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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15:12-28

사망한 사람의 부활이란?(고전15:12-28)

 

사람은 사망하면 영혼은 주님께서 계신 낙원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눅24:43절에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십자가에 함께 있었던 강도에 대한 것입니다. 강도는 예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죽었습니다. 강도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강도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죄를 용서해 준 것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강도를 낙원에 있도록 하셨습니다. 낙원은 예수님께서 계신 장소입니다. 그러면 낙원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낙원을 이승구 교수님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죽은 자들의 영역으로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여 하늘의 기쁨을 동등하게 누리는 상태”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주님의 재림 때를 기다립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는 최후의 심판이기도 하지만, 몸과 영혼이 하나의 몸으로 다시 결합하는 것입니다. 몸과 영혼이 어떤 모습으로 변형될지는 모르지만, 부활을 소망하며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몸과 영혼이 온전한 모습으로 부활한 후에는 주님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예배하는 삶을 생활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그날을 소망하며 성경의 말씀을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지난주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을 알기 때문에 부활을 바르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부활을 증거 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고린도 지역에서 고린도 교회가 설립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부활을 믿는 것이며 구원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망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장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면 어떻게 장사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에게도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만 아니라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로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람 중에는 죽은 자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살아 있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사실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만이 아니라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의 부활이 헛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자 사역했습니다. 이렇게 사역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고 있는 지팡이 교회는 사망한 사람의 부활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한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왜 그런지 오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누리며 알아야 합니다.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요 부활을 믿는 자는 복음을 믿기 때문에 구원받습니다. 사람은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부활을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해야 할 본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에 부활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신자는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12절을 보시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부활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사건이라는 것을 알도록 합니다. 부활을 논증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먼저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연결합니다. 13절을 보시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입니다. 13절은 같은 말씀을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죽은 자의 부활이 불가능이라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불가능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죽은 자도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죄를 사면하는 것이며 죄에 대한 항구적인 승리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없다면 부활도 없습니다. 사람은 사망합니다. 사망하기 때문에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일부 신자는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만약 고린도 교회 일부 신자와 같은 생각이라면 오늘 말씀은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성경도 필요 없습니다. 세상 사람처럼 생활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부활이 헛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지금까지 교회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자는 부활을 믿기 때문에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회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교회의 사활의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면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은 영원한 생명의 문제입니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켰습니다. 15절을 보시면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미혹의 영에게 넘어가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도 헛된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예수님의 인격과 연관시키는 이유는 부활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은 사람을 부활하도록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예수님을 부활시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앞에서 이야기하셨던 것을 덧붙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16절을 보시면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부활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13절에 말씀을 다시 반복함으로 부활은 신자들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임을 알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17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입니다. 17절은 부활의 성격이 무엇인지 알도록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죽은 후 모든 삶이 마무리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죽은 모습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몸이 죽어 잠을 잔다고 합니다. 몸이 죽어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깨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후 심판대에서 판결됩니다. 마치 세상의 법정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 법정은 지옥과 하나님 나라로 결정됩니다. 부활을 믿는 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반대로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지옥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죄 가운데 생활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부활이 있으므로 죄와 멀어져야 합니다. 부활은 우리의 죄를 없애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죄와 친구로 지내며 사리사욕을 위한 욕망이 지배하고 있다면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죽은 자의 소망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18절을 보시면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만 아니라 죽어서 잠들어 있는 자도 깨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믿고 죽은 자들에게 부활이 없다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현을 보았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현현으로 보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주셔서 부활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19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미래가 담겨있습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으로 불쌍한 인생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불쌍한 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활이 있기 때문에 이생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부활을 믿기 때문에 믿음과 구원 그리고 죽음 등은 허사가 아닙니다. 부활은 신자들에게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20절을 보시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문맥을 전환합니다. 그래서 “그러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어서 잠자고 있는 자들을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부활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도록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부활은 근본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참된 부활을 믿도록 하는 것은 신앙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헛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종교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헛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종교는 헛것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승리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20절의 말씀을 간략하게 말씀하지만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은 자들의 보증과 증거가 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도 부활한다는 보증과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시작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교회는 예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가 어떻게 들어 왔으며 부활도 어떻게 들어왔는가를 알도록 합니다. 21절을 보시면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입니다. 죄는 첫 사람인 아담으로 인해 들어왔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지 아니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죄는 사람에게 무서운 존재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했으므로 사람이 죗값을 받음으로 죽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죗값을 감당해야 하므로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죄를 감당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부활은 이처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22절을 보시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으로 시작되었지만, 죽은 자들 중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모두 미치는 영광의 기쁨이 있는 부활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부활이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는 주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부활의 순서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23절을 보시면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도 순서가 있다고 합니다. 첫 열매의 부활은 예수님이고, 그다음으로 부활한 자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은 기쁨이 있습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벗어 드릴 수 있는 행복이 있습니다. 23절과 달리 2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입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고 난 뒤 세상의 종말 즉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있는 것처럼 심판받는 자의 부활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고 사단의 종노릇 하던 자들은 결국 심판받습니다. 마지막 심판을 좀 더 알 수 있도록 25-26절은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왕과 같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심판에서는 원수들을 발아래 두심으로 부활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십니다. 여기서 모든 원수는 사단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죄로 죽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죄를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감사입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부활을 믿으면 됩니다.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놓이게 된다는 것을 27절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입니다. 사망은 결국 멸망입니다. 만물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복종한 것과 같습니다. 28절을 보시면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의 모든 끝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모든 완성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창조물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창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예수님과 같습니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처럼 장사 되었지만,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입니다. 죄 때문에 지옥으로 가야 할 신분이었지만, 주님의 피 값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은 몸과 영혼이 부활한 후 주님께서 계신 곳에서 영원한 삶을 생활합니다. 그러니 사람은 선택해야 합니다. 사망한 후 축복과 저주입니다. 구원은 축복입니다. 이 세상의 축복과 다른 극치의 기쁨이 있는 축복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심으로 인해 교회는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리함으로 마지막 날에는 주님과 함께 생활하며 행복을 누립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한 성도는 부활한 모습으로 생활하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하며 내 영혼이 구원받은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교회의 참된 모습이여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한 모습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때를 바라보며 세상 속에서 교회로 존재하기를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지팡이 교회는 사망한 사람의 부활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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