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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6"36-46
강설날짜 2017-03-19

제18항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당신님께서 정하신 때에, 당신님의 독생자이시고 영원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 아들은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 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 분은 진실로 모든 연약함을 가진 참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고, 죄가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사람의 행동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모태에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참된 인간이 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에 관해서만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영혼을 잃었을 뿐 아니라 몸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분께서는 몸과 영혼 둘 다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둘 다를 취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당신님의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육체를 취하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재세례파 이단에 반대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녀들의 혈육에 함께 속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아들이시고, 육신을 따라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고,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시고, 여인에게서 나셨고, 다윗의 가지이시고, 이새의 그루터기에서나신 가지이시고, 유다 지파에서 나셨고, 육신에 따르면 유대인의 자손이시고, 성자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연관되므로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은 진실로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십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성육신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성육신 하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드러내신 것이 겟세마네에서의 기도입니다. 마26:36-39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특히 39절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서 많은 이단들이 있으면서 주후 680년 콘스탄티노플 회의가 열립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지금의 터어키 이스탄불의 옛 이름으로 로마 황제가 주전 330년경 점령하면서 세운 도시입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도시에서 신학적인 논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총회가 열린 것입니다.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39절의 말씀인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두 가지 본성 또는 의향을 가지고 계시며, 한 의지가 다른 의지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결정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아버지의 뜻과 당신님(예수님)의 뜻과 성령의 뜻이기도 하기에 신성의 의지입니다. 그와 반대로 인성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잔을 할 수 있거든 옮겨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이 따로 있는 것입니까? 신성의 의지도 있으나 인성의 의지가 신성의 의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기도에서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의 결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신성과 인성이 연합했다고 해서 본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육신에는 두 가지 신성과 인성이 있는 것입니다. 신성은 인성과 연합한 후에는 고난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신적인 권능입니다. 그러나 인성은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인성과 함께 있음으로 노출되거나 유혹받을 수도 있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인성으로는 유혹을 받을 수 있지만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신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벨기에 신앙고백서 18항에도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당신님께서 정하신 때에, 당신님의 독생자이시고 영원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 아들은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 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 분은 진실로 모든 연약함을 가진 참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고, 죄가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사람의 행동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모태에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참된 인간이 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에 관해서만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영혼을 잃었을 뿐 아니라 몸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분께서는 몸과 영혼 둘 다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둘 다를 취하셔야 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당신님의 죽음도 아시고 무지하지 않으나 인성은 무지합니다. 인성은 죽을 수도 있으면서 신성처럼 모든 것을 아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육체와 같은 인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인성 안에 갇혀 있지 아니하시고 인성 밖에서도 역사하시는 의미로 우리는 이것을 공재설이라고 합니다. 신성은 인성의 연약성을 공유하지 않고, 인성은 하나님의 본질적 완전성에 전혀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신성은 신성이고, 인성은 인성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의 기독론에서 예수님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보좌를 떠나시지 않으시는 방식으로 마리아의 태속에서 수태되신 것입니다. 하늘보좌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일을 쉬지 않으시면서 갈릴리 바다를 거니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늘보좌에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통치하시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 세상에 성육신으로 오심으로 그리고 부활을 하셨습니다. 신학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부활하신 후 식사 하실 수 있으나 꼭 식사하실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인성의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은 몸과 영혼이지만 부활은 몸과 영혼으로 인성이 부활하심으로 인해서 현재 우리의 인성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영원까지 있지만 단 인성이 없던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덤에서 3일 동안 있음으로 인성이 없는 것입니다.

 

신성과 인성이신 성육신으로 오신 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 동일한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그 분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서 살며 가르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성과 인성이 각각의 성질에 따라서 일하시나 인격은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처음부터 로고스의 인격과 함께 은혜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분이 성육신으로 오신 것입니다. 요1: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심으로 말씀인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계신 분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요1:1절에서 증거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성육신으로 오심으로 타락한 백성들과 함께 거하심으로 이 말씀은 참 빛이며 모든 사람들의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님께서 오신 것을 성육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 곧 자기를 비워 모든 조건에서 인간과 같이 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오직 은혜로만 고백할 수 있는 신비입니다.

 

왜 예수님은 당신님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오신 것입니까? 당신님은 워낙 높으신 분으로 하늘보좌에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셨습니다. 요17:5절은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당신님께서 기도하심으로 창세전에 있었음을 선언하시는 기도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신성을 알았습니까? 처음부터 알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서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하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옆의 그림을 기억하시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신적인 엄위를 숨기시고 우리와 같은 형태로서 인성을 취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율법 아래 나신 것으로 당신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율법을 주신 분이신데 그 분이 율법 아래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상 생애 중 율법을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입법자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주 놀라운 것이지만, 율법의 모든 요구를 짊어지시고 율법의 저주를 예수님이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성육신으로 취하여 오셨는가? 예수님이 인성을 취하지 않으셨으면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율법의 저주를 짊어지기 위해 스스로 죽으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람의 몸으로 오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고, 당신님의 백성이 지향해야 할 참된 신앙 생활을 인도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은혜입니다. 지팡이교회도 예수님의 가실 길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의 인성을 따라가는 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결국에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부활이 바로 나에게도 있다는 소망이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사복음서 중에서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구약에 예언된 계획이 성취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18절을 시작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로 함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쓰면서 특히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그리스도는 구약의 메시야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약속된 왕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흔히 말하는 수태고지인 눅1:26-3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직접 성경을 찾아서 읽어 보았으면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아마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것을 카톨릭은 성화로 묘사를 하지만 잘못된 것입니다. 옆의 성화를 보시면 마리아가 성경 책을 펴고 묵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 수 있습니까? 개인이 성경책을 가지고 있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종교개혁이 일러날 수 있도록 인쇄술이 발전한 시대가 아닙니다. 옆의 그림을 보면 카톨릭이 성화의 이미지를 통해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볼 때는 선입관을 버리고 처음 읽는 것처럼 읽는 것이 아주 유용한 것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입니다.

 

눅1:27절을 말씀을 보면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고 함으로 다윗의 자손임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메시야적 칭호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요셉은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이 세상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다음의 28-29절은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라고 하십니다. 평안할지어다라고 하는 것은 일상적인 인사를 받을 때는 놀라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자여와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는 인사에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브리엘은 31절에서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아주 좋은 은혜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당황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32-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 34-38절은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 원하실 때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태고지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말씀은 39-56절 말씀입니다. 이해를 돕고자 아래의 도표가 유용할 것입니다.

마리아

엘리사벳

하나님의 능력

남자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의 잉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졌다.

하나님의 능력

사가랴·엘리사벳의 육체적 관계를 통한 잉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졌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친척이라서 집을 알았다고 하면서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다고 하면서 태아도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말한대로 수태고지 이후 벌써 잉태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잉태한 것입니다. 남녀와의 관계적인 것이 아닌 놀라운 신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동정녀라고 부릅니다. 말씀을 듣고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의미로 교부들이 사용했습니다. 마리아도 자신이 잉태된 날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아마도 말씀을 들은 날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학자들은 마리아가 잉태할 때를 대략 14세로 추정합니다. 유대인의 결혼 풍습은 정혼 7일 동안 혼인잔치를 하고 동거를 합니다.

 

여기서 천사는 다시 요셉에게 나타납니다. 마1:18-25절의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오늘날의 약혼은 1년 정도로 훨씬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육체적인 관계는 허용되지 않았으나 결혼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기간을 있습니까? 여자가 성적으로 정결한지 검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정결하지 않으면 약혼 기간에 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 후에 아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혼인 상태에서도 아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의 혼인 기간에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됩니다. 마태는 미리아의 정절과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출생을 보호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미 아내로 인정되었지만 요셉은 무서워하였습니다. 남녀의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잉태되어 있었던 아내를 안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주의 사자’가 무서워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아는 사람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었지만 이제는 요셉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 한 것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 율법과 관계가 있습니다. 혼전 잉태는 돌로 쳐 죽이는 것이 구약의 형벌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신비를 마태와 누가는 기록을 하는 것이고 마가와 요한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서 기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믿음의 선배님들이 성경의 말씀에 기초하여 고백한 것처럼, 역사적인 인성의 예수님 안에서 나타나셨다는 주장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성육신의 분명한 모습으로 예수님은 단지 인간으로만 고백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삼위일체의 신비인 것입니다. 성육신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기독론과 기독교의 절정입니다. 다음 주에 더 연결하여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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