 이루시는 신입니다. 참된 성도가 해야 할 일은 믿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순종이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하는 기초입니다. 마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 족보에서 마지막 16절에서 마무리합니다. 16절을 보시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마태는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신 것을 위해 신적인 기원을 강조했습니다. 2절부터 6절에서는 이방인 여인을 기록했지만, 16절에서는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이었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까? 마태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요셉이라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런 후 어머니인 마리아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리라를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나시리라는 신적 수동태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하여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독특하게 성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인 마리아가 자연적으로 출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은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다음 주에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혈연적으로 요셉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족보에 기록하는 것은 혈통적으로 이어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족보에서 낳고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16절에서는 동정녀 탄생을 강력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낳고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에게서라는 것을 사용했습니다. 사람에 의해 출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태는 족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 그리고 회복의 믿음과 소망을 메시지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께서 언약하신 것은 꼭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도 마태가 기록한 복음을 통해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구절인 17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여기서 마태는 신학적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족보에 대해 요약한 것입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열네 대를 계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마태가 이렇게 열네 대씩 기록한 것은 외우기 쉽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7이라는 완전 수에서 두 번 곱해서 14가 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의 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방식입니다. 하여튼,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전했습니다. 왜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는가를 전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나라로 회복시킨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그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희망과 소망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암흑기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단순히 혈통의 족보가 아닙니다. 단순히 일어난 역사를 마태는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족보 안에 담긴 메시지를 보아야 합니다. 마태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마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저자는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주기도문이라고 합니다. 마태가 전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런 자들은 구원으로 초대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십니다. 마태는 심판을 전하는 것보다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전한 메시지는 심판을 넘어 회복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그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마태는 족보를 통해 예수 그리스가 메시야라는 것을 소개했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죄악으로 하나님과 멀어졌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는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비참한 현실에 온전한 인성과 신성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언제 재림의 주로 오실지 모르겠지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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