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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님의 어떠하심: 공유적 속성들(1)

지난번까지 논의한 하나님의 어떠하심은 아주 독특하게 하나님께서만 가지신 속성들입니다. 이번에 생각하려는 속성들도 하나님의 속성들입니다마는, 어떤 제한된 의미에서는 피조물인 우리도 그런 속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선배들은 이를 공유적 속성(communicable attributes)이라고 부르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러나 '공유적'이라는 용어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공유적 속성도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절대적으로, 가장 뛰어나게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피조물 수준에서 반영하는 정도로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배들은 공유적 속성들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비공유적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이런 용어를 써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유적, 비공유적이라는 용어는 상대적인 용어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항상 그만한 차이가, 천지의 차이, 무한한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금 개혁파의 후렴 어귀의 하나인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지혜로우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생각하면서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 2:3)고 말합니다. 이렇게 그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것, 미련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는" 것입니다(고전 1:25). 따라서 하나님께서만이 지혜의 원천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지혜로우심을 우리는 이 세상의 역사와 과정과 관련해서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과정도 하나님의 지혜가 이루어 가는 과정을 경탄하며 보아야 합니다. 창조와 섭리와 구속 사역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온전하고도 무한히 의로우십시다. 그는 의 자체이시고, 그에게는 불의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의 본성이 의의 근원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법(eternal law), 또는 영원법의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는 이 세상에서 그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주장하고 나가시는 데서도 당신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 공의를 행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런 속성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간구하기도 했습니다(창 18:25).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우시고, 온 세상에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자의적(恣意的)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선하십니다. 절대적으로 선하신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을 그저 선한 사람, 선한 선생님으로 보고 인간적인 한도 내에서 아주 선하다고 하는 뜻의 "선한 선생님이여"라는 말에 대해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은 선한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 선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그 수준에서, 즉 신성의 수준에서 보아야만 한다는 것을 시사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하신 하나님은 모든 선의 근원(fons omnium bonum)이십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것입니다(약 1:17).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구체적으로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그또한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래 참으시며, 은혜로우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하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최고선(summum bonum)이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시고, 선의 원천이시라는 이 세 가지 측면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항상 옳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역사의 과정 가운데서 우리는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질문도 할 수 있고 (시73편, 렘 12장, 하박국 1장, 욥기), 하나님께 대해 이런 말, 저런 말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그 마지막에 도달하게 될 때 온 세상은 그저 그 입을 막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의로우심을 생각하면서 다시 그 입을 벌려서 그저 그분의 지혜로우심과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거룩하심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마지막에 드러나게 되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지혜와 의로우심과 선하심, 우리는 이것을 종말론적 신정론(eschatological thedicy)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세상 끝에 가서야 하나님이 옳은지 아니지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고, 세상 끝에는 그 옳으심이 온전히 선언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어느 시점에서나, 따라서 지금 이 순간에도 항상 옳으시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항상 지혜롭고, 의롭고, 선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 특히 공유적 속성을 연구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아는 만큼 우리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지혜로우려고 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잘 배워야 합니다. 그만이 지혜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의로우려고 하는 이도 하나님을 가까이해야만 합니다. 선한 것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하나님을 잘 알고, 그분의 어떠하심을 드러내고 반영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피조물의 수준에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여 지혜롭고, 의롭고, 선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됩니다. 모든 것을 지혜롭게 살피고 판단하며, 항상 옳고 의로운 것을 추구하고 나아가며, 선한 성품을 드러내서 참으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오래 참아 나가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자녀다움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 세상에서 당신님의 성품을 잘 깨닫고 반영할 존재들을 두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의미이고, 구속의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여기에 우리의 영광이 있습니다. 비록 피조물의 수준에서나마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있을 수 있다는 고귀한 이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되고 개혁된 형상을 지닌 우리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http://blog.daum.net/wminb/11155813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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