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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전은덕
강설날짜 2021-05-30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SYoQs-1T93k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9:11)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1880001.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59pixel, 세로 422pixel 한국 교회사는 개신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세계사를 아는 것도 좋지만 한국 교회의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 교회사는 장로교회의 뿌리를 알려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즉 주기도문을 강설로 듣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 있어서 주기도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주기도문을 사용하게 된 것인지 아십니까? 그 외의 중요함도 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는 “예배 형식, 순서 진행 방석은 이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1886340.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45pixel, 세로 472pixel 목사필휴”를(옥성득 교수) 따랐다고 합니다.(그림을 참고해 주십시오.) 그림은 옥성득 교수님의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중에 주기도문을 사용하여 예배를 마치게 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초기 한국 기독교는 “강복선언” 즉 축도를 하기 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먼저 사용했습니다. 주기도문을 하고 이어서 강복선언으로 예배를 마치었습니다. 강복선언으로 마치는 경우는 목사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초기 한국교회는 목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가 없는 교회에서는 강복선언 즉 축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로 마무리했습니다. 목사가 없는 교회에서는 전도사 그리고 장로가 강설했습니다. 이런 분도 없다면 성도가 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한국 교회는 열악한 가운데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목사가 많이 있지 않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절실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번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림을 보시면 빨간 줄 안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강도가 끝나면 모든 교우가 기립하야 찬송하고 주의기도를 함이 좋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축도를 할 수 없으므로 주기도문을 사용하여 예배를 마무리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성장하면서 목사가 있어도 오후 예배 그리고 수요기도회 등에서 축도를 하지 않고 주기도문으로 마무리했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것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매우 깊은 역사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징표를 위해 우리는 주기도문에 관한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주문을 외우기 위한 주기도문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며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강설(설교)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강설은 논리가 탄탄해야 하며, 카리스마와 같은 언변이 유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신자들이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좋은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강설이 좋은 강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라는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강설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강설은 본문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것입니다. 본문이 의도하는 것을 바르게 전하는 것입니다. 좋은 강설을 들은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마음에서 하나님 나라의 마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침으로 귀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늘 성숙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난주 강설을 기억해 보십시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였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것이 주기도문이었습니다. 주기도문의 첫 시작을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부르도록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아들과 아버지는 친밀한 관계처럼 하나님과 우리는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하늘이라고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초월하여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한 것입니다.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부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아버지와 대화하며 신뢰의 교제를 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통해 우리는 경배와 찬송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함으로 과거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심으로 나의 존재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며 내 삶의 원동력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만 구원받고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으로 당신님의 백성이 구원될 수 있도록 지상명령을 감당하고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위한 기도는 없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기도는 결국 나를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한 것을 아시고 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구하지 아니한 것이라도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주십니다. 이렇게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결국 구원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으로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의 나라에서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지팡이 교회는 기도하면서 주님께 맡기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면 세상의 걱정만 하며 땅만 바라보는 삶입니다. 하지만, 지팡이 교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믿기에 하늘에 소망을 두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성도는 의와 희락과 평강이 넘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성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지상명령을 감당합니다.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지팡이 교회는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강설을 통해 왜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는가를 아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지난주 말씀과 대조적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보다 더 신령한 세계에 관한 내용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지난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우리 자신에 대한 간구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현실을 아시기에 이것을 간구하도록 하셨습니다. 영적인 생활의 문제보다 현실 세계에서 육체의 생활 중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11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라는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우리 청원”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양식이기 때문에 “우리 청원”이라고 부릅니다. 창조물인 사람에게 있어서 양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양식이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는 피조물입니다. 양식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기 위한 간구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에만 머무는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재림의 주로 다시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서 열리는 천국 혼인 잔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는 분은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는 매일 먹을 음식을 필요한 때에 공급하여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을 간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돈은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귀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초적인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양식은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양식을 구하라는 의미에는 우리에게 있어서 생명의 귀함을 알라는 것이며,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활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심으로 사람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양식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양식은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양식의 근원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매일 간구해야 합니다. 매일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나의 생명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당신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한 후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양식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수입니다. 과거 우리말 성경에는 11절의 시작을 “오늘날”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좋은 번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새번역과 개역개정은 “오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오늘이라는 의미는 “그날” 즉 하루입니다. 매일같이 양식을 구함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요구이지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지 아니하면 사람은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양식을 구해서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사람은 쌓아두기를 원합니다. 죄로 타락한 사람은 부족한 것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천국을 유업으로 상속 못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는 성도인 교회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요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식이 사람의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는 근원에 있습니다.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이 없다면 사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4:4절에서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먹을 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8:3절에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의 양식을 넘어 더 귀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넘어 영의 양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식으로 인해 배고픔을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요4:34-35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양식이 당신님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기를 좋아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육신이 건강하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백성의 마음은 현실에 안주하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상명령을 감당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 주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구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과 우리는 신뢰의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신뢰의 교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녹과 동행했던 것처럼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바로 그분이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백성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며 천국으로 인도하시며 보호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행복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용양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도록 함으로 연약한 우리를 위한 배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한 번에 주시지 않습니다. 삶의 생활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것을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을 의지하도록 하시며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의 길을 가는 지팡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잠언에 나오는 아굴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잠30:9절을 보시면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필요 이상의 부유함과 도를 넘는 가난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세상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아는 지혜자 아굴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간구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날마다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주의 길을 가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성공해야 하나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이 풍족해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 참으로 어리석은 분입니다. 이런 생각은 물질주의에 물든 마음입니다. 과거보다 오늘날은 더 황금만능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맘몬주의에 빠짐으로 결국 영원한 지옥으로 문으로 갑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은 나를 즐겁게 하지만, 영원한 심판으로 인도합니다. 영원한 지옥으로 인도하는 그것을 지팡이 교회는 좋아하지 않으며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고전10:31절 말씀처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일용할 양식입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것을 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매일 확인하는 것입니다.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구함으로 지팡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생활에서 드러내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은 영육 간의 생존을 오직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주기도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교회는 행복한 성도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성도의 기본자세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 순종하는 교회로 성장하기를 소망하며 기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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