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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보다 올해는 더욱 단비를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대지가 갈라지는 가운데 비는 오지 않고, 태양의 열기는 더욱 단비를 갈망하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믿음이 없는 시대에 은혜의 단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목회자의 간절함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운 단비와 같은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더욱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태양열과 같은 열기를 내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목회자의 마음은 은혜의 말씀과 같은 단비가 내림으로 하나님이 참 구원자이심이 드러나기를 소망하면서 사명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저만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삶의 생활에서 충실한 군사다운 모습으로 감당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오늘은 왕상6:16-17절의 말씀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씀 중에 16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아마도 오랫동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엘리사와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두 인물을 통해서 나의 신앙을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에 의해서 나병을 고침을 받은 장군이었습니다. 나병은 장군의 약점 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둘의 관계를 미리 준비하신 것입니다. 1절에서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자신이 나라를 구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나아만에게 하나님은 엘리사를 만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작정의 은혜로 당신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놀라운 작정 가운데 나라를 구한 나아만이라도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 때에 엘리사를 만나게 하심으로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자 선물을 했지만 엘리사는 정중하게 거절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엘리사의 사환은 선물이 탐나서 나아만 장군을 따라가 선물을 받아 챙겼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을 고쳤으면 선물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복음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는 물질에 탐욕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시대에도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물질에 탐을 내고 속이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속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속인 게하시는 결국 27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고 하신 것과 같이 나병환자가 된 것입니다. 그 뒤에 말씀은 나오지 않지만 자신의 죄를 알고 돌이키면 구원을 얻지만, 돌이키지 아니하면 결국 사망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자신의 죄를 알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사람은 영원한 형벌이 아닌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낙원에서 신안생활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오늘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속이지 말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속이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가짜 신앙인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유혹해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바르게 신앙 생활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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