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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고전7:25-35
강설날짜 2023-10-08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0HrZQ016Acs

사도 바울이 말하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마음(고전7:25-35)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것을 믿음으로 신앙 고백합니다. 오늘도 신앙 고백하는 지팡이 교회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알려 주셨기 때문에 교회는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풍성히 주시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로 부르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시며 힘을 주십니다. 이것을 안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하게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알려 주셨습니다. 산상수훈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팔 복이라고 합니다. 팔 복이라고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8가지 복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8가지 복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도 처음과 끝이 천국입니다. 천국으로 시작하여 천국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복 있는 자”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복 있는 성도이기 때문에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활합니다. 오늘은 모이는 교회로서 삼위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예배하는 교회는 복 있는 성도입니다. 복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마음”을 통해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바로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주 강설을 다시 기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난주 강설은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하나님의 종이다”였습니다. 종으로 부르셨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로 부르시면서 무엇을 주셨습니까? 각 사람에게 맞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은사를 나눠 주신 대로 삶을 생활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의 선물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은 외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명품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명품이 좋을지언정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외적인 것보다 내면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외적인 할례를 중요시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할례의 의미를 기억하며 삶으로 은사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할례만 한 것으로 만족하며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할례의 의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결국 할례의 문제는 예루살렘 공회에서 결론 났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예루살렘 공회였습니다. 할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대로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입니다. 계명을 통해 나의 존재를 알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온전하게 계명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입니다. 세상의 걱정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켜주십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믿음으로 신앙 고백하며 하나님을 믿습니다.

 

지난주 강설을 기억해 본 우리는 오늘 말씀도 잘 기억하기를 소망합니다. 살후2:15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사도의 말씀은 “신적 권위를 가진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 당신님의 말씀을 알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충성된 마음으로 고린도 교회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5절을 보시면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입니다. 사도 바울은 처녀에 대한 결혼을 신중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신중하게 말해야 했습니까? “주께 받은 계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말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기혼자에 대한 것이 있었지만, 처녀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처녀에 대해 말씀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충성된 사도였습니다. 충성된 사도는 교회를 세우는 사역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충성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충성된 마음으로 처녀에 대한 의견을 말합니다. 26절을 보시면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입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없지만, “그러므로”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그러므로”는 무엇이겠습니까? 임박한 환난의 때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환난의 때에는 의식주의 문제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지막 때만 어려움이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도 초대 교회와 같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혼해도 환난이 있습니다. 안 해도 환난이 있습니다. 대학에 간다고 해서 환난이 없습니까? 반대로 대학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환난이 없습니까? 그러면 사도 바울은 왜 26절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참으로 난해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결혼하지 않는 것도 좋지만, 결혼하는 것도 좋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결혼하든 안 하든 중요한 것은 먹고 마시든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의 나라와 가의 의를 구하라”라는 것을 알며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함을 받은 교회는 오직 세상에 매여 살지 말며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종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입니다. 이 말씀은 미래에 결혼할 처녀는 잘못된 사람과의 결혼을 피할 것을 권면하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매였다”는 것은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고, “놓였다”라는 이혼을 의미합니다. 하여튼, 결혼은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했으면 이혼은 불가합니다. 결혼한 것을 후회하며 짐스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으로부터 해방하고자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예외의 말씀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은 서로 한 몸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결혼은 서로 한 몸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난이 더 있을 수 있기도 합니다. 28절을 보시면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결혼하는 것은 죄짓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고난이 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처녀가 결혼하고자 할 때 신중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알기 때문에 신중한 마음으로 처녀에게 권면한 것 같습니다.

 

참으로 오늘 말씀은 난해합니다. 사도 바울의 시대를 온전하게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9절도 난해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입니다. 사도 바울은 결혼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우자가 없는 것처럼 생활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배우자가 없는 것처럼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즐 주님께서 오시는 재림의 때처럼 생활하라는 것 같습니다. 재림의 때에는 더 힘든 고난이 있는 것처럼, 결혼을 한 사람은 서로 한 몸이라는 것을 명심하며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늘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관심사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교회의 관심사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셨습니다. 8가지의 복은 오직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참되게 믿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승리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배우자와 같이 사는 것도 행복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더 큰 행복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30절에서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삶을 초월하는 곳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삶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알 수 있도록 사도 바울은 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외형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교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의 물건을 다 쓰기 위해 악착같이 세상을 좋아하면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잘 쓰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쌓아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의 물건을 다 사용하기 위해 몰두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의 때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가 “주여”라고 삼창해도 소용없습니다. 이 세상의 물건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제한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염려하는 마음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32절을 보시면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염려가 없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염려하기를 소망합니다. 왜 그런지 고민해 보면 이렇습니다. 성도는 세상일에는 염려를 그치고 주님의 일에는 염려를 일으키도록 합니다. 세상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염려는 그릇된 것이지만,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염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구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의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32절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위한 마음 즉 염려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걱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위한 마음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보시면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염려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화롭게 생활해야 합니다. 이것이 섬김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를 기쁘시게 할까”라고 했습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까”는 사도 바울의 삶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의 마음 씀씀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결혼한 사람과 미혼의 남녀를 대조합니다. 33-34절을 보시면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람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결혼 후 사람이 달라지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묘사입니까? 그것은 결혼 전과 후에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입니다. 결혼 전이나 후나 성도는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이 똑같아야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결혼 전과 후에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중요한 것은 결혼하든 안 하든 중요한 것은 주를 위한 마음입니다. 주를 위한 기쁨이 있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위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35절을 보시면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위한 지적인 요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독신 생활의 가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게 올무를 놓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기혼자이든 미혼자이든 중요한 것은 주를 섬기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늘 주님을 기쁘게 하는 마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염려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가지도록 합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사역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세상에 메이지 말며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한 목표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주님을 향한 길이 아닌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한 삶으로 타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세상의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것은 결국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마지막 심판 때에 사라집니다. 그러니 하나님 외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임박한 환난일수록 더욱 주님을 향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황제 숭배와 이단 그리고 교회 안의 문제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있는 성도는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사도 바울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결혼에 관한 것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한 자들은 관계를 다 하며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결혼한 사람만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미혼자도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며 주를 기쁘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이 세상의 것이 올무가 되지 않도록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해질 것을 믿습니다. 초대 교회보다 오늘날 교회는 주님의 때 즉 심판의 때가 더 가까지 와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더 가까지 와 있다는 것은 구원이 더 가까이 와 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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