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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학과 실존

키에르케고어가 말하는 "절망"과 절망의 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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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1. 키에르케고어가 말하는 "절망"이란 무엇인가?
키에르케고어에 의하면 "죄란 인간이 신 앞에서 신에 대한 생각을 회의하면서 절망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려고 원하지 않는 것, 혹은 절망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고자 원하는 소이(reason)이다" 따라서 그 반대가 신앙이며 여기서 "신앙이란 자기가 자기자신이면서 자기자신이 되려고 원함에 있어서 자각적으로 자기를 신에게 근거 지우는 것이다" 결국 신앙은 인간이 유한자로서 철저한게 자기자신이 자기의 힘으로 절망을 초극할 수 없다는 근본 자각을 통하여 신에게 귀의하는 것을 의미하며 철저한 절망의 자각을 매개로 하여 절망을 극복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절망은 유한적 실존과 영원한 존재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유한적 실존인 인간이 영훤한 존재의 세계인 신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면서 거기에 도달할 수 없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죽음에 대한 태도로 미학적 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라는 3단계를 말하고 있는데 그 중 마지막 단계인 종교적 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구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종교적 단계는 우리 삶이 결국은 죽음으로 끝남을, 그리고 누구도 완전하고 영원할 수 없음 을 깨닫는 단계이다. 키에르케고어는 말한다.“있는 힘을 다해 절망하라!” 죽음은 최고의 절망이다. 그러나 제대로 절망한 사람만이 인생을 올곧게 꾸려 갈 수 있다. 삶을 비추던 온갖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들은 죽음과 함께 내게서 떠나갈 것이다. 누구도‘나’대신 죽을 수 없으며, 죽음의 순간‘나’는 모든 것을 잃은 채 홀로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 키에르케고어는 "절망자에게 있어서는 절망이 그를 삼켜버리지 않는 것이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이 위안은 바로 고통으로서 삶을 갉아먹는 고통이요, 할큄을 겪는 삶의 고통이라고 하였다. 절망자는 자기자신을 삼켜버릴 수도 없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올 수도 없으며 무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2. 죽음에 이르는 병(Sygdommen til Døden, 1849)
‘건전한 덕과 각성을 위한 한 그리스도교적 심리학적 논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애초에 기독교신앙을 권장하기 위한 의도로 저술되었다. 그 때문에 키에르케고어 자신은 간행자 이름에 실명을 사용했음에도 저자 이름은 안티 클리마쿠스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키에르케고어 자신은 충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점을 반성하면서 충실한 신자인 안티-클리마쿠스(Anti-Climacus)라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운 것이다.

안티-클리마쿠스가 제시하는 ‘자아 됨의 문제가 서로 달리 제시되는 세 가지 다른 상황’이 있음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그 세 가지 다른 상황이란 (1) 우리가 자아 됨의 가능성을 가진 상황, (2) 우리가 자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린 상황, 그리고 (3) 우리가 자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더 부여받은 상황이다.

3. 절망의 현상학
안티-클리마쿠스에 의하면, 스스로 자아가 된 이는 한 사람도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은 그가 사람인 한 “몸과 영혼의 통합체”(a body-soul entity)로, 즉 유한과 무한,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필연성과 자유(가능성)의 종합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게 여겨지는 한 “인간의 존재는 아직 자아는 아니다”. 자아의 통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자신에 대하여 바른 관계 가운데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절망, 즉 자신에 대한 바르지 못한 관계 가운데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절망의 현상학은 보편적인 것이다. 도대체 절망 가운데 있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안티-클리마쿠스는 이것은 전혀 과장도 아니고 지나치게 말하는 것도 아니며, “일관성 있게 발전된 기본적 관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절망의 보편성은 절망이 “인간성 자체 안에 붙박여 있는 어떤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사람을 이와 같은 식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인간 절망의 조성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티-클리마쿠스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절망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자아(즉, 영)가 될 수 있는 커다란 유익을 주시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잘못된 관계(disrelationship)를 만들어낸 것이다. 절망은 사람에게 그저 발생한 것이거나 사람이 어떻게 하다 보니 수동적으로 그런 상황 가운데 있음을 발견하게 된 어떤 결여, 예를 들어서 “어떤 연약성, 육욕성, 유한성, 무지 등”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밖에서 오는 것이지만, 절망은 사람 자신에게서 기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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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E동에서 (이 글은 김진곤 전도사님께서 올리신 것을 퍼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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