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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11:17-34
강설날짜 2024-01-14

사도 바울이 성찬을 말한 이유?(고전11:17-34)

 

오늘은 사도 바울이 성찬을 말한 이유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마다 성찬은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개혁교회 성찬 예식을 사용합니다. 예식 문을 보아서 아시겠지만 읽기에도 쉽지 않은 분량입니다. 그만큼 성찬이 중요하다는 믿음의 선배님들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현실은 예배당에서 진행되는 성찬식을 보며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찬식에 참여한 성도는 먹고 마시는 것으로 머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찬을 할 수 있도록 주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것은 모두 은혜의 수단입니다. 은혜의 수단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안 됩니다. 은혜의 수단이 아니면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떡과 포도주를 사용해 마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찬을 통해 교회는 예수님의 영적인 영양분을 먹고 마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떡이 떼어져서 하나님의 백성인 나에게 주어졌고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심으로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누구에게 주어진 것입니까? 죄로부터 해방되고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죄인 됨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죄를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예수님의 신령한 양식과 음료를 먹으며 주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먹고 마심을 통해 교회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며 같은 길을 걷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고린도 교회를 통해 성찬에 대해 바른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오늘날의 교회처럼 애찬식을 했습니다. 서로 먹을 것을 가져와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애찬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사를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교회는 한 몸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쟁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신분이 좋은 사람이 예배하며 애찬을 통해 먹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신분이 낮은 종과 같은 신자는 예배 시간에 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애찬식에 참여하기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기도 어려운 신자였습니다.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늦은 시간이라도 예배당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애찬은 없었습니다. 결국 애찬은 부자와 가난한 신자들의 분쟁이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성찬을 통해 애찬을 바르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식사를 통해 교회가 한 몸 공동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유월절 만찬의 성취가 주님의 만찬임을 알도록 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사도 바울의 말씀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를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17절을 보시면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예배 시간에 늦게 도착했을 때 그들은 영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애찬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했지만, 먹을 것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함에도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점점 해로운 공동체로 변질하였습니다. 하나의 공동체에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편지로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사랑으로 책망합니다.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모두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예배당에 교회로서 모일 때를 생각하도록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부자와 가난한 자들로 인해 무엇이 존재했다고 합니까? 19절을 보시면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입니다. 교회 안에 파당이 있었습니다. 이런 파당은 교회를 무너지도록 합니다. 파팡은 차별과 파벌로 교회가 한 몸이 될 수 없도록 합니다. 한국 교회가 분열된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교회와 신앙고백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 의한 분열이었습니다. 이처럼 분열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장할 때는 고난 속에서도 서로 한 몸일 때입니다. 교회가 무너질 때는 교회가 스스로 파당을 만들며 분쟁할 때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원하실까?라는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파당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원문에는 “왜냐하면”과 “ 때문에”가 있습니다. 그만큼 파당은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주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파당을 이야기하기 위해 20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파당이 생겼던 이유는 바로 주의 만찬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들이 주의 만찬을 먹기 위해 모인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지 생각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주의 만찬을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의미와 주의 만찬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라고 한 것입니까? 고린도 교회는 성찬과 애찬이 함께 결합하여 있었습니다. 애찬과 성찬을 함께 하며 일반 식사로 변질하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행하고 있는 것이 주의 만찬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 그런지 사도 바울은 21절에서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식사는 굶주림과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모임을 모를 때 어떻게 됩니까? 고린도 교회처럼 취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 중에는 노예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집에서 명령한 것을 마무리한 후 예배에 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휴무라는 제도가 없었습니다. 노예는 일 년에 하루라도 자유가 없었습니다. 이런 노예가 예배 시간에 참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주인의 일을 마무리한 후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다 먹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애찬을 먹을 수 있었지만, 가난한 자들은 굶주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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