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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창3:1-10
강설날짜 2017-03-05

제17항 타락한 사람의 구원

 

“우리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이렇게 스스로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에 빠져서, 전적으로 비참하게 된 것을 보셨을 때, 당신님의 놀라운 지혜와 선하심으로 사람이 당신님께로부터 두려워 떨면서 도망칠 때 그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주어 여자에게서 태어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복된 사람이 되게할 것이다“라고 하는 약속함으로 위로하기를 기뻐하셨음을 믿는다.

 

 

지팡이교회는 지난주에 ‘하나님의 선택’으로 선택과 유기가 있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비로우심과 공의로우심으로 죄의 사망에서 구출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음을 우리도 믿습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믿음으로 ‘오직 은혜’라는 것을 양심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원죄는 전적인 타락의 결과였지만, 창세 전에 당신님이 백성을 예정하심으로 나를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당신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원하신 것에 대해서 오직 은혜만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제16항에서는 하나님께서 선택을 통한 당신님의 작정으로 선택과 유기를 가르친다면, 제17항에서는 하나님의 놀라움으로 구원하시는 은혜의 세계에 들어서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죄에 빠진 이후에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행동)에 관심을 가지도록 함으로, 선택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구원사역을 다룹니다. 귀도 드 브레는 먼저 사람의 죄와 비참과 사람이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묘사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스스로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에 빠져서, 전적으로 비참하게 된 것을 보셨을 때, 당신님의 놀라운 지혜와 선하심으로 사람이 당신님께로부터 두려워 떨면서 도망칠 때 그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죄를 지음으로 “모든 후손들이 첫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죽음과 파멸로 던져졌고”라고 제16항에서 고백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무엇을 본 것입니까? ‘영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죽은 사망의 상태를 아신 것이고 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원죄의 결과로 인한 것임을 우리도 믿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믿음인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과의 신뢰를 무너뜨린 결과인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전적으로 비참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원죄로부터 비참해진 우리의 모습에 ‘당신님의 놀라운 지혜와 선하심으로 사람이 당신님께로부터 두려워 떨면서 도망칠 때 그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찾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무슨 종교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찾으면 시145:8절에서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벧후3:18절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사람의 공로와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긍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는 종교인 것입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인간의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식으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은 요1:14절에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심으로 기독교 종교의 의미를 잘 드러낸 것입니다.

 

제17항에서는 사람의 타락한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을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은혜롭고 공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영혼의 잠정적인 분리를 의미라는 것으로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타락한 사람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된 사람은 점점 악해지는 것 같습니다. 악해진 사람들은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을 알지 못하고 발견하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하나님의 백성은 특히 귀도 드 브레에 네델란드 안에 있었던 벨기에 지역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지팡이교회는 마10:28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복음의 증인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됨으로 영혼의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길로 갈 수 없습니다. 엡2:1절은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허물과 죄로 사망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오직 은혜’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귀도 드 브레는 그 다음으로 무엇을 가르쳐 주시기 원합니까?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피한 것을 언급을 합니다. “당신님의 놀라운 지혜와 선하심으로 사람이 당신님께로부터 두려워 떨면서 도망칠 때 그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에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은 ‘두려워 떨면서 도망’할 때 누가 찾아 오신 것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 보다는 멀리했습니다. 시73:27절에서는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냥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멸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어 주심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죄와 비참에 대한 깨달음을 알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님의 백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죄를 범함에도 불구하고, 창3:8-9절에서는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시면서 부르시고, 어디 있느냐고 찾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두렵고 도망치면서 떨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부르시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이 당신님의 백성을 부르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으로 가야할 우리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놀라운 ‘오직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진정한 사랑하심으로 불쌍히 여기심으로 “창세 전에” 구원하시겠다고 작정하신 은혜 때문입니다.

 

눅15장의 비유장에서 예수님은 세 가지의 비유로 은혜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십니다. 주위에서 들었던 것을 내려놓고 읽어 보십시오. 무슨 비유가 있습니까? ‘잃은 양 비유’ 그리고 ‘열 드라크마의 비유’ 마지막으로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먼저 잃은 양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4절에서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열 드라크마 비유인 8절에서도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드라크마를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찾으라는 강조점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다 해 주실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탕자 비유입니다. 어떻게 보면 다 같은 비유로 생각할 수 있지만 탕자의 비유는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앞의 비유에서는 찾으라는 것이지만, 탕자의 비유에서는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탕자가 그냥 찾아 온 것 같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인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탕자의 마음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돌이킬 수 있는 회개를 주심으로 돌아오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은혜요, 창세 전에 구원하여 주시기로 한 하나님의 예정인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은 창3:15절의 말씀을 “원시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언약”과 “생명의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제 16항에서도 배웠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지라도 그것이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오히려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승리의 표현입니다. 이것을 잘 아는 벨기에 신앙고백을 하는 선배님들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주어 여자에게서 태어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복된 사람이 되게할 것이다”라고 하는 약속함으로 위로하기를 기뻐하셨음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에게 찾아오심은 죄인에게 나타난 은혜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었듯이 계속하여 하나님은 복음으로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으시고, 영원하신 분으로 오늘도 구원하여 주십니다. 사람이 선택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창17:7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사람이 하나님께 찾아가서 언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당신님의 백성에게 사랑의 관계로서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 서도 당신님께서 하실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것으로 다시 회복된 형상으로 생활하도록 하시겠다는 구원의 약속인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에 의한 알미니안 주의와 자유자들이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마치 하나님께 훈수할 수 없은 것이고 가르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로 말미암아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율법이 먼저 와야만 하고, 실체가 제대로 역사하기 위해서는 모형을 통해 예습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먼저 약속하시고 모형을 통해 예습시키신 후 한참 뒤에 아들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실 유일한 소망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유일한 소망이 되도록 하심으로 “원시복음”의 약속을 하심으로, 구원을 받은 백성은 늘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출20:3-17절의 말씀에서 “열 가지 언약의 말씀”(십계명)을 주심으로 당신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고, 사람이 순종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고별의 인사인 신26:16-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17.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18.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구원받은 백성은 보배로운 자들로 선언하는 것이고,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오직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인 언약을 하심으로 우리를 보살피고 다스리심으로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우리에게 그리고 비참한 현실에서 사탄의 노예로 생활을 하던 우리에게 언약의 복음을 주심으로 진정한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에서만 언약이라는 단어가 287번 사용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그리스도인은 책임 있는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고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심으로 온전히 승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도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여 마치 씨앗이 심기어 진 것과 같습니다. 씨앗은 점점 자라면서 알곡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도 무르익어서 알곡이 되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어 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생활하는 시대에서도 자라가야 하는 과정으로 주어진 것이고 종말론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성취가 되었지만 아직 완성이 안 된 것입니다. ‘이미’와 ‘아직 아니’의 긴장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극치에 이르는 마지막 날에는 영광된 승리만이 있음을 아는 믿음의 선배님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17항의 마지막 부분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주어 여자에게서 태어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복된 사람이 되게할 것이다“라고 하는 약속함으로 위로하기를 기뻐하셨음을 믿는다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증인 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야고보는 왜 시험과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잘 설명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약1:3-4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험을 통해 인내를 이루어 영적 성숙을 도모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의한 것이라 하십니다. 믿음과 행함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임을 생각하면서, 타락한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가르치신 벨기에 제17항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팡이교회 성도님,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심으로 승리하셨다고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히 승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비참한 현실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계속해서 영적전쟁을 감당해야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승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부탁하신 복음의 지상대명령을 수행하는 것이고,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과 핍박과 유혹이 와도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것이 교회의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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