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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엡1:1-6
강설날짜 2017-02-26

우리는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첫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죽음과 파멸로 던져졌고,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분으로 나타내셨음을 믿습니다. 자비로우심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고 변치 아니하시는 경영 가운데서 그들의 행위를 고려하지 않으시고, 당신님의 선한 즐거움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서 선택하신 자들을 영원한 죽음으부터 구출하시고 구원하심에 있습니다. 공의로우심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스스로 빠져든 타락과 영원한 죽음에 버려두심에 있습니다.

 

지팡이교회는 그동안 벨기에(벨직) 신앙고백서, 제1-13항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배웠습니다. 그런 후 14-15항에서 인간에 대한 교리를 배운 후 오늘부터 19항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로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 제15항을 통하여 ‘원죄’라는 배움으로 모든 사람은 원죄의 죄책 아래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인류의 조상은 하나님과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사탄의 말에 속았습니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자유의지로 인하여 하나님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돌려서는 안 되는 것이고 자기 자신에게 돌려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비참한 현실에 보내심으로 사도 바울이 엡2:1절을 통해서 고백한 것처럼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신앙을 같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죄인을 향해서 하나님은 당신님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인간의 원죄로 인한 전적타락의 결과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인간의 원죄와 전적타락이 인정 안 되면 하나님의 선택(예정)은 굉장히 불공평한 것이 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6항의 첫 부분을 다시 읽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첫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죽음과 파멸로 던져졌고,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분으로 나타내셨음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타락 후에도 창3:15절에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심으로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학자들과 믿음의 선배님들은 ‘여자의 후손’과 ‘그의’라는 표현에 근거해서 특별한 후손을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성경은 전체구조에서 이해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고난과 부활을 승리하심으로 결국 사탄을 물리 쳤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은 원죄로 인하여 영원한 죽음으로 생활하는 것을 하나님의 선택을 통한 구원을 하시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말할 때는 늘 인간의 죄 문제를 말해야만 당신님의 자비로우심과 공의로우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도 제12-13항에서 창조를 다루고, 14항에서는 타락을 가르쳐준 후 제15항에서는 원죄를 다룬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이루시기 위해서 엡1:4절에서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음으로 가는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마1:2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기서 이런 해석을 하는 것이 성경의 전체적으로 볼 때 선한 사람을 위해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이란 말씀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제16항에서는 “자비로우심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고 변치 아니하시는 경영 가운데서 그들의 행위를 고려하지 않으시고, 당신님의 선한 즐거움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서 선택하신 자들을 영원한 죽음으부터 구출하시고 구원하심에 있습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선택 즉 예정을 확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을 롬8:28-30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선택과 유기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택하심은 삼위 하나님의 권한이고, 죄 용서도 오직 삼위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죄를 용서 받을 수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신부가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줄 권한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같은 죄인이기에 죄인이 죄인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에 예수님은 성육신으로 죄 없이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해 성사”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는다고 가르치지만 죄인이 죄를 사면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까? 신부에게 기도하면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죄의 대가는 죽음이기 때문에 죄지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신부가 나의 죄를 위해서 죽을 수 있습니까?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것입니다. 나를 대신 해서 죽어주신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딤전2: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중보자를 통해서 구원 받은 우리의 주관적 경험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객관적 상태는 명확합니다. 엡2:8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심으로 죄의 죄책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칭의”입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은 성도는 고전1: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탄(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고 있다는 것으로 성화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택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혹시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선택에는 당신님의 백성을 선택하신 사람도 있지만, 유기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네,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안에는 선택과 유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 안에서는 선택하심에 대해서는 그래도 많이 이야기를 하지만 ‘유기’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해버리고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지팡이교회는 선택 뿐 아니라 유기조차도 우리의 하나님의 예정에서 결코 외면해버릴 만한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유기조차도 전혀 비정하고 어두운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벨기에 신앙고백서만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선택과 유기의 내용은 제7문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그분의 의지의 계획에 따른 영원한 목적이다. 이에 의하여,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 발생하는 모든 일의 운명을 미리 정하셨다”고 가르칩니다. 그 근거는 엡1:4절과 1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배우고 있는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6항의 마지막을 다시 확인하여 보십시오. “공의로우심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스스로 빠져든 타락과 영원한 죽음에 버려두심에 있습니다.” 선택과 유기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가 시간과 역사 가운데서는 가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통해 선택과 유기의 깊은 의미를 통찰해 볼 수 있는 것은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해서는 유보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공의로우심으로 구원의 서정 가운데서 각 개인만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 형제의 선택과 유기의 여부는 마지막 심판의 때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종말 가운데서 비로소 명백해 지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서 분명히 선택과 유기의 두 국면이 있지만, 시간 안에서는 선택된 성도에게만이 아니라 유기된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섭리인 보존과 통치가 있습니다. 마5:44-54절을 보시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하시고 불변한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엡1:4절에서도 “창세 전”이라고 하심으로, 아담의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미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선택이 왜 ‘자비로우심’이십니까? 모든 사람의 전적인 타락으로 생각할 때 분명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조금이라도 의로 선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긍휼과 자비로운 성품에 의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의 구속을 또한 예정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신 것입니다. 선택하심은 우리의 행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순수한 선에 의한 것임은 오직 은혜입니다. 이것을 도르트신조에서는 ‘오직 은혜’라고 하면서 “이 은혜로운 선택의 원인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에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선택을 받지 못했거나, 또는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러면 아마도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당연히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선택과 유기를 생각하면 과연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까? 선택과 유기는 공정한 것입니까? 이것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롬9:13절에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누구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불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입증하기 위해서 15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가지고 오십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구원에 대한 신뢰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죄인은 단지 사면하여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는 롬9:14절의 말씀에 경청해야 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더 명확히 하시기 위해서 20-21절에서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잘못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펠라기우스주의와 알미니안 주의를 경고한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늘 인간중심이었습니다. 알미니안의 주장을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병들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병들었다는 것은 사람을 높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낮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은 단절된 관계가 아니라 가까운 거리처럼 생각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택은 조건적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기로 결정하심은 내가 믿기로 결정할지 아닐지에 따라 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선택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오직 은혜로우심에 감격하여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알미니안 주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공의로우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다양하고 정도가 다를지라도 택함을 받은 성도는 때가 되면 구원에 이르는 영원하고 불변한 선택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의 확신을 얻는 것은 하나님께서 숨기신 은밀한 것들을 호기심으로 들여다봄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기쁨과 거룩한 즐거움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에 지시하신 선택의 확신한 열매들, 곧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경외심...... 자신들의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 의에 주리고 목마름 등과 같은 것들을 자신에게서 살핌으로 얻게 된다”는 도르트 신조의 말씀도 경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도 하실 수 있습니다. 전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과 유기하기로 작정한 사람이 있지 아니합니까? 잘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어 주심으로 당신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모이는 교회’와 ‘가라는 교회’로 하신 것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하여 전도하심으로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28장에 “지상대명령”을 부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믿는 성도는 더욱 확신 가운데 모든 족속에게로 가서 열심히 전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전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하나님은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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