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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요1:1-4
강설날짜 2023-10-29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uQPQNYiEf0w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요1:1-4)

 

개신교에 있어서 10월에는 신학교마다 종교개혁에 대한 강의가 많습니다. 신학교는 종교개혁에 대한 강의가 있지만, 교회에서는 종교개혁에 대한 강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교회는 종교개혁에 대한 정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신교에 있어서 루터는 매우 중요합니다. 루터가 없었다면 아마도 교회는 계속해서 타락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타락했을 때 루터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교회를 개혁했습니다. 루터는 목숨을 걸고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크트 성당에 95개 조의 반박문을 붙었습니다. 반박문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하면 구원은 행위의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신앙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결국 카톨릭과 결별하고 개신교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그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같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이 성경으로 돌아가도록 했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도 같은 마음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교회는 예배하는 삶으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이미 교회에 전수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장을 위한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너희를 도무지 말지 못하는니라”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너는 구원받지 못했다는 선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안개와 같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교회는 믿음의 선배님들께서 왜 종교개혁을 해야 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성경으로 돌아간 교회이기 때문에 예배를 귀하게 생각하며 성상의 파괴와 설교의 회복 그리고 성례 등이 바르게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질문해 보겠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무조건 믿습니까?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였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인에게 있어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믿음의 대상은 오직 삼위 하나님뿐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것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냥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왜 믿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유일하신 구원자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믿음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대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용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이 말씀하신 것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신 것을 최소한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요약한 사도신경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을 통해 우리가 믿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창조부터 부활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마음의 편안을 믿는 자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교회는 성경을 잘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루터는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교회를 개혁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교회도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생각하며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요1:1절 말씀을 통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며 은혜를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며 첫 시작을 장엄하게 선언합니다. 그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우리가 읽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입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 깊은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1절의 말씀은 창1:1절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창1:1절의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사도 요한은 말씀과 하나님이 동등함을 알도록 합니다.

 

신학 공부하든 안 하든 어거스틴을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가 기록한 “신국”에서 요한복음의 첫 구절은 “황금으로 기록해 둘 만한 값어치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숨겨져 있던 비밀이 공개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공개된 비밀을 요한복음을 통해 지구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창세기의 말씀과 연결된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님을 알도록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리함으로 교회는 사도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중요하기 때문에 1절은 말씀을 반복해서 기록했습니다. 그것도 3회를 반복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읽고 있는 교회와 독자들에게 “로고스” 즉 말씀이 무엇일까?라는 고민하도록 하고자 합니다. 말씀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도록 함으로 말씀이 왜 예수 그리스도일까?를 알도록 합니다.

 

글을 쓰는 저자는 자신만이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 머리에 간략하게 기록하기도 하지만 제목을 통해 독자들의 마음에 남도록 합니다.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첫 시작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도록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을 읽고 있는 그 시대의 사람들은 “로고스”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시대와 오늘날 우리는 환경과 언어도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로 로고스를 말씀으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을 기록한 시대는 번역할 필요도 없이 로고스 하면 쉽게 알아들었습니다. 여기서 말씀을 듣는 교회는 로고스가 즉 말씀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로고스는 세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인지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로고스의 첫 번째 의미는 스토아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으로 우주를 지배하는 이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말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지성 또는 이성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 헬라어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말씀을 의미하는 헬라어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로고스가 말씀이며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로고스가 실제적인 우리와 같은 육체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분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성경이 말씀하여 주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로고스라는 말씀을 통해 독자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이며 계시의 사역 가운데 현저히 나타나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오심으로 인해 당신님의 사역을 통해 행하시는 모든 사역은 동시에 하나님의 행위와 말씀임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14:9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셔서 당신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려고 하나님보다 못한 것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러한 것을 사용하면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1:18절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좋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서로 보완적 위치가 아닙니다. 서로 하나이면서도 서로가 내주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공간과 물리적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며 아들은 아버지의 품속에서 아버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님들은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실제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임을 알도록 했습니다. 마태도 그래서 “임마누엘”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부활하신 후에는 의미를 알고 오직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로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교회는 성경의 말씀을 바르게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세 시대처럼 교회는 타락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온전한 교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말씀대로 믿을 때 교회는 온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습니다. 태초부터 있었던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육신으로 오셨습니다. 태초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의 시작은 알 수 있습니다. 그때는 삼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부터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과학으로 창조의 비밀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말씀으로는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종교도 이 세상의 시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성경만이 알려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은혜입니다.

 

태초는 시작과 기원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만물의 시초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사도 요한은 만물의 시작은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 그 자체이며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시면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하게 잘 전달하실 수 있습니다. 2절의 말씀은 삼위일체에 관한 근거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합니다. 구약 성경은 이사야를 통해 신적 메시야의 탄생을 기록했습니다. 때가 차매 예수님께서는 독생자로 오셨을 뿐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알려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원함을 받은 교회는 찬송과 감사 그리고 영광을 돌려야 할 신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교회는 공로 없이 구원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사도 요한은 3절을 통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천지 만물의 연결이 없다면 만물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예수님께 순종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창조 만물의 관계를 증거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처럼 창조 만물의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예수님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같습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삼위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은 서로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도 같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종교개혁가들처럼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때와 다릅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목숨이 위태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체가 많다 보니 복음을 전하기는 더 쉽습니다. 그러니 참된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주의할 것은 본문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교제하고 신뢰할 때 참된 복음과 삶의 의미를 알며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4절을 보시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교회를 구원하실 수 있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감당하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부활로 생명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며 생명력을 유지하도록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교회는 죄로 인해 어두움에 있던 자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어둠에서 빛의 자녀로 부르시며 생명이라는 부활을 주셨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생명을 주심으로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사람에게 생명은 무엇입니까? 생일 잔치를 할 때 기쁩니다. 사람은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생일잔치를 할 때는 기쁨이 있지만, 죽음 앞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기뻐하지 않습니다. 무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기쁨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서 구원하여 주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교회를 부활하도록 하십니다. 여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삶에서 느끼지 못하던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루터는 종교개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생명의 길이요 진리이며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셨습니다. 창조 이전부터 말씀으로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하셨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죄가 없이 성육신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이 무엇인지 삶으로 그리고 부활로 보여주셨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늘 한결같이 생명의 말씀으로 존재하시며 교회를 지키십니다. 가장 타락한 중세 시대라 할지라도 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루터를 통해 개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개혁을 하도록 함으로 구원의 통로는 오직 당신님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도록 함으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그러니 지팡이 교회는 정신을 차리면서 주의 길을 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요한은 생명을 알기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고 선언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사도 요한과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지팡이 교회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늘 인식하며 주의 길을 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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