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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예배를 한 후 3일이 되었습니다. 3일하면 ‘작심삼일’이 생각나기도 하고, 예수님의 3일 후 ‘부활’하신 생각도 문뜩 떠오르기도 합니다. 성탄절에 예배를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 때 생각한 마음을 지금도 품고 있습니까? 아니면 작심삼일로 끝난 것입니까? 예수님의 오심은 부활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회개의 기회이고, 회심을 통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결국 부활의 몸을 바라보면서 작심삼일을 한다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면서 애통하면서 긍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만 바라보고자 하는 지체님에게 주님의 위로와 교통하심이 살롬으로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고후4:10-11절 말씀을 보면 어떠십니까?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생각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생각할 때, 당신님의 몸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모습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짊어지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나무에 달려 죽은 자가 어떻게 메시야라고 할 수 있는가? 바울 자신은 과거에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박해를 한 이유는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저한 랍비의 교육을 받은 그에게는 나무에 달려 죽은 사람은 메시야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신21:23절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바울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열심히 나무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선포하고 따르는 자들을 박해하고 살인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에게 다메섹에서의 회심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달려 죽은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으로 복음의 증인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증인을 감당하는 교회요 성도인 나는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고통과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기의 몸과 생활로 영광을 올려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는 가수가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하지만, 복음의 증인자로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미완성’이 아니라 부활의 몸으로 ‘완성’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 완성을 위해서 오늘도 부끄러운 모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위로하고 말씀으로 격려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은 말로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증인 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바울은 자신의 몸으로 조상들의 전통을 버리고, 예수님의 생명이 나의 몸에 나타내려고 고난의 길을 걸었던 믿음의 선배님이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자는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증인자로서의 완성은 주님께서 푸른초장으로 인도하시면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기쁨의 영광으로 주님과 영원한 동행 하는 것입니다.


올 해도 이제 3일 남았습니다. 작심삼일을 해도 올 해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증인자로 작심삼일을 해 봅시다. 새로운 해가 되어도 또 작심삼일 해 봅시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 사랑 꼭 기억합시다. 사도 바울은 그 사랑을 늘 생각하면서 마음에 품으면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잘 감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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