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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용할 양식은 교회당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는 분들에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인 계2:9-11절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진실로 아멘으로 화답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 목사님 무슨 말씀을 하실는지 저는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저의 생각과 일용할 양식을 듣는 분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양심에 물어 보십시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예배당에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신 말씀입니까? 과연 그렇습니까? 목사님 저는 자주 듣던 말씀이고, 당연히 예배당에서 충성하는 것이 무엇이 불만이십니까?

 

예수님을 향해서 그리고 예배당에서 죽도록 봉사를 하면서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말씀도 들었을 것입니다. 예배당에서 직분 자들이 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도 받고 은혜를 받음으로 같은 마음으로 섬기고 싶다는 마음도 들 것입니다. 당연히 이 부분에서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당연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하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죽도룩 충성하라’는 어떤 의도로 말씀하여 주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부교역자로 교회를 섬길 때 일입니다. 저에게 상담한 성도는 직접 자신이 담임목사님에게 말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대신 저에게 담임목사님을 설득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교회에서 교사, 찬양대, 구역장 등으로 많은 봉사로 섬기다 보니 가정을 잘 돌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회당에서 봉사를 많이 해 오면서 마치 건전지가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거의 바닥이 날 때 상담을 해 온 것입니다. 이제는 충전도 하면서 가족도 돌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담임목사님에게 이번에는 교사는 그만두게 하고 있는 분들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하면 핀잔을 받습니다. 그 동시에 담임목사님은 그 분에게 전화를 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 분은 지쳐서 그만 두고 싶어도 에너지가 바닥이 되었어도...... 아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일곱 교회 중에서 ‘서머나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오늘 일용할 양식을 읊조리면서 차분하게 다시 읽어 보십시오. 우선 10절의 말씀에 관심을 가져봅시다.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마귀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미 믿음을 소요한 성도는 흔들림 없이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심으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 마치 욥의 고난과 같은 것입니다. 욥은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 성전, 회당 오늘날의 예배당 안에서만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정과 사회생활에서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승리를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도 너희들도 마귀가 고난 그리고 환난으로 시험할 것이니 오직 은혜로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을 배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배당에서 있으면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러면 예배당에서는 충성하지 말하는 것입니까? 당연히 예배당에서도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배당 안에서만 죽도록 충성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어느 곳이 되었든지 그리스도의 영광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당에서는 잘 하면서 직장과 가정에서 서로 다른 행동을 보인다면 그 분은 ‘지킬앤하이드’입니까?

 

사도 요한은 서마나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너희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더욱 고난과 박해를 받을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로 인하여 너희들이 끌려가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무엇을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생명의 관(면류관)’입니다. 다시 한 번 10절의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구원을 받은 백성은 마귀가 시험을 해도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신앙을 포기하지 말하는 강력한 위로의 말씀입니다.

 

예배당 안에서만 죽도록 충성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의도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회당 안에서만 있었습니까? 복음을 위해서 어는 장소가 되었든지 예수님만 신뢰를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증시했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면 가실수록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를 결국 지시고 죽음을 당한 것처럼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과 성령의 강림을 안 후 죽도록 충성을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면서 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만 신뢰하면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삶이 고달프고 힘들 것입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끝으로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끝까지 인내하고 승리하는 성도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 사망을 선고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늘 성경을 읽을 때는 전후 문맥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의 성도이기 때문에 고난을 받습니까? 즐거워하십시오. 성도님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승리하실 것을 믿으면서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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