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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13-23
강설날짜 2020-12-06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celEyjcGjM0

예수 그리스도를 애굽에서 불러내리라(마2:13-23)

 

교회에서 12월은 매우 중요한 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날은 12월 25일입니다. 예수님의 생일을 알 수 없지만, 그날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예배합니다. 그날은 소중하지만, 교회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마다 즉 예배당 안에 촛불을 켜 놓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미신적이고 우상을 섬기도록 할 수 있습니다. 촛불을 사용하여 좀 더 의미 있게 하고자 하는 마음은 알 것 같습니다.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카톨릭으로 가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무속인들이 사용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은 다시 성경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며 참된 기독교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카톨릭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왜 그런가 하면 카톨릭은 초기 기독교에서 출발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카톨릭은 주후 6세기에 등장했습니다. 그레고리1세가 초대 교황으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그 누구도 교황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카톨릭에서는 베드로가 시초라고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을 교황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복음에 전념한 사도였습니다. 중세에 가장 타락한 시대에 참된 기독교로 돌아가고자 종교개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촛불로 예배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의 모습 즉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성탄절을 절기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촛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카톨릭은 촛불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을 좋아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참된 예배는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카톨릭은 우상을 따라갔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카톨릭 백과사전입니다. “우리는 분향과 정결케 하는 물과 같이 이교 예배와 죽은 자에 드리는 의식에서 일반적으로 초를 사용하는 것을 시인하는 것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 이런 것은 어느 특정 우상 종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모든 우상숭배 종교들에 공통으로 있었던 것들이다”입니다. 이 말은 스스로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나는 성경에서 도출된 따라서 전적으로 신적인 하나님의 권위에서 근거한 인간의 제도들만을 시인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순수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교회가 성경의 말씀대로 그리고 종교개혁의 정신을 따라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애굽에서 불러내리라”입니다. 타락한 유대교에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심으로 참된 기독교 교회 회복시키셨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지난주 강설을 기억해 보십시오.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 드디어 예수님께서 탄생한 지역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온누리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메시야였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빛인 별을 통해 알리셨습니다. 헤롯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방 박사들에 의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동방 박사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속이며 베들레헴이라고 했습니다. 베들레헴은 구약에서 말한 장소 즉 예수님께서 탄생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을 이용하여 예수님께서 계신 장소를 안 후 살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헤롯의 뜻대로 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방 박사들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꿈에 헤롯에게도 돌아가지 말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그들은 다른 길을 택하여 자신들의 온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의 계승자요 완성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마태는 기록한 것입니다.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찾으며 당신님의 백성들에게 은혜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헤롯은 자신의 왕권이 소중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을 안 헤롯은 아기 예수님을 직접 찾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헤롯의 마음을 알고 있는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도록 하셨습니다. 헤롯이 사망한 후 애굽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마치 출애굽의 사건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알 수 있도록 오늘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에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도록 하셨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대적인 애굽으로 피신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필 애굽이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헤롯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 죽이고자 하니 피신하라는 것입니다. 애굽은 베들레헴으로부터 146㎞ 거리에 있습니다. 이 거리가 중요한 이유는 헤롯의 통치가 통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헤롯의 왕권이 통하지 않는 나라는 구약에서 예언한 말씀이었습니다. 호11:1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입니다. 그리고 민24:8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의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을 예수님께서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이곳 즉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에 기적을 행하신 지역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요셉은 14절에서 어떻게 합니까? 14절을 보시면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즉시 일어나 그것도 밤에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갔습니다. 저라면 아마도 새벽 또는 낮에 이동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꿈을 꾼 후 즉시 피신하였습니다. 요셉은 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온전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이 훗날에 성취되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설명하는 것이 15절입니다. 15절을 보시면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이루려 하심이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당신님께서 때가 차매 성취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애굽으로 피신한 요셉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헤롯이 사망할 때까지 애굽에서 생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헤롯의 죽음을 아십니까? 헤롯의 죽음은 추하고 심각한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15절에서는 헤롯이 사망한 것을 이야기한 후 16절에서는 사망하기 전 헤롯이 한 악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보시면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사악한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두 살부터 아래’ 즉 남자를 죽였습니다. 이 사건으로는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나이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왕권을 위해 편집증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내와 자식도 죽이는 헤롯이기에 예수님도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헤롯이 어떠한 일을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예수님을 보호하셨습니다. 헤롯의 사건은 마치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나선 모세를 잡아 죽이려 한 애굽의 바로 왕과 같습니다.

 

마태는 헤롯이 한 사건이 예레미야 선지사가 하신 예언의 성취라고 17절과 18절에서 기록했습니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태는 렘31:15절에 나오는 라헬이 라마에서 슬퍼한 일의 성취로 보았습니다. 전통적으로 라마는 라헬의 무덤이 있는 장소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창25:19절에 따르면 라헬이 사망했을 때 벧엘에서 베들레헴으로 길에 장사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라마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레미야 선지자는 라마에서 슬퍼한 것입니까? 예레미야는 라헬을 이스라엘을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보고 라헬이 슬퍼하며 통곡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마태는 민족적인 슬픔이 아기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들의 통곡으로 성취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예전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처하였던 것과 같이 지금 헤롯에 의해 당하는 고통과 불행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을 하는 헤롯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호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헤롯은 사망했습니다. 헤롯이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19절을 보시면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하나님께서는 천사 즉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나타나도록 하셨습니다. 헤롯이 사망했기 때문에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현몽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구원자로 등장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의 죽음은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가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70세의 나이로 병들어 죽었다”고 합니다. 요세푸스의 「고대사」에 따르면 “그는 내장이 썩고 벌레가 나오며 악취와 경련이 끊이질 않아 백약이 무효하여 죽었으니 그 모습은 잔인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쓴 괴물의 죽음이었다”고 기록 했습니다. 헤롯이 사망한 뒤 주의 사자는 요셉에게 나타나 20절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입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사망했습니다. 사람에게 영원한 정권과 영원한 생명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는 귀합니다.

 

요셉은 주의 사자의 말대로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21절을 보시면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의 사자의 말대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실한 자였습니다. 고국을 떠날 때는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헤롯이 사망했기에 잠에서 일어나 출발했습니다. 이것은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절대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면서 요셉은 다시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어디로 가라고 했습니까? 22절과 23절을 보시면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사렛이었습니다.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왕이 되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아켈라오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아켈라오는 아버지와 같이 포악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주후 6년경에 저항하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아켈라오를 폐위하고 유배 보냈습니다. 로마 황제가 이렇게 한 이유는 유대인들의 폭동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고 난 뒤 로마 총독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한 요셉이 가족들과 정작한 곳은 갈릴리의 낮은 산지의 나사렛이었습니다. 나사렛은 비교적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사렛은 구약 성경에도 외경에도 나오지 않는 지명입니다. 그러면 왜 마태는 나사렛에 거주한 사실을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한 것입니까? 무엇에 근거한 것입니까? 구약 성경의 말씀도 인용하지 않고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한 것입니까? 참으로 난해한 구절입니다. 아마도 마태는 예언의 취지를 요약하여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정 성경 구절이나 선지서의 예언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태가 잘못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본문은 선지자들(원문에는 복수로 기록됨)이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으로 불릴 것에 대해 예언했음을 단순히 확인하는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난해한 구절이지만, 마태가 기록한 시대의 사람들은 나사렛이라는 뜻을 즉각적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나사렛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약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사렛에서 출세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1:46절에 근거하면 이렇습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나사렛이라는 말은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근거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가 메시야는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될 것을 예언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겸손과 낮음을 보여주신 메시야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방문하고 돌아간 후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서 중에 마태만 기록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요셉의 가족이 애굽으로 피난한 사건과 두 살 아래 남자아이를 학살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유년 시절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단 애굽과 나사렛에서 생활한 것을 기록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 구약 성경에서 기록된 이야기를 성취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호하시기 위해 두 번에 걸쳐 주의 사자를 요셉에게 보내셨습니다. 주의 사자를 마태가 기록한 이유는 예수님의 신적 기원이 어디에 있는가입니다. 메시야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신한 것은 모세가 출애굽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애굽으로부터 불러내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헤롯이라 하더라도 메시야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사망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아이들을 학살했지만, 예수님은 안전했습니다. 애굽은 헤롯의 학살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 가운데 이루시는 신이십니다. 베들레헴의 애통은 사람에게 있어서 참혹합니다. 하지만, 그 애통은 잠시 동안의 슬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야였습니다. 메시야를 통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극치의 나라입니다. 구약에서 하신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행복의 나라로 초대하고 이끄시고 계십니다. 그것을 아는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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