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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신앙고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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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조: 정경에 속하는 책들
Canonical Books of the Holy Scripture

“우리들은 성경은 정경(canonical)인 구약과 신약에 포함된 책들뿐이고,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책들도 성경이라고 주장할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정경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구약에 속하는 책들은 모세 5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와 여호수아서 룻기,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 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다윗의 시편들, 솔로몬의 세 책, 즉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의 대선지서, 그리고 12권의 소선지서라고 불리는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입니다.

신약에 속하는 책들은 사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바울의 14권의 책들인 로마서, 고리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그리고 다른 사도들의 서신인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이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입니다.”

 

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선언한 (벨직 신앙고백서 제 3조) 후에 정경(canon)에 속하는 책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고, 그 나머지 글들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정경에 속하는 책들을 나열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나 일반 교우들 가운데서는 성경을 펴서 보면 그 이름이 다 있는데 왜 신조에서 그에 속하는 책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는 지를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개혁 시대까지도 꼭 이 정경의 속하는 책들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천주교회에 속한 분들은 정경에 속한 책들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1561년에 고백된 벨직 신앙고백서에서는 과연 어떤 책이 이 정경에 속하는 지 그 책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17세기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할 때에도 제 1장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밝히고 그 안에 속하는 책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정경에 속하는 책들을 하나 하나 언급하는 것은 이미 1561년에 벨직 신앙고백서에서 그렇게 한 것을 따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천명에도 불구하고 17세기까지도 사람들은 정경에 속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존중하려는 시도들이 계속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 즉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들은 오직 이 66권에 속하는 책들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분들은 하나님을 참으로 믿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들의 모든 신앙적 판단의 근거가 66권의 정경임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21세기 정황 속에서 이런 주장이 가진 함의를 말해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1. 66권의 정경에 속한 책들만을 존귀하게 여기되 이를 하나님 말씀과 동일시하지(identify) 않고, 이 66권의 책이 하나님의 계시를 증언(證言)하는 (혹은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는 입장은 성경적이지 않고, 벨직 신앙고백서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며, 고대로부터 있어온 기독교 신앙에 충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고, 20세기 개혁주의를 대변한다고 하는 사람인 칼 바르트(Karl Barth)가 이런 주장의 대변인으로 이런 형식의 표현 방식을 만든 인물이고, 이런 입장에서 신앙 고백서를 새롭게 낸 일이(1967년 신앙고백서, WCC의 여러 문서들, 그리고 이에 근거한 고백서들)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입장을 천명하는 분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becomes)는 역동주의적(dynamic)이고 변증법적(dialectical)인 주장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과 교회들은 성경과 그에 충실하려는 벨직 신앙고백서와 정통주의 신앙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2. 66권에 속하는 정경 이외의 소위 외경도 존중하는 천주교회의 입장도 오직 성경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천주교회는 외경을 존귀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구전(oral tradition)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교황이 교황의 자리에서 공식적으로(ex cathedra) 선언한 것들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회는 성경은 존중하기는 하지만 66권에만 이를 한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를 넓혀 가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주교회가 이런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천주교회를 성경적이며, 정경적인 보편의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와 같은 천주교회의 가르침을 받아 왔었으나 그 가르침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오직 성경만"(sola Scriptura)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고 고백한 루터와 칼빈과 그를 따르는 이들이 진정 성경적이고 보편적인 하나의 교회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본래 천주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를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서를 처음 고백한 사람들도 역시 마찬 가지였습니다. 16세기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전 입장에서 나아가 바른 성경적 입장을 분명히 천명한 것과 같이, 오늘 날 천주교인들도 참으로 성경을 공부하고서 이런 바른 진리를 고백하는 데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이렇게 믿어도 되고, 저렇게 믿어도 다 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에 근거한 것만이 참된 신앙이라면 성경에 애한 이해에 있어서도 우리는 성경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66권 정경에 속한 것들 외에 다른 계시가 더 있다고 하는 것들은 이전에 말한 바와 같이 명백한 이단의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말한다면, 이런 모든 분들은 성경의 중심적이고 절대적 계시와 연관되는 그 보다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계시로 주신 것이 있다는 입장을 말하려고 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이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경의 충족성(the sufficiency of the Scriptures)을 부인하는 것이며, 성경을 영감하여 주시고 그 성경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제나 성경과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해 가야만 합니다.

4. 따라서 66권의 성경에 대해서 인간 입장에서의 합리주의적 비평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것이 우리를 검토하고 조사하며 우리의 문제를 드러내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책이지, 우리가 성경을 검토하여 그 내용을 변경시키고 우리가 그것을 변형시키는 성경의 책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66권의 정경에 속하는 책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믿고 주장하는 분들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입니까? 형식적으로는 이와 같이 66권에 속하는 책들만이 성경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정통주의적 입장, 성경적 입장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을 지닌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것은 결국 죽은 정통주의(dead orthodoxy)가 되는 것이어서 참된 정통주의자들이 항상 경계해 온 것입니다. 성경을 참으로 존중하는 사람들은 결코 죽은 정통주의자들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참된 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하여 제시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따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된 정통주의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일에 힘씁니다. 잘못된 해석을 배제하는 일에 항상 애쓰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렇게 바르게 해석된 해석에 자신을 철저히 매고 하나님과 성령님께 순종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고 하는 분들도 모든 것을 100% 정확하게 항상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이 하나님과 같이 전지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어떤 것들은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히브리서를 누가 썼는지는 정말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벨직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것과 같이 히브리서도 바울의 저작으로 생각하고서 바울의 14서신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 놓아야 합니다. 누가 히브리서를 써는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확정적인 것으로 보고 절대적으로 그렇게 보아야만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이런 고백서를 강조하는 분들이 이런 사람들로 나타나거나 항상 그런 주장으로 하는 사람들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부디 바라기는 성경을 읽고 이 글을 읽는 우리들 모두가 정경에 속하는 66권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입장에서 성경을 잘 공부하여, 그 가르침에 따라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그에 순종해 가는 참된 “성경의 사람들”(the people of the Book)이 되었으면 합니다.


출처: 이승구 교수의 개혁신학과 우리사회이야기-http://blog.daum.net/wmi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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