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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교회

일용할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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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주일이었습니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읽는 분이라면 당연히 주일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을 것을 믿습니다. 저는 늘 성경적인 강설을 혹은 강론(설교?)을 하고자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강설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바른 신학에 근거하면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면 부족한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른 설교에는 당연히 언제나 회개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설교를 하려고 하면 양심이 부끄럽고 청중을 위한 좋은 설교를 하기에도 양심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성도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교묘한 설교를 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를 당신님의 나라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은 어제 지팡이교회당에서 마17:1-13절 말씀으로(6-13절 중심으로) ‘예수님이 당신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다’라는 말씀으로 두 주간에 동안 강설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제자들의 신앙을 점검한 예수님은 당신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과 죽음 그리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항변을 하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있는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당신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면서 장차 당신님께서 높아지심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너희(제자)의 종말론적 광채를 기대 하도록 하는 의도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적인 영광을 드러내심으로 제자들이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부활과 성령강림 사건 후에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후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구원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고난의 길에 동참하는 것을 오히려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님의 백성을 긍휼과 사랑그리고 자비로 사랑하여 주십니다.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요 나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안 제자들은 고난 앞에서 담대하면서, 비굴한 모습으로 타협하지 아니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한 존재요, 어리석은 자로 보일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보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는 사도들의 순교로 더욱 초대교회의 성도에게도 같은 길을 걸으면서 주를 위해 고난 받고 죽는 것을 무한한 영광이요, 상급이라 여겼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이 아니라 ‘존귀와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당신님의 신적인 영광을 드러내심으로 당신님이 왜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지 더욱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양식을 통해서 말씀의 은혜를 누리고자 하는 형제, 자매님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간구 하면서 기도합시다. 나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기를 기도하면서 ‘존귀와 영광’의 고난의 길에 주님이 함께 동행함으로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샬롬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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