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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성경본문 마25:14-30
강설날짜 2017-12-31

지팡이교회는 지난 주일에 성찬식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이 제정하여 주신 성찬의 의미를 아는 성도로서 주의 길을 더욱 잘 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다시 마태복음의 말씀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25:1-13절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열 처녀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은~와 같다”라고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적인 생활을 가지고 와서 비유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초대를 받은 시민 즉 처녀는 진짜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눠졌습니다. 신랑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이시고, 결혼식은 그리스도의 종말에 있을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열 처녀 비유를 통해서 주님의 재림을 지혜롭게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리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배려입니다. 유대인이 잘 알고 있는 일반적인 혼인 예식을 사용하여 비유로 말씀하심으로 주의 재림을 슬기 있는 처녀처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이 땅에서 미리 준비함으로 영적으로 깨어서 긴장 상태에서 준비하고 있으라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지팡이교회는 영적인 긴장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깨어 준비되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겉으로는 신앙고백을 하지만 속으로는 세상의 맘몬을 사랑하고 신랑이 더디 온다고 생각을 하면서 영적인 긴장 상태를 생각하지 못하면 나중에 “주여, 주여”라고 통곡을 하게 됩니다. 그때 가서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한들 이미 늦은 것입니다.

 

우리도 슬기 있는 다섯 처녀처럼 영적인 긴장 상태로 신앙의 생활을 해야 어느 날 갑자기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오시는 주의 재림을 볼 때에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에서 결론적으로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영적으로 항상 깨어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심판 즉 주의 재림은 오직 하나님 외에 아무도 모른다면 늘 참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지팡이교회는 항상 깨어 있음으로 주의 재림이 지연 되더라도 그때까지 세상의 고통을 참고 유혹을 이길 만한 충분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열 처녀 비유에 이어서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천국은~와 같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당신님의 재림을 슬기 있게 기다리는 백성에게 ‘충성됨’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영적인 긴장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 21절에서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비슷한 눅19:11-27절의 말씀을 생각하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고 간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여 만유의 왕이 되신 다음 재림하실 것인데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이 어떤 자세로 기다려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적인 긴장상태에서 달란트의 비유는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왕의 재산을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청지기적 직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늘 분문 14절을 보시면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고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또 하나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열 처녀 비유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암시함으로 종말적 심판에 관한 것임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늘 예수님의 비유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사용하심으로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서 있으면서 당신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 땅에 남아 있는 종들에게 맡기시고 그들을 통하여 계속 이루어 가시고 있다는 것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인 15절을 보시면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인이 자신의 종들에게 재산을 맡기었다는 것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그리고 한 달란트 맡은 자가 생각할 때 적은 액수라고 생각하고 불평할 수 있겠지만 실제적으로 모두 거액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각각 그 재능대로’ 즉 ‘자기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 따라’서 적절하게 종들에게 배분했습니다. 종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로 최선을 다해 잘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능력과 재능에 따라 소유가 맡겨졌다는 것은 저마다 고유한 인격과 역할이 있다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각각 소중하고 존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한 데나리온 이었습니다. 한 달란트는 금으로 대략 60kg으로 6,000데나리온입니다. 노동자가 20년 동안 일을 해서 벌어야 하는 큰 금액이었습니다. 주인이 각각의 종들에게 달란트를 주었다는 것은 그들을 신뢰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각자의 능력대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종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주었다고 하면서 불평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능력이 있어서 예수님께서 달란트를 맡긴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우리가 가진 성품과 능력이라는 것이 죄로 오염이 되어 있어서 오히려 거룩한 하나님 나라가 더럽혀질 것입니다. 따라서 각자의 능력대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맡기셨다는 것은 가진 어떤 재능이나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맡기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의 믿음의 분량대로 맡기신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일을 감당하도록 하시는 것은 은혜인 것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것을 맡기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16-17절에서 “16.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라고 하셨습니다. 받은 달란트의 배를 남긴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그리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최선을 다해서 일했을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바로 가서’ 주인이 떠나자 그 즉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종이 재빨리 그 돈을 갖고 어떤 일을 착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과 일에 대해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지체 없이 그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한 청지기로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주의 재림을 영적인 긴장 상태에서 왕의 재산을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청지기적 직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시겠지만 장사는 무조건 이윤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본래 갖고 있던 소유마저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 장사입니다. 그 만큼 위험 부담을 안고 모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그보다 적게 받은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똑같이 성실하게 장사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달란트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리고 소유하고 있는 양의 차이에 따라 성실성의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주인의 주관심사가 이윤을 많이 남기거나 적게 남기는 데 있지 않고 주어진 여건 안에서 성실히 노력함으로서 주인의 기대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알려 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분량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을 보십시오. 18절을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이렇게 했던 이유를 생각하면 오늘날과 같이 은행이 없기 때문에 땅에 귀중품을 묻는 것이 일상적이었다고 합니다. 주인이 자신에게 주신 목적을 생각하지 못하고 주인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13:4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지팡이교회 홈페이지를 보시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청지기의 역할을 맡기시는 것은 은혜를 주시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가 마치 누룩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라고 하십니다. ‘오랜 후’라고 하심으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많은 시간이 있다는 것으로 기회가 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20절에서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두 배의 소득을 올린 그 소유의 출처가 누구라는 것입니까? 종은 주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을 신뢰하는 것을 안 종은 늘 주인을 항상 의식하며 성실히 일해 왔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소유의 어느 것 하나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말한 것입니다. 종의 말을 들은 주인은 21절에서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의미는 더 이상의 칭찬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극찬입니다. 주인의 만족과 인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을 생각하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불리움을 받은 이유입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말은 역시 주인의 관심은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은 일에도 성실하게 충성 하는 청지기의 자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22절을 보시면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23절에서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십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같은 말을 하여 준 것입니다. 동일하게 보상을 준다는 것을 보면 주의 재림의 심판의 결산은 은사와 능력의 크기에 있지 않고 그 맡은 바에 대한 성실성과 충성으로 청지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느냐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달란트를 밭은 종은 24-25절에서 해명을 하기 시작합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종은 달란트를 잃었을 경우 주인으로부터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땅에 감추어 두었던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단순히 편하게 지내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종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달란트을 보관한 것입니다. 병행 본문인 녹19:20에서는 수건에 싸두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통점은 두 표현 모두 맡겨진 것을 아무 일에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여기서 게으른 종은 모험을 감행할 의도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인에 대한 오해인 것입니다. 주인은 마음이 굳은 사람이라서 일하지 않고 이득을 얻으려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책임을 회피한 것입니다.

 

악한 종의 해명을 들은 주인은 26-27절에서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는 것입니다. ‘게으르다’라는 의미를 생각하면 단순히 나태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인이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면 다른 방법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주인을 오해한 종은 주인의 사랑을 한 번도 깨달은 적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의 생활을 하지만 자신을 위한 것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단순히 종들이 달란트를 사용하는 태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악한 종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입니까? 28절을 보시면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님의 나라를 맡기신 것은 그저 그 나라가 우리의 수중에서 아무 열매 없이 잠자고 있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열매를 맺도록 하시고자 하십니다. 게으른 자에 의해 조금 지연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당신님의 일을 맡을 만한 자를 통해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악한 종에 대한 결산에 앞서 주인의 입을 통해 그 비유의 중요한 핵심을 알려 주십니다. 29-30절을 보시면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이 밖에 버려질 뿐입니다. 그런 것처럼 악한 종은 교회 안에서 신앙의 생활을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아니한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바깔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는 것은 영원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24:27절에서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라는 말씀대로 예고 없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열 처녀 비유는 재림을 기다리는 자의 준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오늘 본문의 달란트 비유는 재림을 기다리는 자의 삶에 대한 ‘착하고 충성된’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지팡이교회는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우리의 인격과 성향 그리고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달란트를 주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많이 받고 적게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긴장 상태에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제자요 청지기요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나는 어떤 삶의 자세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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