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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행27:27-44
강설날짜 2020-06-21

바울 한 사람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계획(행27:27-44)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성도는 신앙고백 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사랑과 은혜를 알기에 신앙고백 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목숨보다 우리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배를 통해 신앙고백 하며 주님의 사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기에 예배하며 감사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바른 신앙인의 자세는 성령이 충만한 신자로 늘 삶이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성도에게 은혜를 주시며 임마누엘로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로 함께 하는 신자를 그냥 두시지 아니하며 보호하여 주십니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이때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참된 신자들과 함께하십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기 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장성한 신앙인이 되고자 말씀을 사모합니다.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 후부터 인생역전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생역전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 즉 하나님을 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형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형통한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전도 여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길은 죽음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형통이라고 믿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온 누리에 복음이 심어질 수 있도록 전도했습니다. 마지막 전도 여행이 될 수 있는 로마로 가는 길은 두려움과 고난이 아니라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난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기에 세상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지팡이 교회도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이기를 소망합니다. 세상 속에서 힘들 때 영적인 맷집이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맷집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직장이 힘들고, 가정이 힘들고, 교회 생활이 쉽지 않더라도 삶의 현실 속에서 주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처럼 우리도 같은 믿음이어야 합니다.

 

지난주 말씀을 다시 기억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영적 맷집으로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 여행의 경험을 통해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이 시기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미항까지 오는 길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고 경고했습니다. 바울의 경고에도 백부장은 선주와 선장을 더 신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고자 바랬고, 선주와 선장은 뵈닉스에서 보내기를 바랬습니다. 미항은 작은 섬이라 겨울 보내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뵈닉스는 겨울 보내기가 더 안전한 섬이었습니다. 하루만 가면 되는 거리이기에 쉽게 판단한 것입니다. 미항에서 출발할 때 순풍이 불어 왔기 때문에 좋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순풍이 광풍으로 돌변했습니다. 무서운 광풍은 사람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바람이었습니다.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바람은 알렉산드리아 배와 사람들을 극심한 위기로 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짐과 배의 기구를 바다에 자신들의 손으로 포기했습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에도 배는 안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이 경고한 말을 듣지 아니한 결과였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떠 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광풍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열망도 사라지게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사도 바울은 삶을 포기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전한 것입니다. 죽음 앞에 있는 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누구겠습니까? 신자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좋은 말씀 즉 나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전했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이어서 생각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풍성한 은혜가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광풍과 맞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는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27절을 보시면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14일 동안 알렉산드리아 배는 아드리아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표류하고 있는 배는 자정쯤 되어 선원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그래서 배에 탄 사람들은 바울의 메시지를 기억하며 살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선원들은 배 주위의 수심을 재 보았습니다. 28절을 보시면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수심을 재면서 바울이 말한 것이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배가 한 섬에 걸리리라는 말을 떠 올리며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처음에 수심은 스무 길이었고, 조금 있다가 다시 재 보았을 때는 열다섯 길이었습니다. 스무 길은 약 36미터이고, 열다섯 길이라는 것은 약 27미터의 수심입니다. 이런 의미로 생각하면 알렉산드리아 배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육지에 가까지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지로 가까지 가고 있다는 것은 암초에 걸릴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암초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한 선원들은 29절에서 어떻게 합니까?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고물은 배의 뒤 꼬리 부분입니다. 그곳에서 선원들은 네 개의 닻을 내렸습니다. 배의 뒷부분에서 닻을 내리는 것은 일상적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일상적인 방법은 배의 앞부분에서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광풍에 의해서 어려움이 있는 선원들은 배의 뒤 꼬리에서 내리기로 한 것입니다. 광풍에 의해 배가 180도 회전하여 돌면 암초에 뒷부분이 부딪치면 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배가 더 움직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네 개의 닻을 내린 것입니다. 어두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새벽이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밤은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며 자신들의 생명이 안전하기를 소망했을 것입니다.

 

육지가 가까워진 것을 느낌으로 안 선원 중에 일부는 어떠한 행동을 했습니까? 30절을 보시면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사도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원들은 닻을 내리는 척하며 거룻배 즉 작은 배를 바다에 내려놓으려고 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믿지 않았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배 안의 사람들과 함께했지만, 선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바울은 31절에서 어떻게 합니까?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은 선원들의 계획을 백부장에 알려주고 제지하도록 했습니다. 선원들이 없다면 배는 더 어려움을 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한 자들의 생명은 어떨게 될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기에 사람들을 살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백주장에게 알린 것입니다. 바울이 과거에 말한 것을 알고 있는 백부장은 그의 말을 믿었습니다. 백부장의 지시로 군인들은 32절에서 어떻게 합니까?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군인들은 작은 배 즉 구명보트를 타지 못하도록 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배와 함께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33절에서 날이 밝아지면서 무엇을 먹으라고 했습니까?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힘을 내려면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이전에는 먹는 것도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 먹어야 했습니다. 힘을 비축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14일 동안 먹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34절에서 어떻게 말합니까?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먹도록 하는 것은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음식을 먹도록 하는 것은 생명의 보존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여 주셨는가를 알도록 함으로 복음이 심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구약 시대부터 전해져 왔던 격언을(삼상14:45, 삼하 14:11)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바울의 말은 확신과 준비가 섞인 말이었습니다. 확신은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너희가 구원받기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약의 말씀을 가지고 생명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있는 자들은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알기에 삶에서 위안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하신 것처럼 바다에서 무엇을 합니까? 35절을 보시면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떡을 떼고 축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유대인의 관습 형태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행동을 이방인들에게 했습니다. 그전에는 바울의 말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바울의 말을 믿기 시작한 것이고, 마음에 여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위한 중요한 것이기에 그들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바울이 한 행동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을 것입니다. 시각적인 축사를 통해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는 사도 바울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36절을 보시면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입니다. 바울의 말한대로 식사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신뢰를 받으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지상명령이기도 합니다.

 

음식을 먹었던 사람의 수는 몇 명이었습니까? 37절 말씀을 보시면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이 말씀에 근거하면 276명이었습니다. 인원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입니다. 음식을 먹은 후 어떻게 했습니까? 38절을 보시면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배에 실려 있던 밀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배를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상륙을 위한 마지막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에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버린 것입니다. 의지할 것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은혜를 주실 때 우리의 마음을 비우도록 하십니다. 그런 다음 복음을 채워 주십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린 자들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이 이와 같았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39-41절에서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알렉산드리아 배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해안으로 배를 들여 댈 수 있는 장소를 보았습니다. 먼저 39절을 보시면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날이 밝아오자 눈으로 어느 땅인지 알 수 없지만,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을 본 것입니다. 어둠에서 고생할 때와 새벽이 밝아오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음식을 먹은 상태였습니다. 비축한 힘이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육지에 상륙하는 데 힘을 모았습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자들은 40절에서 어떻게 합니까?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선원들은 배를 안전하게 몰수 있도록 닻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런 후 선원들은 배의 방향을 잡기 위해 뱃머리에 있는 돛을 달았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돛을 의지하며 안전하게 육지에 최대한 도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람에 의지하며 육지로 가고 있었을 때 배 안의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떠한 마음이겠습니까?

 

안전하게 해안으로 들어가다가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41절을 보시면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에 만나 배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석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두 물이 합하는 곳은 아마도 모래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학자는 육지로부터 흘러나오는 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둘을 생각하면 아마도 지형적인 영향으로 모래톱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곳이 어디인가를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바울이 로마로 가고 있는가입니다.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을 하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배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지형에 부딪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배는 파도에 부딪혀 점점 위험한 상태로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22절에서 예언한 대로 배는 난파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난파되고 있는 가운데 군인들은 무엇을 하고자 했습니까? 42절을 보시면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로마 군사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죄수들이 도망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도망하면 나중에 책임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죄수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군사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사들은 하나님의 크신 위력이 자연을 통해서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자신들의 생명이 구출 받을 것을 생각하며 문책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죄수들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명이 더 귀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신자는 마치 로마 군인과 같은 생각을 하며 자신의 생명을 위해 배도 하기도 합니다. 믿음은 사도 바울과 같은 것입니다. 죽음이 앞에 있는 것 같지만,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군사들이 어떠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어떻게 했습니까? 43절을 보시면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백부장은 바울을 구하기 위해 군사들의 뜻을 막았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군사들과 같은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백부장은 바울이 안전하게 로마로 갈 수 있도록 생명을 구원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바울은 백부장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배가 좌초한 곳은 해안과 멀지 않았습니다. 백부장은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부터 육지로 가도록 했습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 육지로 가도록 했습니까? 43절을 보시면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널조각과 물건에 의지하여 상륙하도록 했습니다. 백부장은 지혜로운 군인이었습니다. 지혜롭게 현실을 파악하며 통제하며 배에 탄 사람들을 안전하게 구출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지도력은 알렉산드리아 배의 실질적인 지휘관인 백부장 율리오의 마음이 변화되게 함으로 사람들을 구출하였습니다. 바울의 말대로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의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바울이 혼자 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임마누엘로 바울과 함께 하심으로 구출된 섭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 안에서 이루어진 사건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주님만 의지하며 더욱더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함으로 사람들은 어려운 현실에 처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일에 그 배의 지도자들이 과욕과 잘못된 판단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외치는 경고의 소리를 들을 줄 모르는 공동체는 위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마치 알렉산드리아 배에 있던 자들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이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올수록 바울의 지도력은 점점 더 부상되었습니다. 바울은 어느 장소가 되었든 늘 복음을 전하는 말씀 사명자였습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도 자신의 생명을 구출하고자 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운명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서 구명보트를 타고 육지로 가고자 한 선원들이었습니다. 경험이 많은 선원들은 먼저 육지에 도착하고자 했습니다. 자기들만 살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바울이 백부장에게 말합니다. 백부장은 그들이 도망 못 하도록 구명보트를 바다에 버렸습니다. 운명 공동체라는 것을 각인하여 주는 것입니다.

 

흑암이 사라지며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때 음식을 먹을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14일 동안 먹지 못하다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바울은 배 안에서 영적인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이 배 안에는 276명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영적인 지도력을 안 백부장은 군사들의 행동을 알고 막았습니다. 군사들은 죄수가 도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이고자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군사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도 백부장은 바울을 구출하기 위해 군사들의 뜻을 막았습니다. 모든 책임을 백부장이 감당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배는 파선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바울을 구출한 후 수영을 할 수 있는 자들부터 육지로 가도록 했습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은 널조각과 배의 물건을 의지하여 상륙하도록 했습니다. 상륙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든 사람들은 죽지 않고 안전하게 육지에 도착했습니다. 파도 속에서 276명이 전원 구출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섭리로 구원하였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에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 하는 바울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며 로마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행복을 알기에 복음을 믿으며 로마로 가는 길은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것을 이루도록 하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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