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팡이교회

오전예배강설

조회 수 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14:10-19
강설날짜 2024-03-17

교회를 위해 덕을 세우라(고전14:10-19)

 

오늘날 인본주의 시대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았다면 하나님의 시대라고 해야 합니다. 죄로 타락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며 으뜸이 되고자 합니다. 결국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전통과 규범을 거부하면서 파격적인 시대를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중심적으로 생활하면서 이기주의로 멍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성경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은 신앙의 울타리요 기반입니다. 성경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인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을 따라가는 시대라 할지라도 교회는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백성은 대한민국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백성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시대가 급변한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세상 사람을 구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지팡이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로 생활하다가 지금은 모이는 교회로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디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주의 길을 가는 지팡이 교회는 “교회를 위해 덕을 세우라”는 말씀을 듣기 전 지난주 강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을 위한 방언과 예언과 같은 은사를 함부로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 고린도 교회처럼 은사를 더 중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이유는 교회의 유익과 덕을 세우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교회를 위한 유익과 덕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은혜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누구나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가 사랑이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 방언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덕을 세우기보다 오히려 고린도 교회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와 같은 교회에 가고 싶습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에 가고 싶지 않습니까? 교회의 덕을 위해 교회는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피리와 거문고 그리고 나팔을 사용해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은사를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지난주 강설을 되돌아본 우리는 “교회를 위해 덕을 세우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피리와 거문고 그리고 나팔을 이야기한 후 10절에서는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소리의 종류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많이 있습니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릅니다. 지역마다 사투리도 사용합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고국을 떠나 이방인 지역에서 생활하기 위해 언어를 배우기도 합니다. 그만큼 언어가 중요합니다. 언어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방언을 사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언어인 방언으로 말하면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세상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방언의 무익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방언은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대화할 때 기쁨이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화를 하고자 하는 마음처럼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때 복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전달되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혀를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혀를 주신 이유는 분명한 뜻을 전달하도록 합니다. 분명한 말을 하도록 함으로 헛된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덕을 위해 유익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중에 가장 유익한 말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증인 자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상한 말을 하며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은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선교사는 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할 때 복음에 관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미국 사람에게 한국어로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면 복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인으로만 취급할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방언으로 말하며 사람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이런 자랑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린도 교회의 성도가 방언으로 말하지만, 사람들은 뜻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의미가 없는 방언은 이처럼 그 자체로 문제입니다. 방언을 주신 이유를 생각하며 교회를 위한 덕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교회를 세우라고 합니다. 12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입니다. 왜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습니까?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교회는 덕을 세우는 성도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것과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은 서로 밀접한 관계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헬라어의 의미를 생각하면 “영적 은사”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은사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잘못 사용했습니다. 문맥을 보아도 은사와 연결된 것은 분명합니다. 방언과 예언 그 외 은사를 주신 목적은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신 것을 성도는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덕을 세우지 못하면 고린도 교회처럼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첫사랑을 기억하며 사람들에게 교회가 어떤 복음을 전하는지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교화시키며 궁극적으로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바르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덕을 세우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로서 교제하며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

.

.

 

사도 바울은 칭찬과 인기를 위한 사역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사랑한 사역자입니다.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사역했습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상한 말을 한다고 놀림을 받았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정신병자처럼 취급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교회를 위해 덕을 세워야 합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방언은 은사를 받아도 무익한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이며 사도 바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고린도 교회는 통역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에게 유익하며 교회의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고린도 교회처럼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방언 받은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면 누가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위해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용하면 고린도 교회처럼 울리는 꽹과리처럼 됩니다. 개인적인 유익보다 이웃과 교회에 유익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고린도 교회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섬겼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으로 알아듣고 나도 당신들처럼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고백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고 하셨습니까? 일만 마다 방언보다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방언보다 다섯 마디의 언어가 중요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해 덕을 세우는 일꾼이었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교회의 덕을 위해 생활하며 복음의 일꾼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설교자 성경본문 강설날짜 조회 수
325 장성한 사람이 되라 전은덕 고전14:20-28 7
» 교회를 위해 덕을 세우라 전은덕 고전14:10-19 2024-03-17 5
323 방언과 예언은 무엇일까? 전은덕 고전14:1-9 2024-03-10 12
322 사랑은 은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다 전은덕 고전13:8-13 2024-03-03 22
321 사랑 과연 사랑의 은사인가? 전은덕 고전13:1-7 2024-02-18 7
320 더 큰 은사는 무엇일까? 전은덕 고전12:28-31 2024-02-04 6
319 교회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전은덕 고전12:12-27 2024-01-28 16
318 성령의 은사 전은덕 고전12:1-11 2024-01-21 15
317 사도 바울이 성찬을 말한 이유? 전은덕 고전11:17-34 2024-01-14 16
316 여자가 머리를 가리는 것 전은덕 고전11:1-16 2024-01-07 14
315 하나님 나라에 호적을 둔 교회 전은덕 시87:1-7 2023-12-31 14
314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 전은덕 눅2:1-14 2023-12-24 12
313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전은덕 고전10:23-33 2023-12-17 24
312 사람이 주 예수보다 강한가? 전은덕 고전10:14-22 2023-12-10 13
311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 왜 그럴까? 전은덕 고전10:1-12 2023-12-03 24
310 사도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사도 바울2 전은덕 고전9:14-27 2023-11-26 20
309 사도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사도 바울 전은덕 고전9:1-12 2023-11-19 15
308 우상 제물을 먹을까? 말까? 전은덕 고전8:1-13 2023-11-12 13
307 정혼자를 둔 자들에게 주는 교훈 전은덕 고전7:36-40 2023-11-05 14
306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전은덕 요1:1-4 2023-10-29 1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 Next
/ 17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